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마비장애인인 차미경씨는 오랫동안 키워온 방송에 대한 꿈과 노력을 ‘차피디’라는 이름으로 펼쳐나가고 있다. ⓒ차미경

예전에 비하면 장애인이 등장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많아졌습니다. 그래도 제작을 담당하고 진행을 맡은 것은 대부분 비장애인. 아니나다를까 우리 장애인들이 꼭 전하고 싶은 것들은 팔 다리가 잘린 채 전파를 타기도 합니다.

마포 FM의 ‘함께 쓰는 희망노트’는 장애인들을 위해서 장애인들이 만들어가는 방송이란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스튜디오의 좁은 공간을 여러 대의 휠체어가 꽉 메운 녹음 분위기 자체가 남다릅니다. ‘함께 쓰는 희망노트’의 연출자 차미경씨를 만나봤습니다.

‘함께 쓰는 희망노트’에서 연출을 맡으셨죠. 어떤 일을 하는 건지요?

네, 일명 피디라면 연출 부분만 우아하게 담당하고 싶죠. 하지만, 제작 여건상 프로그램 구성과 대본, 엔지니어, 편집까지 다 담당해야 하는 그야말로 노가다(?)에요. 제가 기계치인데 지금은 편집도 혼자서 그럭저럭 해낼 정도로 발전했답니다.

‘함께 쓰는 희망노트’에 얼마전 좋은 소식이 있었다고요.

네, 지난 7월, ‘2007 전국 공동체라디오 어워드’에서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올해 처음 마련된 상인데요. 소출력 라디오 방송국이 꽤 되거든요. 정말 다양하고 많은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는데 우리에게 큰 상을 주신 거니까 기쁘죠. 상금으로 회식을 한다는데 기다리고 있어요.

방송 시작된 지 이제 꽤 되죠? 처음과 달라진 점이라면 뭐가 있을까요.

올 1월 1일부터 첫 방송을 시작했으니까 이제 8개월을 꽉 채워가네요. 8개월이란 시간만큼 방송이 익숙해졌다고 할까요. 무슨 일을 하든, 어디를 가든 희망노트에 쓸 꺼리를 찾게 되는 것도 변화라면 변화겠고요. 진행자를 비롯해서 각 코너를 담당하시는 분들이 이제는 마이크 앞에서 좀 덜 긴장하셔서 좀 더 듣기 편안한 방송이 되어 가고 있어요. 욕심내지 않고 조금씩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방송이 되고 싶습니다.

‘함께 쓰는 희망노트’를 함께 만들어가는 분들이 궁금해요. 어떤 일들을 담당하시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요.

저희 방송은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오후 2시부터 3시까지 방송되거든요. 요일별로 색깔과 스타일이 좀 다른데요. 우선 월요일 두 코너부터 소개할게요. ‘그녀들의 수다’는 제가 담당하는데 장애여성들의 삶과 차별의 문제를 가벼운 수다로 풀어가는 코너예요. 패널로 출연하는 장애여성들과 이런저런 세상사를 나누다보면 우리만이 공감하는 부분들이 있어 속이 후련해지죠. ‘두리의 일기’는 장애인으로 살면서 겪는 이야기를 꽁트 형식으로 엮어가는 재밌는 프로인데요. 주로 신선해씨가 작가로 참여하고 가끔은 저도 거들죠. 하석미씨가 진행해요.

'코너 피디'들을 정해 놓아서 역할 분담이 잘 돼 있다는 느낌이 드네요. 수요일 프로그램도 소개해 주세요.

그렇게 보이나요. 수요일, ‘세상의 중심 마포에서 장애인을 말하다’는 김정선씨가 코너 피디로 다양한 장애인 관련 분야에 대한 조사 및 인터뷰를 담당하고 있죠. ‘장애인의 세상 돋보기’는 지영선씨가 재가장애인들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고요. ‘마이크를 잡아라’는 장애인들이 직접 출연해서 자신들의 삶의 이야기와 노래로 꾸며지는 코너인데요. 안희정씨가 코너 피디로 섭외와 구성을 해주십니다.

'코너 피디'란 그 부문의 담당자가 자료조사부터 방송대본까지 모두 맡아서 해내야 하는 거라서 힘든 점도 있어요. 팔방미인이 돼야 한달까요. 대본은 누가 따로 써주고 목소리만 나갔으면 좋겠다고 푸념을 하면서도 열심히들 하세요. 참, 제일 많이 나오는 목소리의 주인공, 전체 진행자는 마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동희 소장님이랍니다.

‘함께 쓰는 희망노트’는 방송 소외계층인 장애인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라디오방송으로 여러 매체의 관심을 받았다. ⓒ한겨레

그럼 방송을 진행하는 분들이 모두 장애인인가요?

네. 언어장애가 있는 분도 있고요. 저도 수동휠체어를 사용해요. 수요일의 김정선씨와 지영선씨는 활동보조인과 함께 오셔야 하기 때문에 활동보조 시간에 맞춰 녹음 일정을 조정해요. 김동희씨도 전동휠체어를 쓰시죠.

우리 장애인들은 누구보다 열렬한 라디오나 티비의 애청자이면서도 방송에 참여하고 싶은 맘만 컸지 그럴 기회가 많지 않았죠. ‘희망노트’를 진행하는 분들에게 일어난 변화라든지, 참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희망노트에 참여하는 출연진들 대부분이 사회자, 성우, 방송작가 등 방송에 대한 관심과 끼를 가지신 분들이에요. 그런데 이 분들이 자신의 재능을 맘껏 표출할 수 있는 기회를 못 만났던 거죠. 말씀하셨다시피 방송에 참여하고 싶은 맘만 컸지 그럴 기회가 없는 현실에서 “그래, 그럼 우리가 해 보자!” 그렇게 의기투합해서 만들어진 게 바로 ‘함께 쓰는 희망노트’거든요.

희망노트로 인해 저희 출연진들은 각종 방송, 언론 매체에서 많은 출연제의와 인터뷰 요청을 받았어요. 장애인들이 당사자로서 직접 방송을 한다는 사실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호응을 불러일으켰던 거죠. 그런데 그런 것들이 더 나은 여건과 계기들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썰물 빠져 나가듯 사라져간다는 사실이 좀 안타까워요.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참 좋을텐데, 저희가 자원봉사 개념으로 일하다보니 어느 순간 경제적인 문제로 그만두게 되는 분들이 있는 것도 아쉽죠. 어쨌거나 ‘함께 쓰는 희망노트’가 방송을 꿈꾸는 많은 장애인들을 위하여 작은 오솔길이라도 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희망노트’엔 또 다양한 장애인 초대손님도 많던데요. 앞으로 담아내고 싶은 부분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희망노트를 통해 각양각색의 개성을 가지신, 그야말로 컬러풀한 분들을 많이 모시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고 있어서 안타깝죠. 방송 여건상 섭외의 어려움이 있고, 아직까지 굉장히 한정된 루트를 통해 게스트를 섭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거든요.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길을 묵묵히 만들어가고 있는 멋지고 당찬 장애인들의 모습을 많이 보여드리고 싶어요.

차미경씨는 ‘희망노트’를 진행할 즈음에 가족으로부터 독립생활을 시작한 걸로 아는데요.

올 6월로 제가 독립을 한지 1년이 됐습니다. 그야말로 독립생활 신참이죠. 그러나, 제 삶을 전적으로 제가 꾸려가면서 장애인 의식이 더 뚜렷해진다고 할까요. 이 땅에 장애인으로 살면서 내가 이뤄가야 할 장애인으로서의 사명감(?), 책임감(?) 같은 것을 많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을 방송에 투영하게 돼요. 저는 제가 방송을 통해서 ‘세상에게 말 걸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계속적으로 세상에게 말을 걸 수 있는 꺼리들을 제 독립생활이 마련해주고 있는 거죠.

핸드 콘트롤이 장착된 차를 스스로 운전하시죠. 정말 멋있어보였는데요. 운전, 두렵지 않았나요?

가끔 ‘두리의 일기’ 코너의 꽁트를 쓰는데요. 거기엔 제 경험이 토대가 된 이야기가 많이 들어 있습니다. 그 중에 운전을 하며 겪는 에피소드들은 거의 백 퍼센트 사실이죠. 제가 겁이 하도 많아서 돌아가신 저희 아버지는 걱정을 많이 하셨답니다. 그런데 그런 겁쟁이가 이제는 운전경력이 15년이나 됐네요. 처음엔 ‘소심운전’ 대명사였는데 운전하면서 산전수전 다 겪고 나니까 제법 대담해지던 걸요. 아무튼 운전을 못한다면 거의 이동이 불가능하니까 일을 하는데 있어 제게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운전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함께 쓰는 희망노트’를 들으면서 공감하게 되는 건 우리들이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장애인 바로 우리들의 목소리로 풀어나가고 있기 때문일텐데요. 방송을 들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나요?

감사합니다. 장애인들에게 더욱 더 가까이 가는 방송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희 방송은 마포 지역에서만 라디오를 통해 들을 수 있어요. 차 안이라면 마포가 아닌 인접 지역에서도 들리긴 하지만요. 그래서 저희 방송을 듣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인터넷을 통해 들으시는 겁니다. 마포 FM의 ‘함께 쓰는 희망노트’ 많이 많이 들어 주세요.

마포 FM ‘함께 쓰는 희망노트' http://mapofm.net

“장애인에게 제일의 경력은 장애 그 자체”라고 말하는 예다나씨는 22세에 ‘척추혈관기형’이라는 희귀질병으로 장애인이 됐다. 병을 얻은 후 7년 동안은 병원과 대체의학을 쫓아다니는 외엔 집에 칩거하는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8년간은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했다. 그 동안 목발을 짚다가 휠체어를 사용하게 되는 신체 변화를 겪으며 장애 경중에 따른 시각차를 체득했다. 장애인과 관련된 기사와 정보를 챙겨보는 것이 취미라면 취미. 열 손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을 빠르게 치다가 현재는 양손 검지만을 이용한다. 작업의 속도에서는 퇴보이지만 생각의 틀을 확장시킨 면에선 이득이라고. 잃은 것이 있으면 얻은 것도 있다고 믿는 까닭. ‘백발마녀전’을 연재한 장애인계의 유명한 필객 김효진씨와는 동명이인이라서 부득이하게 필명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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