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평소 알고 지내던 분의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문상을 간 일이 있다. 문상하고, 여러 절차에 따라보니 장애인은 문상도, 장례절차 함께 하기도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경사에는 함께 하지 못해도 흉사에는 함께 하라"는 잠언을 되뇌이지 않더라도 사실 장례 절차야 말로 살아 생전 함께 했던 분을 마지막 보내는 일인 만큼, 장애인도 반드시 함께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나는 처음 장례지내는 일에 동참했다. 당시 나의 시력은 0.1정도, 그 때 이미 약시 상태의 시각장애인이었다.

그래도 나는 종손이었기에 장례절차를 함께 했다. 상복, 병풍, 분향, 관을 모시고 방에서 나가며 `복복복'을 외치고 관으로 문턱위에 놓인 바가지를 깨뜨린 기억 등이 생생하다. 상여 앞에서 영정사진을 들고 장지까지 가는 일도 맡았다. 시력이 약해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무난하게 함께 할 수 있었다.

헌데 중증 시각장애인이 되니 장례절차에 함께한다는 것, 보통 일이 아니다. 가까운 분들이 상을 당하면 가급적 가보려 애를 썼기에 문상객으로 병원 영안실에 간 것도, 초상집을 방문한 것도 여러번이다.

요즘엔 대부분 병원 영안실에 분향소를 마련하고 문상객을 받는다. 헌데 병원 영안실 장애인 편의 시설, 안내표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대개의 병원들은 영안실이 지하에 위치하고 있다. 엘리베이터가 이 곳까지 연결되어져 있는 곳도 있지만 어떤 곳은 계단으로만 되어 있다. 이런 경우 휠체어 장애인들은 문상 자체가 매우 힘들다.

얼마전 내가 다녀온 병원의 영안실은 2층에 위치하고 있어 이용이 좀더 쉬울거라 생각했지만 불편하기는 마찬가지 였다. 대개가 그러하듯 신을 벗고 들어가 분향하고 절을 올린 후 상주와 맞절을 한다. 특별한 도움이 없다면 높은 턱 때문에 휠체어 장애인은 함께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시각장애인도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 점자 유도블럭까지는 아니더라도 적당히 위치와 방향을 알 수 있도록 해 주는 표시들이 되어 있기만 해도 방향과 분향 할 위치 등을 충분히 알 수 있으련만 엄숙한 장소에서 이리하라 저리하라 시각장애인에게 도움을 주는 분도 그렇고 도움을 받는 시각장애인도 민망하다.

신을 벗고 앉아야 하는 구조로 되어 있는 식당을 이용하기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고 장애인 편의 시설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도 문제다.

화장장, 납골당, 공원묘지 등도 장애인 편의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어차피 사람은 세상을 산 후 돌아 간다. 살다보면 상주 입장이든, 문상객의 입장이든, 장애인, 비장애인 누구나 장례절차에 함께 할 일들이 생긴다. 그런데 장례와 관련해서는 장애인으로서 불편을 덜기 위한 사전 연습이 사실상 불가능 하다. 그런 만큼, 관련 장소에는 장애 보장구나 장애인 편의시설, 안내 시설 등이 그 어디에서보다 철저히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장례와 관련된 장소들은 하나 같이 장애인 편의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

장례와 관련된 장소에도 하루 속히 장애인 편의 시설이 갖추어져, 장애인들도 다른데 신경쓰느라 고인을 기리는 일에 마음을 쓰지 못하거나 애도하지 못하는 일, 또 아예 동참하지 못하는 일 등은 없어야 하겠다.

심준구는 초등학교 때 발병한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인해 시력을 잃은 시각장애인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후 장애에 대해 자유케 됐고 새로운 것들에 도전해 장애인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국가공인컴퓨터 속기사가 됐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 지상파TV MC가 됐다. 대통령이 주는 올해의 장애극복상을 수상했으며, ITV경인방송에서는 MC상을 수상했다. 현재 KBS, MBC, SBS 등 자막방송 주관사 한국스테노 기획실장, 사회 강사, 방송인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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