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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말순씨

지나간 시절, 사랑했던 이들은 지금 그리움으로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07-03-01 02:05:59
사랑해, 말순씨.  엄마 사랑해. 에이블포토로 보기 사랑해, 말순씨. 엄마 사랑해.
어린 여동생은 "엄마, 사랑해"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지만 광호는 한 번도 그 말을 해보지 못 했습니다. 엄마는 떠나고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이제야 소리내어 말해봅니다. "엄마 미안해. 엄마 사랑해."



1979년 10월 27일 박정희 대통령 유고. 에이블포토로 보기 1979년 10월 27일 박정희 대통령 유고.
춥고 긴 겨울이 가고 드디어 봄이 오는 줄 알았습니다.

거리에 탱크와 군인들이 가득 탄 트럭이 질주해도, 대통령의 유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길 없는 아이들은 뜻 밖의 자습 시간이 신나기만합니다.



우리 엄마 아니야! 에이블포토로 보기 우리 엄마 아니야!
중학교 1학년,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광호는 모든 것이 못 마땅하기만합니다.
특히나 엄마, '유고'의 뜻도 모르는 무식한 우리 엄마, 엄마 냄새 대신 독한 화장품 냄새만 요란하고 눈썹까지 밀어버려서 괴물처럼 보이는 우리 엄마, 후루룩 거리며 커피를 마시는 우리 엄마, 시내 버스에서 여학생을 밀치고 자리에 앉아서 광호를 부르는 엄마가 창피하기만 하고 사사건건 짜증의 대상입니다.

그런 엄마에 비해 같은 반 상수 엄마는 얼마나 우아하고 고상한지, 그리고 아랫방에 세들어 사는 은숙누나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은숙누나를 위해서라면 못 할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발길~을 돌리려고 바람부는~대로 걸어도~~. 에이블포토로 보기 발길~을 돌리려고 바람부는~대로 걸어도~~.
은숙누나를 향한 광호의 마음은 꿈에서 이루어지는데……. 광호의 첫번째 몽정은 '김재규에 사형 구형'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린 신문지에 둘둘 말려 버려지는데, 아~ 웬수같은 재명이 형때문에 들키고 맙니다.

엄마는 이 바보가 뭐가 좋은지, 재명이 형이 엄마 아들이라면……. 내가 아름다운 상수 엄마의 아들이라면…….

내 하나의 사랑은 가고. 에이블포토로 보기 내 하나의 사랑은 가고.
은숙누나를 위해서라면 못 할 것이 없는 나는 주사를 열 대나 맞았고 누나는 두 가지 비밀을 말해줍니다.

간호대학교를 나오지 못 했기때문에 정식 간호사가 아니지만 언젠가는 진짜 간호사가
되겠다는 꿈과 서울말 쓰기가 허벌나게 어렵다는 누나를 지켜주겠다고 결심하지만 내
하나의 사랑은 가고…….

그 분이 등장하셨습니다. 에이블포토로 보기 그 분이 등장하셨습니다.
나랏님이 돌아가셨는데도 축구나 한 생각없는 아이들은 냄새나는 양말을 낀 선생님의 주먹에 무차별로 얻어터지고 교실에는 새로운 나랏님의 사진이 걸리지만 '유고'된 나랏님의 흔적은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아이들은 친구의 엄마가 선생님께 건네는 봉투를 보고, 삼류극장에 숨어들어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를 보며 넋이 나가고, 손가락 두 개가 뭉텅 잘린 철호는 급우의 공납금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혹독한 매질을 당한 후 퇴학을 당합니다.

다운증후군 재명이형은 골목을 지나가는 여자들 앞에서 바지를 내리다가 삼청교육대로 끌려갑니다.

무거운 화장품 가방만큼 고단한 엄마의 삶. 에이블포토로 보기 무거운 화장품 가방만큼 고단한 엄마의 삶.
사우디에 간 아빠는 소식이 없고 화장품 외판원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엄마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지, 바보 재명이 형도 알았는데 광호는 몰랐습니다.

엄마는 병이 깊어 외가로 가고 광호는 어린 여동생과 남겨집니다. 그토록 좋아했던 은숙누나가 밥을 해주지만 엄마가 없는 집은 그저 빈집일 뿐입니다.

그 해 봄 광주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에이블포토로 보기 그 해 봄 광주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급하게 고향으로 돌아간 은숙누나는 담벼락에 붙은 간호학원 포스터 속에서 나이팅게일처럼 웃고 있습니다.

믿을 수 없지만. 에이블포토로 보기 믿을 수 없지만.
"엄마가 돌아가셨다, 아니다, 돌아가셨다, 아니다. 아니다."

살려달라는 엄마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달라고 기도했지만 엄마는 끝내 떠나고 엄마대신 사우디에 계신 아버지께 편지를 씁니다. 엄마는 더 이상 편지를 쓸 수 없으니까요.

그래도 아이들은 이렇게 살아남습니다. 에이블포토로 보기 그래도 아이들은 이렇게 살아남습니다.
1979년에 중학교 1학년이었던 광호와 철호, 사랑을 못 받아서 그렇게 되어버렸다는 다운증후군 재명이, 허벌나게 어려운 서울말을 쓰면서 정식 간호사의 꿈을 키우던 은숙누나, 그리고 엄마가 살아온 그 시절, 삶이 식어버린 연탄재처럼 집 밖에 내놓아졌던 시절, 무심한 발길질에 부서져 골목길에 흩어진 연탄재같은 꿈을 꾸던 시절, 예견이라도 하듯 엄마는 광호에게 밥물 맞추는 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손가락 세 번째 마디까지야."

"우리같이 고두밥을 좋아하면 두 번째 마디까지, 진밥을 좋아하시는 아버지가 오시면 세 번째보다 위 손등까지."

"오빠, 사랑해." 어린 여동생이 작은 손을 올려놓습니다.


칼럼니스트 이서 (pershed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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