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나는 시각장애인 중고등학생들과 함께 할 기회가 생겨 한 맹학교에 방문 했다.

약속한 날을 앞두고는 학생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어떤 질문들이 나올까? 이런 저런 생각에 나름대로 기대도 됐고, 맹학교 등의 특수학교들은 유치부 부터 고등학교까지 한울타리내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 학교도 예외가 아니어서 가급적 많은 학생들을 만나봐야 겠다고 마음 먹기도 했다.

그런데 방문한 맹학교 운동장에서 나는 참으로 가슴 짠한 모습에 먼저 마주쳐야만 했다.

한 어린이(초등부 2학년 여자어린이)가 눈에 두터운 안대를 하고 혼자 시소에 앉아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왜 여기에 혼자 있느냐고 물었다. "안압때문에 안구적출 수술을 받아서요." 그 아이의 대답이었다.

여기서 안압이란 질병으로 인해 눈에 가해지는 압력을 말하며 적출 수술이란 말 그대로 눈을 들어내는 수술을 말한다.

눈에 관련된 병증중에는 안압이 견딜 수 없는 데 까지 올라가는 증상을 동반하는 것들이 있다. 이런 증상이 심해지면 환자는 극심한 두통과 함께 많은 고통을 당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환자는 안구 적출 수술을 받게 된다. 그 아이는 바로 그 안구 적출수술을 받았던 것이다.

헌데 그렇게 대답하는 아이의 목소리는 더 없이 해맑았다. 마치 병원에 가서 감기치료받다가 간호사언니에게 사탕하나 얻어 먹고 온 아이의 그것과 같은 발랄한 분위기였다.

어찌나 마음이 짠하던지, 어쩌면 그 해맑은 목소리가 나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린아이가 안구적출수술의 의미를 알까? 이제 다시 본다는 희망 자체가 완전히 없어졌다는…. 평생 의안을 끼우고 살아야 한다는….

당장 눈이 아픈데 어차피 보이지 않는 눈, 적출수술이 당연하다고 가볍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다.

나는 방송에서 안압상승 병증을 가진 또 다른 아이의 아버지를 만난 일이 있다.

그 아버지는 "우리 아들이 눈이 보이지 않는 것보다 안구 적출수술을 해야하는 것이 더욱 가슴 아프다"라고 했다.

그것은 이제 다시 볼 수 있다는 희망 조차 가질 수 없다는 절망과 아들이 의안을 착용 했을 때 그것을 본 다른 사람들이 가질 거부감을 우려한 말이다.

실제로 의안은 얼핏 보아도 금방 의안인 표시가 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의안을 한 분들은 남들이 그 의안을 보고 어떻게 생각할지 상당히 신경을 쓴다. 어떤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어서 표시 나지 않는 의안을 제작 할 수 없는 것인지 안타깝지만 소비자가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인 이유에서 그런 게 아닌가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시각장애인에게 있어 안구적출 수술은 볼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하는 최후의 선택이다. 그런 어려움을 감내 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정교하지 않은 의안으로 인한 또 다른 마음의 상처는 없어야겠다.

심준구는 초등학교 때 발병한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인해 시력을 잃은 시각장애인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후 장애에 대해 자유케 됐고 새로운 것들에 도전해 장애인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국가공인컴퓨터 속기사가 됐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 지상파TV MC가 됐다. 대통령이 주는 올해의 장애극복상을 수상했으며, ITV경인방송에서는 MC상을 수상했다. 현재 KBS, MBC, SBS 등 자막방송 주관사 한국스테노 기획실장, 사회 강사, 방송인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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