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토기풀꽃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사람은 샴쌍둥이로 태어나고, 토끼풀도 이렇게 샴쌍둥이꽃으로 피어났습니다. ⓒ김남숙

콩과의 여러해살이풀, 클로버(토끼풀) 꽃입니다. 유럽원산으로, 목초로 쓰기 위해 들여온 것이 널리 퍼져서 귀화식물이 되었습니다. 줄기가 옆으로 기면서 흙을 만나면 마디에서 뿌리가 내립니다. 잎은 어긋나며 잎자루가 길고 3출엽 입니다.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하는 네잎클로버는 4출엽으로 돌연변이로 생긴 것입니다. 잎 가장자리에는 잔 톱니가 있습니다.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긴 꽃대 끝에 둥글게 모여달리는 꽃 그 하나하나는 맨 아래쪽에서 먼저 피고, 차례차례 위쪽으로 피어 올라갑니다. 꽃가루를 묻혀 온 벌들이 곧바로 날아들어 꽃가루받이를 할 수 있도록 또한, 벌들이 꽃가루를 쉽게 묻혀가 다른 꽃에 꽃가루받이를 해줄 수 있도록 합니다. 아래쪽에서 먼저 핀 꽃들은 고개를 숙이고 위쪽에 모여달린 꽃봉오리는 먼저 피어나는 일이 없습니다. 꽃 한 송이가 피고 지는 일에도 서로를 배려하는 질서가 있음을 배우게 됩니다.

이른 아침 베란다 창문을 열고 내다보니 위층 할머니가 부산스럽게 움직입니다. 앗~!! 화단에 있는 토끼풀을 두 손으로 뜯어내고 계시네요. 아아… 나는 눈을 찔끔 감았습니다.

위층 할머니는 호랑이 할머니로 통합니다. 꽃도 무지 사랑합니다. 그리고 부지런하십니다. 너무 부지런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화단은 위층 할머니의 화단 가꾸는 정성으로 풀뿌리가 내리기 무섭게, 또 꽃이 피어 열매 맺히기가 무섭게 화단에서 뽑혀 나가고 맙니다.

잔디밭에서 자라는 토끼풀은 잔디가 자라는 것에 방해된다고 뿌리째 뽑힙니다. 화단에 있는 토끼풀은 또 다른 꽃들에 방해된다고 뜯기고 뽑힙니다.

많은 식물들이 다른 식물에 섞여 들어오든가, 바람에 씨앗이 날아오든가, 신발 밑창에 묻어와 싹을 틔우면 금세 자라납니다. 그 중에서도 무리를 이룬 토끼풀은 꽃을 피우기 전이라도 싱그러운 초록이 참 예쁩니다. 이런 토끼풀을 어떤 특정식물을 재배하는 농가도 아니니 그냥 자라게 놔두면 안 될까요?

창을 열어 보니 비 묻은 바람이 붑니다. 묵은 커피를 진하게 타서 들고 뒤뜰로 나가보니 보리수 열매가 익어가고 있습니다. 한가로이 화강암 바윗돌에 앉아서 비 묻은 바람을 쐬며 바람에 나풀거리는 토끼풀잎과 꽃과 벌들을 바라봅니다. 참 귀엽고 예쁘고 앙증맞고 또 성스럽습니다.

잎 사이사이 네잎 클로버도 찾아봅니다. 세잎 클로버도 있고, 네잎 클로버도 있고, 여섯 잎 클로버도 있습니다. 가만가만 들여다보고, 가만가만 바라보니 보이는 것도, 들리는 소리도 참 많습니다.

꽃이 시든 다음부터 더욱 튼실해지는 꽃대와 꽃자루에 눈길이 머물고, 멈춘 눈길에 마음이 머물게 됩니다. 아무리 볼품없어 보이는 꽃이라도 빠뜨리지 않고 꽃가루를 채취하면서 꽃가루를 묻혀다 주고, 꽃가루를 묻혀가는 벌들에게서 신의 손길을 봅니다.

풀꽃에 앉은 벌의 뒷다리에 붙여둔 꽃가루 뭉치, 일을 시작한 지 오래된 녀석의 다리엔 꽃가루 뭉치가 크고, 이제 막 일을 시작한 녀석의 다리에 묻은 꽃가루 뭉치는 아직 작습니다.

꽃가루를 한껏 뭉쳐서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앉아 쉬는 법이 없는 벌들을 보면서 내가 사는 일상의 일을 돌아보게 됩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하여 도움 되는 일을 얼마나 하고 있으며, 얼마나 부지런히 먹고 사는 일에 충실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풍성하지 않아 볼품없는 꽃이라도 빠뜨리는 일 없이 찾아드는 벌의 모습에서 신의 손길을 봅니다. 벌의 뒷다리에 채집한 꽃가루가 뭉쳐있습니다. ⓒ김남숙

꿀벌의 꽃가루채집. ⓒ김남숙

수정을 마친 토끼풀꽃의 정숙한 모습입니다. ⓒ김남숙

토끼풀꽃은 맨 아래쪽에서 먼저 피고, 차례차례 위로 올라가면서 핍니다. 그 질서를 거스르는 법이 없습니다. ⓒ김남숙

수정이 끝난 꽃들은 고개를 숙여서 다른 꽃들이 꽃가루받이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줍니다. ⓒ김남숙

김남숙은 환경교육연구지원센터와 동아문화센터에서 생태전문 강사로 활동하며 서울시청 숲속여행 홈페이지에 숲 강좌를 연재하고 있다. 기자(記者)로 활동하며 인터뷰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숲에 있는 나무와 풀과 새 그리고 곤충들과 인터뷰 한다. 그리고 그들 자연의 삶의 모습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어 한다. 숲의 일상을 통해 인간의 삶의 모습과 추구해야 할 방향을 찾는 김남숙은 숲해설가이며 시인(詩人)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