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오월을 불륜으로 얼룩진 유쾌한 영화로 시작한다.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 ⓒ씨네서울

아내가 바람이 났다. 상대는 서울에 사는 개인택시 기사다. 도장업자인 소심한 남편은 양양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온다. 상대남의 동네에서 기웃거리다 우연을 가장해 택시를 타고는 낙산까지 장거리를 제안한다. 승객이 누구인지 까맣게 모른 채 신나게 선수로서의 무용담을 떠벌이는 놈이 가증스럽지만 아무 말도 못하고 함께 술도 마시고 잠도 자게 된다.

어영부영 엮여서 함께 발가벗고 헤엄도 치는데…. ⓒ씨네서울

우여곡절 끝에 낙산에 도착한 후 예상대로 자신의 집에서 아내를 만나는 광경도 목도하지만 여전히 아무 말도 못 한 채 놈의 택시를 훔쳐 타고 서울로 와서 놈의 아내를 만난다. 아내의 애인을 한 달음에 쫓아가서 멱살을 틀어쥐고 패대기를 쳐도 시원치 않을 판에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하고 기껏 상대남의 아내와 마주앉아 신세타령이나 하는 이 남자. 대한민국 최강의 ‘소심남’(소심한 남자)임에 틀림없다.

거기 누구없소~ (환상의 커플). ⓒ씨네서울

이 소심한 남자가 뻔뻔하기 짝이 없는 바람남의 택시에서 두 눈을 확 뽑아놓고 그의 아내와 벗은 채 누워있는 광경을 본 선수는 기가 막힐 따름이다. 쿨한 선수도 그 꼴만은 못 견디겠던지 반년이 지난 후에 남편을 찾아와 정말 아내와 잤느냐고 애원하듯 묻는다. 머뭇머뭇 주저주저 선수의 애간장을 녹이는 소심남의 복수 아닌 복수! 웃음이 터져 나온다.

적과 함께 길 위에 서다. ⓒ씨네서울

바람난 아내와 바람난 남편…. 남자와 여자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로 뭔가 사건을 엮어내고 이야기를 버무려내는 것은 홍상수 감독의 주특기가 아닌가?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홍상수 영화의 지적인 주인공들은 찾아 볼 수 없다.

손바닥만한 도장포에 쭈그리고 앉아 남의 이름을 새겨주는 갑갑한 남편, 선수인 택시기사와 허름한 주점을 운영하는 택시기사의 아내. 모두 어디로 보나 평균 이하의 인물들이다. 선수인 택시 기사는 남편에 비해 얼핏 보기엔 자유로울 것 같지만 그 역시 손님이 타기 전에는 아무 목적지도 없이 그저 거리를 배회하는 정처 없는 인생일 뿐이다.

이렇게 누구하나 더 잘나고 못나지도 않은 고만고만하게 수준 낮은 남자들과 여자들의 치정이야기는 ‘섹스 후에 모든 짐승은 슬프다’라는 근사한 프랑스 영화 제목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리 고상하고 근사한 사랑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저 육체적인 힘과 성적 매력으로 다른 경쟁자들을 압도하고자하는 수컷들의 욕망은 우습다 못해 어처구니없기도 하다. 열등감에 몸부림치면서도 월등한 상대의 실체를 확인하고픈 욕구를 참을 수 없는 수컷의 행태에 실소하면서 내 영역을 침범당하고 배신당한 이들 사이에 흐르는 서글픈 동지의식을 느끼며 함께 키득거리고 구시렁거릴 수 있는 영화다.

게다가 갑갑·답답·완전소심남(완소남)의 복수에 애간장이 타는 뻔뻔했던 선수. 전세역전 통쾌하다!

타고난 호기심으로 구경이라면 다 좋아하는 나는 특히나 불 꺼진 객석에서 훔쳐보는 환하게 빛나는 영화 속 세상이야기에 빠져서 가끔은 현실과 영화의 판타지를 넘나들며 혼자 놀기의 내공을 쌓고 있다. 첫 돌을 맞이하기 일주일 전에 앓게 된 소아마비로 지체장애 3급의 라이센스를 가지고 현재 한국DPI 여성위원회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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