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께부터 저는 많이 고생했습니다. 저마저 코로나19에 확진되는 바람에, 그 시점에 저는 내내 격리를 해야 했습니다. 꽤 많이 힘들었었는데, 이번에 코로나19 확진으로 인한 격리를 경험해본 뒷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코로나19를 의심한 것은 지난 2월 하순이었습니다. 열이 올라오고, 목이 칼칼해지는 현상을 경험했을 때, 그것이 코로나19의 영향이라고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 단지 열이 좀 올라오고, 목이 일시적으로 안 좋아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지난 2월 27일 점심을 마치고 구토를 했을 정도였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코로나19 일부 증상으로 구토가 있었다고 합니다. 맛있게 마신 커피까지도 역류하여 구토했을 정도였으니 얼마나 그렇게 힘들었는지를 알 수 없었습니다.

필자에게 전달된 코로나19 검사 결과 양성 판정이 나왔음을 알리는 문자 메시지. ⓒ장지용

의심은 결국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이러한 문제로 병원 진찰을 갔더니만, 코로나19 신속항원검사에서 양성 통보를 받아 결국 PCR 검사로 인계되었고 정식 확진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 날이 2월 28일에 검체 채취를 했었고 결국 지난 1일 확진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 순간부터 본격적인 격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격리 생활의 문제점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제가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생활을 하더라도 가족과 같이 생활했다는 것입니다. 혼자서 자립생활을 했다면 상대적으로 위험 요소를 줄여서 생활할 수 있었겠지만, 그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격리 생활을 하면서 어려웠던 것은 가족들과 접촉을 줄이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가족 전원이 차례대로 확진 판정을 받아 더 며칠간 고생을 했을 정도였습니다. 식사는 외부에서 시켜먹는 것으로 해결해야 했었고, 특히 햄버거를 많이 시켜 먹었습니다. 햄버거에는 수저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일회용 수저도 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외 식사에서는 일회용 수저와 그릇을 사용하는 등, 집안 집기 사용 비중을 대폭 줄였습니다.

구직 생활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다행히 서류 탈락 소식이 연이어 벌어져서 갑작스러운 면접 초대 제안은 받지 않았지만, 며칠간 구직을 해도 이력서 제출 일정만 수행해야 했습니다. 그사이에 했던 일은 이력서에 미심쩍은 부분들을 손질하는 작업을 며칠간 치렀다는 것입니다. 졸지에 부정적으로 비칠 수 있는 이력서 몇몇 부분을 예쁘게 손질한 것이 그나마 보람이었습니다.

그나마 게임 몇 판을 더 즐긴 것과 안 그래도 새로 나왔다는 책을 살 겸해서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주문한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습니다. 사들인 책은 격리 해제 이후 집으로 배송되었는데, 그 책의 출판사에서 ‘초판을 구매하면 부록으로 책에서 사용한 일러스트를 설명하는 책자를 주겠다!’라는 공약 때문에 주문을 서둘렀고 그 책자가 딸려왔는데, 그 책자가 어디 있었나 싶었는데 책 뒤에 같이 포장되어있었습니다!

지난 9일에 있었던 대통령선거는 코로나19 격리 기간의 최대 변수였습니다. 확진 통보 이후 격리 일정을 지역 관청에서 통보받고 나서 생각한 것은 격리 해제 이후였던 9일에 당일 투표소 투표를 진행한다는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부모님이 ‘확진자 및 격리자의 사전투표를 위한 특별 외출을 허가한다’라는 정부의 특별 발표를 들고 와서 결국 지난 5일 사전투표로 소중한 투표권을 행사했습니다.

다만 지난 5일의 사전투표는 매우 힘들었습니다. 1시간 넘게 투표를 위해 기다려야 했고, 투표함에 소중한 투표 결과를 넣지 못하고 공무원에게 투표지를 담은 작은 봉투를 넘겨주는 형식으로 진행되어 매우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그날 비가 오지 않아서 망정이었지, 동네 행정복지센터 앞 거리에서 투표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힘들었던 격리 생활은 지난 6일 자정 부로 해제되어 7일 처음으로 외부 일정도 있고 그래서 외출을 하면서 외부활동의 소중함도 살짝살짝 느꼈습니다. 대신 못다 치른 일정이 많아서 지난 8일 오후에는 은행 업무, 정신과 상담 등 밀린 일정을 다 소화하느라 힘들었습니다.

분량에 제한이 있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외에도 확진 및 격리상태로 인한 불편함은 더 많이 있었습니다. 약물 수령 문제와 함께 사소하게는 쓰레기 버리는 문제까지도 힘들었었으니 말입니다.

다행히 저는 코로나19 제3차 예방접종까지 마쳐놓은 상태에서 확진되었던 터라 그렇게 큰 증상으로 악화하지는 않았습니다. 며칠 동안 조금 센 독감에 걸린 느낌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나마 발달장애인치고는 예방접종에 서둘렀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 정도에서 무사히 끝난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코로나19 의심을 스스로 하는데 시간이 며칠 걸렸고, 결국 검사까지 며칠 더 걸렸던 것을 생각하면 진짜 힘들었던 며칠이었습니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이해할 수 있는 코로나19 의심하고 확인받는 방법 등이 더 보급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장애인도 결국 코로나19 위기의 예외는 아닙니다. 오히려, 더 심각한 위기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저도 당할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 나름 대처를 했기 때문에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된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어쨌든 코로나19로 인해서 며칠간 좀 힘들게 지냈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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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계약 만료로 한국장애인개발원을 떠난 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그 이후 장지용 앞에 파란만장한 삶과 세상이 벌어졌다. 그 사이 대통령도 바뀔 정도였다. 직장 방랑은 기본이고, 업종마저 뛰어넘고, 그가 겪는 삶도 엄청나게 복잡하고 '파란만장'했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파란만장했던 삶을 살았던 장지용의 지금의 삶과 세상도 과연 파란만장할까?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픽션이지만, 장지용의 삶은 논픽션 리얼 에피소드라는 것이 차이일 뿐! 이제 그 장지용 앞에 벌어진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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