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몇몇 시각장애 지인들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는 자연스럽게 우리사회 장애인의 삶에 관한 대화가 이어졌다. 장애인과 관련한 우리 사회의 갖가지 개선점들, 요즘 들어 화두가 되고 있는 활동보조인 지원 사업에 관한 말도 나왔는데 요구 사항들이나 부정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대화를 하다 보니 분위기가 절로 침울해졌다. 헌데 한 분의 이야기로 분위기는 금세 좋아졌다.

말인 즉 교회에 가려고 버스에 올라타는데 버스 기사가 친절하게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목소리로 보아 연세가 예순쯤 된 듯한 분이셨는데 친절한 인사에 기분이 좋아져서 반갑게 답례를 했다고 한다.

‘친절한 인사 하나가 이렇게 기분을 좋게 만드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기사는 친절한 인사에 그치지 않고 앉아 있던 사람에게 자리 양보를 권했다고 한다. 승객 한 분이 흔쾌히 자리를 양보했고 자리에 앉자 기사분이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기에 무심코 내릴 곳을 얘기해 준 뒤 목적지에 잘 내리기 위해 신경을 바짝 쓰고 있는데 목적지에 가까워지자 기사는 “차가 선 다음에 이동하십시오”라고 말을 하더니 운전석에서 나와 내리는 것까지 도와주었다고 한다.

우리에게 이 얘기를 하신 분은 “정말 고맙고 흐뭇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주목할 것은 이런 이야기가 나오자 침울하던 공기가 우리 사회가 아직은 살만하다는 나름의 희망어린 분위기로 바뀌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한 시각장애인이 어느 전철역 앞에서 택시를 타려고 하는데 앞에 택시 비슷한 것이 있는 것 같아서 “택시인가요”하고 물었단다.

그런데 그것은 택시가 아니었고 아주머니 몇 분이 타고 있는 승용차였고 역 앞에서 또 다른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분들이었단다. 헌데 그 분들이 차에 타라고 하더니 목적지까지 태워주고 안으로 들어 갈 수 있도록 안내까지 해주고 갔다고 한다. 이 말을 한 분 역시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너무 고마웠다”고 거듭 이야기 했다.

또 다른 한분은 지하철을 이용하려고 개찰구 쪽으로 가는데 공익요원이 달려와 "어디까지 가세요"라고 묻더란다. 목적지를 말하니 공익요원이 안내는 물론 갈아타야하는 역에 연락도 해주었다고 한다. 환승역에서는 그곳의 공익요원이 미리 대기하고 있었고 덕분에 편하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다고 한다.

요즘에는 전철을 이용 할 때 장애인이 요청하면 도와주는 공익적 서비스가 제공된다. 앞서 말한 사례는 도움을 청하지 않았음에도 먼저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다는 데 그 고마움이 더욱 크게 느껴졌던 것이다. 사실 도움을 청하러 찾아가는 것도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얼마 전까지 서울 지하철 쌍문역에는 기분 좋은 아저씨가 있었다고 한다. 역무원이신데 시각장애인이 표를 받으러 가면 꼭 먼저 "어디 가시나요", "조심히 다녀오세요"하며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이 얘기를 하신 분은 "그 인사하나가 너무 기분을 좋게 만든다"고 했다.

그렇다. 우리사회를 따뜻하게 하고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것, 따지고 보면 대단한 게 아닌 경우가 많다. 작은 인사 하나, 작은 친절 하나가 바로 희망도 주고 즐거움도 준다.

사실 우리 장애인들 삶이 고단하다. 그렇기 때문에 여유도 적고 여유가 적으니 감사 보다는 불평이 앞서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오늘만이라도 따뜻한 기억들 떠올려 보면 어떨까? 마음이 조금은 풀리지 않을까?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그 따뜻한 행동들에 함께 동참해 보자고 권하고 싶다.

심준구는 초등학교 때 발병한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인해 시력을 잃은 시각장애인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후 장애에 대해 자유케 됐고 새로운 것들에 도전해 장애인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국가공인컴퓨터 속기사가 됐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 지상파TV MC가 됐다. 대통령이 주는 올해의 장애극복상을 수상했으며, ITV경인방송에서는 MC상을 수상했다. 현재 KBS, MBC, SBS 등 자막방송 주관사 한국스테노 기획실장, 사회 강사, 방송인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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