와니와 준하 영화포스터. ⓒ청년필름

장애가 영화 속에서 어떻게 그려져야 불편하지 않은 사회일까? 아니 현실 속에서도 장애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지만 모두에게 불편하지 않은 사회일까? 가끔은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물론 자신의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는 경우 더욱더 많은 고민을 해 봤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더라도 장애인에 가까운 사람들은 가족 안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유모차를 타게 된다. 왜냐하면 아직 걷지를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청소년기를 거치거나 운동을 하다가 또는 성인 이후에도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면 잠시 장애인이 되기도 한다.

여성이 임신을 하게 되면 노약자로 분류되면서 다양한 사회적 혜택과 이웃의 보살핌이 시작된다. 노인이 되면 장애인등록증을 받지 않더라도 노인성질환은 장애인등록증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충분히 있다. 이들 모두가 차별받지 않으며 서로 어울려 사는데 편안하고 행복한 사회가 장애가 불편하지 않은 사회일 것이다.

그런데 오늘 소개할 ‘와니와 준하’ 영화는 앞서 말한 장애가 불편하지 않은 사회를 그대로 그려주고 있다.

영화초반 애니메이션이 끝나고 영화가 시작되는 첫 장면. ⓒ청년필름

물론 이 영화는 멜로영화다. 입양한 남동생과 와니 누나가 사랑하고 누나의 갑작스런 사랑고백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이어지게 된다. 시간이 흘러서 남동생의 유학 이후 새로운 준하 남자친구와 동거를 하지만 누나는 남동생을 잊지 못한다. 와니를 찾아온 후배를 통해 준하는 여러 가지 우려가 사실임을 깨닫게 되고 서울로 다시 떠나지만, 결국 누나는 가족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남자친구와 다시 사랑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남동생이 유학가는 날 차 안에서 아버지에게 남동생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장면. ⓒ청년필름

이 영화가 멜로영화임에도 주목하고 싶은 것은 장애인이 영화 속에서 살아가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는 점이다.

와니가 다니는 직장 자체가 이상적인 사회인 것이다. 와니의 직장에는 청각 장애인이 한명 있는데, 모든 직원들이 수화를 할 줄 안다. 장애인이 말을 듣지 못하고 말을 하지 못하는데 직장의 분위기는 전혀 어색하지 않다.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수화를 하는 사람은 언제나 청각장애인과 그의 가족들뿐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그것 때문에 불편해 하는 모습들이 그대로 영화로 만들어진다.

또한 직장의 선배 한명은 남성인데도 남성인 경찰과 사귄다. 경찰의 엄마가 선보라고 하자 직장 선배는 화를 낸다. 그런 선배가 직장에서 일하지만 동료들은 그를 이해해주고 잘 따른다. 어느 누구도 불편해 하는 사람은 없다.

와니의 직장에서 청각장애인 직원과 수화를 주고받는 장면. ⓒ청년필름

다음은 영화의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 말해 보려한다. 이 영화의 어릴 적 모습과 고등학생이 된 이후의 모습은 엄격히 다른 영화장르로 구분된다. 애니메이션은 어릴 적 과거의 모습이고 영화는 고등학생과 성인 이후의 과거, 그리고 현재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다.

두개의 서로 다른 장르를 통해서 이들의 엇갈린 사랑을 구분하고 있다. 아마도 소극적이며 자신의 의사표현을 못한 소년의 첫사랑은 과거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남동생에 대한 첫사랑과 새로 시작한 준하와의 사랑은 가까운 과거와 현재의 영화로 표현하고 있다.

결국 소년의 첫사랑이 현실에서 승리를 거둔다. 준하가 어릴 적 첫사랑을 현실에서 성공하게 된 것처럼 우리도 이제부터 장애가 불편하지 않은 사회를 위한 첫사랑을 시작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또한 전화를 할 때 상대방이 앞에서 대화하는 것처럼 보여주는 것도 흥미롭다. 영화 속에서 전화로 통화하는 장면은 공간적 한계를 극복해서 직접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영화의 장애 때문에 불편한 것이 있다면 과감히 불편하지 않도록 기술적으로도 상당한 노력을 하고 있다.

준하가 와니에게 선물을 건네주고 손을 흔드는 장면. ⓒ청년필름

와니도 장애가 불편하지 않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법을 알려준다. 와니는 자신이 잘하는 그림 그리는 장점을 가지고 그것의 능력을 한껏 발휘해 남자친구와 화해한다. 그동안 둘이 있으면서 즐거웠던 일들을 만화로 만들어 CD로 제작해서 잊어버리고 간 것이라며 건네주고 간다. 직접 말하거나 애써 구차하게 자초지정을 자세하게 설명하며 변명하는 것보다 귀엽고 화해를 안 할 수 없게 만드는 방법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화해하는 방법을 고민해 봤으면 한다. 가끔은 장애가 불편하지 않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과격한 시위를 하는 것보다 자신들이 잘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의 시위를 통해 반대 입장의 사람들이 웃을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면 모두가 서로 불편하지 않은 사회가 좀 더 빨리 다가올 것이다.

와니가 제작한 CD를 보고 준하가 웃는 장면. ⓒ청년필름

"돌아보지마, 눈물을 말리는 것은 앞에서 오는 바람이라고"라고 말한 영화 속 대사처럼 이제는 우리 모두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말자. 어차피 장애인의 눈물을 말리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인 것이다. 그것은 향후 장애인에게 전혀 불편하지 않은 사회일 것이며, 결국은 우리 모두가 불편하지 않은 사회일 것임에 틀림없다.

‘와니와 준하’라는 영화 속 와니의 직장을 통해서 장애가 불편하지 않은 사회를 생각해볼 수 있었으며, 향후에도 장애가 불편하지 않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대안과 미래를 보여주고 잔잔한 감동과 웃음을 줄 수 있는 ‘와니와 준하’ 같은 영화들이 계속해서 나왔으면 한다.

‘유토피아’는 2007년 장애인영화 전문칼럼니스트 강좌 수료생들의 모임입니다. 저희들은 영화를 사랑하고 장애현실을 살아가는 눈과 감수성으로 세상의 모든 영화들을 읽어내려고 합니다. 저희들은 육체의 장애가 영혼의 상처로 이어지지 않는 세상, 장애 때문에 가난해지지 않는 세상, 차이와 다름이 인정되는 세상, 바로 그런 세상이 담긴 영화를 기다립니다. 우리들의 유토피아를 위해 이제 영화읽기를 시작합니다. 有.討.皮.我. 당신(皮)과 나(我) 사이에 존재할(有) 새로운 이야기(討)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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