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을 위조한 큐레이터와 청와대 정책실장의 부적절한 관계로 나라 안이 떠들썩합니다. 검찰이 수사에 들어간다니 곧 시시비비가 가려질텐데요. 본인들은 서로를 “예술적 동지일 뿐”이라고 한다니 조사 결과가 궁금해지네요.
영국에서도 2004년, 이와 비슷한 특급 스캔들이 일어났었습니다. 토니 블레어 총리의 오른팔로 불리던 데이비드 블런킷 내무장관의 이야기인데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국을 들끓게 만든 이 사건은 그가 내무장관직을 사임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습니다.
데이비드 블런킷이라고 하면 안내견과 함께 영국의회에 입성한 인물로 유명합니다.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나면서부터 유전적 원인으로 앞을 보지 못했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야간대학을 마쳤던 그는 그야말로 겹겹의 난관을 헤쳐나온 강인한 의지의 사람입니다.
16살에 노동당원이 된 블런킷은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이 승리하자 97년 교육부 장관에, 2001년에는 내무장관에 전격 임명되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는데요. 세간의 우려와 달리, 7명의 개인비서들이 점자로 번역해놓은 자료를 읽고 보좌관들이 녹음해놓은 또 다른 자료들을 초고속으로 들으며 산더미 같은 현안을 능숙하게 처리해냈습니다. 측근들조차 혀를 내두를만큼 비상한 기억력으로 아무리 긴 연설문이라 할지라도 모조리 암기해 유창하게 발표했죠.
그러나 엄격한 자기 관리에다 일벌레로 불리던 그도 사랑에 발목이 걸려 파국에 이르게 됩니다. 보수 정치잡지 ‘스펙데이터’의 편집장 킴벌리 퀸과 3년간이나 남몰래 밀애를 즐겨왔던 것이 발각된 것인데요. 영국판 '보그'의 발행인 스테판 퀸의 아내인 킴벌리 퀸은 블런킷의 아들을 낳았을 뿐만 아니라 뱃속에 또 다른 아이를 임신중이었습니다. 남편 스테판은 불임이란 소문이 파다한데다 킴벌리의 요청으로 유전자 검사까지 한 터라 윌리엄이 블런킷의 아들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죠.
87년 이혼한 이래 일과 결혼하다시피 살아왔던 고독한 블런킷에게 아들 윌리엄의 탄생은 더없는 행복이었는데요. 문제는 이들의 이중생활이 주간지를 장식하자 돌연 변심한 퀸이 그를 떠나면서 발생합니다.
퀸은 윌리엄의 아버지는 그녀의 남편 스테판 퀸이라는 억지 주장을 펼칩니다. 슬픔에 빠진 블런킷은 친자확인 소송에 들어가는데요. 이에 맞서 퀸은 블런킷의 비리를 폭로하는 무서운 반격을 가하게 되죠. 그녀는 그를 직권 남용으로 고발합니다. 아들 윌리엄의 유모로 자신이 고용한 필리핀 여성의 비자연장 건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이죠.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특별대우가 아니라 약간만 빨리 처리해달라”는 블런킷의 전언을 그의 비서가 담당국에 보낸 이메일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와중에 퀸에게 공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기차 1등석의 특혜를 준 것까지 드러나 결국 블런킷은 스스로 사표를 써야만 했습니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이렇게들 말합니다. 시각장애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데이비드 블런킷도 사랑에 눈이 멀어 화려한 정치인생에서 중도하차할 수밖에 없었다고요. 또한,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직위를 남용하고, 그것을 부인함으로써 정치인으로서 신용을 잃은 사람은 사임해야 마땅하다고 말입니다.
눈이 보이지 않기에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았을 장관. 장관실에서 점자번역기를 사용하고, 시각장애인 안내견과 동행하며, 런던과 영국 곳곳에 점자블록이 늘어나게 만들었을 장관. 차기 총리감으로 꼽는 사람도 있고 보면 그의 활약을 좀더 길게 보고 싶었는데 이 놈의 운명적 사랑이 뭔지 한숨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