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 로버츠의 집을 2번이나 방문한 세이케(왼쪽). 에드는 집에서 대부분 철제 인공호흡기 안에 들어가 지내며 잠잘 때도 사용한다. ⓒ세이케

세이케 카츠오 씨는 85년 11월부터 1년간 미국 버클리자립생활센터의 활동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유학생활을 했습니다. 고교시절 운동을 하다 다쳐 장애인인 된 그로선 꿈도 꾸지 못했던 도전이었죠. 경추 5번 손상으로 손놀림도 둔한 처지라서, 엉덩이에 욕창이 생기고 요로감염으로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는데요. 그런 모든 것들이 자립생활 서비스를 파악하는 과정이 되었습니다.

세이케 씨는 자립생활 서비스에 대해 세 가지를 중점적으로 살폈다고 합니다. 첫째, 미국, 특히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재산이나 수입이 없는 장애인들이 어떤 근거에 의해 어떤 곳에서 활동보조인을 고용할 비용을 지원받게 되는가? 둘째,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을 때, 응급사태 관리(emergency management)는 누가 담당하는가? 셋째, 미국 사회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중증 신체장애인들의 실태와 그들 인생에서 과연 패자 부활전은 있는지?

실제로 미국에서 실시하는 활동보조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중증 신체장애인이 어디까지 자유롭게 살 수 있는지 시험대에 오른 셈인데요. 일본에서 ‘중증 사지마비인의 취업 문제 연구회’를 설립한 것은 그 결실로 보입니다. 이 글을 읽어보면 자립생활의 창시자, 에드 로버츠와의 대화는 그 사상의 배경이 된 것을 알 수 있거든요. 에드 로버츠의 알려지지 않은 사진과 생활을 살펴볼 드문 기회라 옮겨봅니다.

*이 글은 세이케 카츠오 씨가 1987년 10월, ‘척손뉴스’(일본 전국척수장애인연합회 발간) 에 기고한 ‘미국에서의 일년’과 1991년의 글을 정리한 것입니다.

인간의 인간에 대한 원조의 근거

나는 미국에서 자주 활동보조 서비스 비용에 대해 공적 원조의 근거를 물어보았다. 나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원조의 근거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에드 로버츠는 이미 책에서, “모든 사람들은 현재 시점으로 정상으로 개념화해야”하고, “장애를 가졌을 때에 어떻게 생활하는가 하는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우리 모두의 유익의 문제로 봐야 한다.” (로버츠; "자립생활: 창시자의 견해" p.2 )라고 쓰고 있었다.

그리고 에드는 그의 집에서, “소아마비, 척수 뇌손상, 뇌성마비와 같은 장애를 가지는 일은 우연이다”라고 말했다. 또, “모든 사람은 장애를 갖게 되면 적절한 의료처치를 받고 알맞은 재활훈련과 지역사회 안에 어울리고 자립생활을 누릴 권리를 얻어야 한다. 누구든지 그렇게 믿을 권리를 가져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인 요구는 단지 정부만이 완수할 수 있다.”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활동보조 서비스 프로그램에 관해서, “소아마비 때문에 활동보조 서비스를 지지하게 되었다. 기회의 평등이라고 하는 면에서 생각해 보자. 활동보조 서비스가 있으면, 장애인들도 일할 수 있다.”

그 후의 만남, 그리고

1991년 토요타 재단의 연구 과제 ‘고도 기술 사회의 진전과 외상성 중증 전신마비 장애인의 생산활동 참가 과정에 관한 일·미 비교 연구 및 하이테크의 활용에 의한 새로울 가능성에 관한 연구’로 미국으로 조사 연구 여행을 갔다. 자립생활 회의에서 에드와 3일간에 걸쳐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1972년 에드가 창설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한 버클리자립생활센터는 장애인 자립생활 운동을 낳아 온 세상에 퍼졌다. 자립생활센터의 모델이 되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자립생활을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적인 핵심 서비스들을 계속 제공하고 있다.

에드는 인생의 도중에 몸이 마비되어 철제 인공호흡기와 전동휠체어 등을 사용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을 정도의 중증 신체장애인이 되었지만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무한하고 훌륭한 가능성을 추구하고 전개해나가 미국 사회를 바꾸었다. 그는 자립생활 운동의 창시자다. (끝)

“장애인에게 제일의 경력은 장애 그 자체”라고 말하는 예다나씨는 22세에 ‘척추혈관기형’이라는 희귀질병으로 장애인이 됐다. 병을 얻은 후 7년 동안은 병원과 대체의학을 쫓아다니는 외엔 집에 칩거하는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8년간은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했다. 그 동안 목발을 짚다가 휠체어를 사용하게 되는 신체 변화를 겪으며 장애 경중에 따른 시각차를 체득했다. 장애인과 관련된 기사와 정보를 챙겨보는 것이 취미라면 취미. 열 손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을 빠르게 치다가 현재는 양손 검지만을 이용한다. 작업의 속도에서는 퇴보이지만 생각의 틀을 확장시킨 면에선 이득이라고. 잃은 것이 있으면 얻은 것도 있다고 믿는 까닭. ‘백발마녀전’을 연재한 장애인계의 유명한 필객 김효진씨와는 동명이인이라서 부득이하게 필명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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