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여러분! 안녕들 하신가? 게으른 필자 인사드린다.
오늘은 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 전에, 늘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장애인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한다. 늘상 주장하곤 하지만 이것이 정답이라고, 누군가 나서서 찾아주지는 않을 것이다. 서로간의 상상력이 발휘되고 의견을 같이 할 수 있을때 정답에 근접해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날씨도 더운데 무슨 개소리냐고 귀찮아하실 독자들도 계시겠지만, 같이 생각해봐줄 것을 부탁드린다.
먼저,
질문1) '안녕, 프렌체스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주인공 프렌체스카는 장애인일까? 아닐까?
여전히 텔레비전은 잘보지는 않지만, 얼마전 소위 잘나가는 연속극 중에서 안녕, 프렌체스카! 라는 호러코메디극이 있다기에 몇번 본 일이 있다.(좀 딴얘기지만 요즘 케이블은 재방송으로 뿌리를 뽑으려 든다.) 헌데 사건마다 재미있고, 웃음을 터트리게 하는 그 프로그램에서 유난히 신경이 집중되는 것이 있었다. 현실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흡혈귀라는 그녀가 만약 한국사회에서 살아간다고 가정을 해봤을 때, 사회환경에 적응하는데 불편함을 느끼는 프렌체스카 그녀가 바로 ‘장애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런지하는 것이다.
기실 우리는 조금씩 불편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누구나 사고나 손상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예비 장애인이라는 본질 왜곡적인 말이 아니다. 소위 비장애인이라는 것은 단지, 불편함을 못 느끼도록 사회적 제도장치가 혜택을 주는 것일뿐이며, 덜 혜택받았기에 사는 내내 사회적 장벽으로 불편을 뼈져리게 느껴야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다시 말해서 그 대상이 장애인이라면 소위 비장애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누구에게 미안함을 느껴야하는 것일까?
이번에는 좀 다른 상상을 해보도록 하자.
질문2) 만약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날개가 있었다면? '두발로 걸어다니는 사람'을 위한 계단은 만들어졌을까? 계단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해보도록 하자.
'날개를 몸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은 낭떠러지를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날개없는 사람들은 낭떠러지 앞에서 절망했을 것이다. 왜? 내게 날개가 없느냐고…. 그들은 낭떠러지 앞에서 쇠사슬을 목에 감고 호소했을지 모른다.
다시 한번 상상력을 발휘보기를 원한다. 날개없이 두다리로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위한 계단을 사회적 협조로 본다면 두다리로 걸어다니는 사람들은 장애인일까? 아닐까?
계단은 누구에게 필요한 것인가?
'장애'를 단지 신체적 손상만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 문제인가 말이다.
즐섹들 하시라!
꼬랑지) 더운데 짜증나셨을 독자들의 원망리플이 있어도 사양하지 않겠다. 아래주소로 멜질하시라.
그림: 병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