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인으로써의 수급권

장애인에게는 여러 가지 낙인이 존재한다. 비정상, 주변인, 무성적 존재 등등…. 그러나 가장 큰 낙인은 무능력하고 가난하며 비생산적이라는 것이다.

그 낙인을 사회적으로 더욱 공고히 하고 공식화하는 것이 바로 수급권이라는 제도이다.

수급권…. 말 그대로 권리이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할 권리이며 이를 나라에 당당히 요구하고 받아 낼 수 있는 권리.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장애인뿐 아니라 수급권을 가진 모든 대한민국의 사람들은 수급권과 동시에 낙인도 함께 받게 된다. 바로 기생계층이라는 낙인이다.

도움 없인 살 수 없는 존재, 시혜와 동정으로 살아가는 존재, 특히 그것이 장애인이라면 그것도 중증의 장애인이라면 그 낙인은 뼈 속까지 각인되어진다. 그 낙인을 지우려는 노력조차도 무의미하게 말이다.

장애인복지에서 장애인은 수급권자만 존재한다. 수급권자 이외의 장애인에게 시행되는 복지란 그야말로 찾아보기 힘들다. 혜택을 받으려면 수급권부터 만들어 오라고 공공연히 이야기 하는 담당자 앞에서 장애인은 수급권이 장애인이면 누구나 따야하는 자격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장애인=수급권자’라는 지금의 인식 속에서 장애인의 인권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장애인은 그저 수급권자인 기생계층일 뿐인 것이다.

수급권의 굴레

자립생활이 보급되고 발전하면서 전에 비하면 곳곳에서 장애인을 꽤 볼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자립생활을 보급하고 실천하는 최일선의 자립생활센터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자립생활센터가 장애인, 그것도 중증장애인 사회생활의 구심점으로써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그 지점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 장애인자립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인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제몫을 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꿈은 번번이 수급권자라는 꼬리표에 막혀 좌절되고 만다.

자립생활을 위해 취업을 하거나 장사라도 하려하면 수급권이 박탈당하는 것이다. 수급권 40만원으로 살아가던 장애인이 50만원을 벌기 위해 수급권을 포기하기란 힘든 일이다. 노동의 힘듦은 제외하고라도 약값이 10만원은 더 들 것이기 때문에….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황당함이 사실인 현실은 장애인을 더더욱 좌절케 하는 것이며 아르바이트로 한푼 두푼 모은 몇 백 만원의 돈이 재산이라는 명목으로 둔갑하여 수급권이 박탈당하는 일을 한 번 겪고 나면 다시는 자립생활이라는 것은 생각도 않게 된다.

그야말로 굴레이다.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옥죄어오는…. 이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선 더 용감해져야하고 과감해져 모험도 감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그런 설득은 당사자들에겐 너무나 황당한 얘기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말 그대로 그들에겐 생존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수급권으로 인해 삶이 나아져 수급권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지금의 수급권 제도는 분명 변화가 필요하다.

노동권을 위한 수급권의 변화방안

센터에서 만난 대부분의 장애인이 수급권을 갖고 있었다. 교육권을 비롯한 모든 사회적 기회에서 소외당해 온 장애인이 경제적 능력이 뛰어날리 없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본 장애인 중엔 잘 먹고 잘 사는 정도는 아닐지라도 소시민으로서 그저 평범하게 살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은 다 가지신 분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분들이 수급권의 굴레에 갇혀 당당한 지역주민으로서가 아닌 수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분들에게 수급권을 포기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흔히들 생각하는 노동의 어려움, 경제적 이유, 자립역량 부족 등 여러 이유들을 제치고 난 의외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의료비의 문제였다.

의료비도 하나의 이유일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따져보니 그것이 수급권을 포기할 수 없는 가장 큰 원인이 될 수도 있음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솔직히 웬만큼 역량이 되시는 분은 아르바이트를 해서도 수급비로 나오는 40만원 정도의 수입은 벌 자신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수급권에 같이 부여되는 의료비지원이라는 것이다.

장애의 특성상 한 달에 두세 번씩 병원에 가야하는 경우도 있고 지금은 건강하다고 해도 장애 때문에 언제 아플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의료비 지원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가정했을 때 그 엄청난 의료비 부담이란 상상이 가는 부분이다. 의료비 부분만 해결된다면 구지 수급권을 가짐으로써 천시 받는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 수급권을 포기하겠다는 분이 의외로 많았다.

자립생활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요건은 주체성을 가진 경제적 자립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한 장애인 노동권의 획득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노동권의 획득의 걸림돌 중 하나인 수급권의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장애인 수급권의 경우 의료비지원과 수급권을 분리하는 것이다. 의료비지원을 수급권과 분리하여 장애인에게 공통으로 지원하고 수급권은 지금처럼 빈곤계층에 부여한다면 지금보다 장애인 수급권자의 수는 대폭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수급권 본연의 의미와도 상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장애인의 노동을 통한 사회통합 및 자립생활에도 많은 보탬이 될 것이다.

장애로 인한 추가비용에 따른 수입보전으로써의 장애인연금

뿐만 아니라 장애로 인한 장애인의 추가비용 발생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의료비를 국가에서 지원하는 것은 국민이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하도록 보장해야하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이며 이것이 장애인복지의 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는 장애인연금의 기본 이념인 수입보전이라는 측면에서도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는 것으로써 장애로 인해 비장애인에게는 발생하지 않는 추가비용을 국가가 지원해 줌으로써 그만큼의 수입을 보전해 주어 장애인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 역할을 다 하는데 있어 장애가 방해요소로 작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장애인연금이 여러 난제들로 인해 시행에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 현실인 지금이라면 비교적 연금제보다는 시행 가능성이 있는 수급권에서의 의료비지원 분리와 그에 따른 전 장애인 의료비지원을 장애인 연금에 앞서 시범적 사업으로 진행한다면 장애인연금을 제도화 하는 데에도 좋은 예로써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미 제주도에서는 이와 같은 제도가 시행되고 있으며 그 성과 또한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렇듯 지자체에서의 선행적 경험과 성과까지 있다면 이를 모델로 하여 제도를 시행하는 것은 의지의 문제일 것이다. 지방정부에서도 시행하는 성과 있는 복지정책을 중앙의 서울시나 정부에서 시행하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장애인복지의 궁극적 목적인 장애인의 사회통합은 장애인을 스스로의 주체로서 세울 때에만 가능한 것이며 이를 위해선 기생계층이라는 사회적 낙인을 제거할 때에만 가능하다.

수급권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노동권을 획득함으로써 당당히 사회로 나갈 수 있도록 장애로 인한 추가비용의 사회적 보전은 반드시 이루어져야한다. 이의 시발점이 수급권에서의 의료비지원 분리를 통한 전(全) 장애인의 의료비 보전 정책이었으면 한다.

17년간 재가 장애인으로서 수감생활(?)도 해봤고 시설에 입소도 해봤으며 검정고시로 초중고를 패스하고 방통대를 졸업. 장애인올림픽에서는 금메달까지 3개를 땄던 나. 하지만 세상은 그런 나를 그저 장애인으로만 바라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다 알게 된 자립생활! 장애라는 이유로 더 이상 모든 것으로부터 격리, 분리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상이 꿈꾸는 곳. 장애인이 세상과 더불어 소통하며 살 수 있는 그날을 위해 나는 지금 이곳 사람사랑 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근무하며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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