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는 여성을 주제로 많은 그림을 남겼는데 뭉크는 결코 여성은 결코 아름답거나 성스럽게 그리지 않았습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병약했던 뭉크는 평생 혼자 살았는데 여자에 대해 두려워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 뭉크의 여성관은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 되었습니다.

<마돈나> <입맞춤><질투>등 6점의 그림은 사랑의 두근거림, 동경, 사랑의 성취와 황홀, 그리고 배신과 질투..뭉크의 삶의 거울인 <마돈나>와 <입맞춤>은 성적 욕망과 개인의식의 상실로 보기도 합니다만, 뭉크의 '사랑과 죽음'은 그가 집요하게 작품을 통해 보여주려했던 죽음과 공포를 넘어 오히려 생의 찬란함을 노래했던 것으로 보이니 제 눈이 잘못된 것일까요....


붉은 머리의 누드
(튤라 라르슨)1902



뭉크의 담배를 든 자화상 1895

뭉크 주변의 여인 '튤라 라르슨'은 관능적 매력이 넘친 여성이었습니다. 결혼을 원했으나 뭉크는 이 결혼을 원치 않았지요. 다혈질인 '률라 라르슨'은 결혼을 피하는 뭉크를 여러번 위협했으며 1902년 급기야 다혈질인 튤라는 뭉크와 실랑이를 하다가 권총이 잘못 발사되어 뭉크의 왼손 중지손가락을 명중하게 되었습니다

노르웨이 전통에도 중지손가락이 결혼반지를 끼는 손가락 이지요. 하필 그 손가락에 명중 되어 두사람은 실랑이를 벌이게 되었고 뭉크는 튤라 라르슨을 피해 다녔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뭉크는 왜 그토록 그 여성의 간청을 거절해야만 했는지.

The Day After 1894-95.

가장 뭉크적 특성을 보이는 그림으로 보여지는데. 글쎄요. 여성을 섬찟하게 그린 화가로 알려진 뭉크의 그림중 가장 특별합니다. 이 그림에 보이는 여인은 어느날 오후 한잔의 술을 마시고 정신없이 낮잠을 자는 걸까요,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걸로 봐서 대낮 같기도하고유난히 달빛이 밝은날 밤 같기도 합니다.

죽음과 소녀 Death and the Maiden, 1893.

이 그림을 그릴때의 뭉크의 컨디션은 어땠을까요..뭉크는 여성의 표현을 <병든 소녀>와 같은 침울한 그림을 그렸는가 하면 <죽음과 소녀1893> 에서는 무엇엔가 쫒기듯 격렬하게 끌어안고 키스를 하고있는 모습을 봅니다.

사람의 형태를 거칠게 허물고 뒷배경을 어둡게 한뒤 복잡한 선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두 남녀(Death)중 여성의 모습을 두드러지게 보이게 그렸습니다. 이 그림에서 불안한 정서를 본다고들 하는데 그림속의 여인은 소녀라기 보다 성숙한 여인의 모습이었는데 뭉크는 여성을 성숙한 모습으로 그린 이면에 언제나 소녀이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는것으로 읽혀집니다.

나이가 들지 않는 소녀는 늙거나 병들거나 사랑하거나 두려워하거나 죽음에 이르기 까지에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고 생각해서 일까요.

이 사건이 지난 몇년후 뭉크는 피해망상증으로 사람도 만나지 않았고 우울하게 보내는 가운데 새로운 그림을 끊임없이 그렸습니다. 예술가들이 숭고하다고 생각되는 점은 바로 이러한 불행가운데 마지막 정점을 향해 두려움없이 나아간다는 점이겠지요.

뭉크는 더욱 독특한 화풍을 열어 나갔는데 색상은 더욱 밝아졌으나 그림속 인물의 표정은 읽을수 없이 그려져 어둡고 정적이 감도는것만 같아지지요.그의 상징적 화풍인 거칠고 난폭한 표현은 사라지고 자연이나 밝은 색채가 등장 합니다.

별이 빛나는 밤 1923-1924.

'별이 빛나는 밤 1923-1924'이나 '크라게료의 겨울 풍경 1925-1931'은 밝고 생명감 넘치는 보색으로 화면을 구성한것을 보면, 그를 한평생 괴롭혀온 주제에서 벗어나 희망과 사랑의 색상으로 바뀌어 집니다.

이 시기는 사랑이나 사회적 관심에 눈을 돌린 시기였고 그의 작품을 표현주의로 바라보는것을, 그는 결단코 거부 하는데요. 아무래도 그는 단호하고 고집스런 사람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또한 이때 그는 기념비적 벽화제작을 했는데 오슬로대학 강당의 벽화 3부작(1911-1916),과 오슬로의 공장 근로자를 위한 열두개의 벽화제작 입니다. 뭉크의 말년은 매우 패쇄적이고 고독했다고 하나 그의 내부에서 속삭이는 행복이 있었을거라는 생각을 조심스레 피력해 봅니다.

그는 화가로서 드물게 많은 글을 남겨 그의 그림을 문학적으로 보기도 한댑니다.. 실제로 그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극작가 입센, 시인 보들레르, 철학자 헤겔, 니체 등과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키에르케고르'의 메시지는 그 당시 많은 문인들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고 뭉크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는지 그의 사후 유품에서 키에르케코르의 저서가 나왔다고 합니다.

에드워드 뭉크(1863.12.12-1944.1.23)는 5살때 어머니와 1살 위인 누이를 폐결핵으로,

26살에 아버지와 누이를 잃었고, 나이 30을 전후해 사랑하는 가족을 모두 잃어야했던

가혹한 운명의 소유자 였지만 그런 환경을 그림으로 표현해내어 우리는 그림을 보면서

뭉크의 환경과 심리적인 부분까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살아있는 자에게 주는 충격의 무게를 재 파악하여 삶에 대한 끈질긴 투쟁을

했습니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죽음을 경험했다. 진정한

탄생, 즉 죽음 이라는 존재가 또 나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한 세기전 노르웨이 최고의 모더니스트 화가 에드와드 뭉크의 고백입니다.

그가 남긴 작품은 모두 오슬로시에 기증 되었습니다.

이름 : 에드바르트 뭉크 (본명 : Edvard Munch)

출생 : 1863년 12월 12일

사망 : 1944년 1월 23일

출생지 : 노르웨이

그림 이미지출처 : http://www.edvard-munch.com/Paintings

그림 이미지출처 : http://www.ibiblio.org/wm/paint/auth/munch/munch

Nov.01.06 JeeJeon

지전 김종순은 태어나 첫 번째 생일이 되기 바로 전 소아마비를 앓았다. 어릴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지전은 몇 번의 그룹전을 하고 난 후, 그냥 그림 그리는 일이 심심해져서 첫 번째 개인전을 시작으로 1000호의 화선지위에 올라타고 앉아 음악을 그리는 일(퍼포먼스)을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언론매체를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지전의 화두는 '청각적 시각, 촉각적 시각'이다. 그녀는 음악을 그리는 일은 새로운 방식의 일이어서 일상에서 거의 유배된 생활 같아 가끔은 마음이 저릴 때도 있지만 많은 예술가들의 삶을 쓰면서 위로 받게 되었다고. 최소한 평등한 인간의 모습을 성실하게 기록함으로써 이웃과 소통하며 그녀가 소망하는 평등한 세상이 비록 희망뿐이더라도 그 표현의 여러 기록중 하나이고 싶기 때문이다. 18회, 19회 미협에서(국전) 2번 입선. 이화여대 경영연구소 蘭谷書會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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