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신문기사에 댓글 논쟁이 붙었습니다. “장애자라고 쓰지 마세요. 장애우가 맞습니다.” 다른 네티즌이 반박합니다. “그럼 댁은 우리 어머니는 장애우이십니다, 이딴 식으로 말합니까?"“친근한 어감이 드는 건 장애우예요.” 이쪽이 맞다, 저쪽이 맞다, 읽다보면 아리송해지는데요. 장애자, 장애우, 장애인, 어떤 말이 맞을까요?

영화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 좀 살펴볼까요. 약사인 한석규 씨가 장애인 형을 돌보느라 결혼도 못한다는 내용인데요. 형 역을 맡은 이한위 씨의 연기가 눈길을 끌었죠. 그런데 형은 어떤 장애가 있을까요? 정신장애일까요, 정신지체일까요? 영화정보와 해당 배우의 인터뷰를 종합해 보면 ‘정신분열증을 앓는 정신지체인’이라고 합니다. 정신장애와 정신지체, 엄연히 다른 장애유형을 혼동하고 있는 건데요. 영화의 완성도가 의심되는 대목입니다. 모르는 사람 눈에는 그게 그거지 싶어도 정신장애와 정신지체는 행동양상이 다르거든요.

영화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에는 장애인 형(가운데)이 등장한다. ⓒ오브젝트필름

“아우, 뭐가 이리 복잡해? 대충 아무거나 씁시다!” 미간에 주름 세개는 잡으셨나요? 혹시 장애인은 말꼬리나 잡고 늘어지는 까탈스러운 사람들이라고 할까봐 조심스러운데요. 이렇게 바꿔 생각해보죠.

헐리웃 영화에 한국인 배역이 등장해요. 반가운 마음에 봤더니 입만 열면 엉터리 한국어를 써요. 민속의상이라며 기모노를 입고 나와 샤미센을 뜯는 건 또 어떻고요. 잘 만든 영화라고 국제영화제에서 상도 타고 비평가들의 극찬까지 받네요. 이거 이거, 우리나라 네티즌들 와글와글 영화사 홈페이지를 마비시켜 놓지 않겠어요.

우리 장애인들이 말하고 싶은 게 바로 이런 거예요. 87년 간호원이란 명칭이 간호사로 개정된 후 나이드신 분들이나 간간이 실수를 할까 공식적으로 간호원이라고 불리는 일은 거의 없는데요. 유독 장애인 문제만 예외가 적용되나봐요. 얼마 전 보도된 ‘취업성공 수기집’ 기사를 예로 들게요.

취업이 사회문제이다보니 꽤나 많은 신문사의 사회면을 장식했는데요. 척추장애인의 취업사례가 초점이 되었더군요. 그런데 굳이 ‘곱사등이’라는 용어를 남발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구루병’이라든가 ‘등이 굽은’ 혹은 ‘척추가 튀어나온’ 같은 완화된 표현을 쓰면 극적 효과가 떨어질까요. ‘장애’를 강조함으로써 ‘성공’을 돋보이게 만드는 것일 텐데요. 이게 문제라는 거죠. 장애인은 이럴 때 기분이 나빠지거든요. 언론에 오르는 게 범법자도 아니면서 가문의 경사가 아니라 감추고 싶은 일이 되는 거예요. 이런 기분, 담당 기자님이야 당해보지 않았으니 알 턱이 없죠.

‘정상인도 어려운’이라든지 ‘장애를 극복하고’ 등등의 구태의연한 표현도 좀 바꿔주세요. 다르게 쓸 순 없는 건지. 발상의 전환 그거 좀 해주세요. 대중 매체는 자연스레 잘못된 언어습관도 고쳐주고 사고방식까지 새롭게 바꿔주죠. 그만큼 영향력이 대단하다는 건데 정확한 지식없이 어떻게 올바른 이해를 불러오겠어요. 기사속에, 방송에, 영화에 장애인을 담아내는 분들에게 부탁드려요. 이왕 선의를 가지고 써주는 거 제발, 제대로 좀 써주세요. 곧 4월이 다가오는데, 장애인의 달이라고 잠시 반짝 장애인이 등장하는 기사와 방송이 늘어날 텐데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장애인에게 제일의 경력은 장애 그 자체”라고 말하는 예다나씨는 22세에 ‘척추혈관기형’이라는 희귀질병으로 장애인이 됐다. 병을 얻은 후 7년 동안은 병원과 대체의학을 쫓아다니는 외엔 집에 칩거하는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8년간은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했다. 그 동안 목발을 짚다가 휠체어를 사용하게 되는 신체 변화를 겪으며 장애 경중에 따른 시각차를 체득했다. 장애인과 관련된 기사와 정보를 챙겨보는 것이 취미라면 취미. 열 손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을 빠르게 치다가 현재는 양손 검지만을 이용한다. 작업의 속도에서는 퇴보이지만 생각의 틀을 확장시킨 면에선 이득이라고. 잃은 것이 있으면 얻은 것도 있다고 믿는 까닭. ‘백발마녀전’을 연재한 장애인계의 유명한 필객 김효진씨와는 동명이인이라서 부득이하게 필명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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