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이 안 보이면 소리에 의지해 살고, 귀가 안들리면 눈으로 보면 돼요. 하지만 눈도 안 보이고 소리도 안 들리면 암흑 같은 절망뿐입니다.”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나 눈이 보이지 않는 김건형씨는 열살에 청력에도 이상이 와 시청각 중복장애인이 되었다. 보청기를 끼고 다니지만 대화 내용을 혼동하기 일쑤여서 사회생활이 어렵다. 맹학교에서 간신히 따낸 안마사 자격증으로 취직했지만 결국 쫓겨났다. 손님을 맞을 때면 등이 결린다는데 팔을 주무를까봐 식은 땀을 흘리면서도 그만두지 못했던 직장이었다. 점자도서관에서 점역 교정사로 일하던 것도 의사전달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탓에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었다.
보청기조차 사용할 수 없는 고도 난청에 전맹인 조영찬씨는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닥치는대로 점자책을 읽으며 지냈다. 배움에 대한 열정이 가득해 다양한 방면의 독서로 지식을 쌓았지만 끝없는 고독만 쌓일 뿐이었다. “무엇을 하려 해봐도 앞뒤 좌우가 꽉 막힌 벽이에요. 사는 게 비참해서 한동안 폭음에 절어 지낸 적도 있어요.”
헬렌 켈러가 그랬듯이 설리반 선생님을 만나면 세상과 어울릴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은 막연한 꿈을 꾸었다. 그것은 잡히지 않는 꿈이었다. 하지만 일본 시청각장애인들이 사는 모습은 그들을 변화시켰다. 눈과 귀가 되어주는 손가락 점자 통역으로 도쿄대 교수까지 될 수 있었던 후쿠시마 교수의 인생역정은 먼 나라 사람의 것이 아니라서 피부에 와닿았다. 더구나 특출난 몇몇만이 아니라 평범한 장애인들도 통역 서비스의 혜택으로 사회활동에 참여한다는 대목에서 무릎을 쳤다. 캐보니 일본에는 시청각장애인협회가 결성돼 교육과 재활을 지원하고 있었다.
그들은 인터넷 카페에 동호회를 만들고 같은 입장의 동지들을 찾기 시작했다. 알음알음 시각장애인 틈에, 청각장애인 틈에 숨어있던 중복장애인들이 모여 들었다. 일반인 중에도 질병이나 나이를 먹으면서 청력과 시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때문에 밝혀지지 않았을 뿐이지 시청각 중복장애인들의 숫자는 의외로 많다는 것이 이들의 견해다.
결국 복지계에서도 알아주지 않는 고민을 풀어가기 위해 3월 16일(금)에 ‘시청각장애인 자립지원회’를 발족하기로 했다. ‘시청각장애인 자립지원회’ 준비위원인 신경호씨는 “점자를 통해 시각장애인들의 삶에 새 바람이 일어났듯이 시청각 중복장애인들에게는 손가락 점자가 필요합니다.”라며 행사 장소인 송암기념관은 한글 점자의 창시자, 송암 박두성 선생을 기리는 곳이라고 밝혔다. “시청각장애인이 겪는 제일 큰 어려움이 의사소통 문제입니다. 손가락 점자가 가장 정확한 대화 방법이죠. 헬렌 켈러와 설리반도 이 방법으로 공부했는데 우리나라에선 연구조차 되어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헬렌 켈러가 그랬듯이 후쿠시마 교수가 그랬듯이 적절한 지원만 있다면 시청각 중복장애인들도 교육을 받고 일하며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다. 점자단말기 같은 정보 통신기기도 소리와 빛이 사라진 이들에게 세상을 열어주는 열쇠가 된다.
시청각장애인들은 스스로 팔을 걷어붙이고 교육과 재활을 위한 방법을 찾아갈 계획이다. ‘시청각장애인 자립지원회’ 결성식을 축하하기 위해 날아오는 후쿠시마 교수를 통해 역할 모델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길은 멀지만 그들에겐 한국의 헬렌 켈러가 되고픈 가슴 두근거리는 소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