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설치된 손잡이가 대변기 접근을 막고 있는 사례. ⓒ배융호

화장실은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시설이지만, 휠체어 사용자 등 장애인에게는 여전히 가장 차별적인 시설로 남아 있다. 장애인용 화장실에 대한 기준은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장애인등편의법),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교통약자법) 및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제도의 인증기준」(BF인증제도)에서 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장애인등편의법의 기준 가운데 실제로 휠체어 사용자의 이용이 어려운 기준이 몇 가지 있다. 이 기준들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첫째, 장애인용 화장실 설치 비율이 개선되어야 한다. 하나의 건축물에 남녀 각각 1개 이상이라는 시대에 맞지 않는 기준은 가장 빨리 개선되어야 할 기준이다.

장애인등편의법에 따르면 우리가 아는 장애인용 화장실은 없다. ‘장애인등의 이용 가능한 화장실’이 있을 뿐이다. 이처럼 장애인 뿐 아니라 장애인·노인·임산부·영유아동반자 등 교통약자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바로 장애인용 화장실이다. 문제는 이렇게 교통약자 이용하기에는 장애인용 화장실이 턱 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장애인용 화장실은 대형 건물에 남녀 각각 1개씩만 설치되어 있는 반면에 교통약자의 수는 전인구의 27%가 넘는다. 최근 노인층의 장애인용 화장실 이용이 늘어나면서 휠체어 사용자 등 장애인의 이용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실제로 필자는 도시철도 역사 내 장애인 화장실을 거의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항상 다른 교통약자, 주로 노인들이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등편의법의 취지에 맞게 “장애인 등 교통약자가 이용 가능한 화장실”이 되기 위해서는 교통약자 비율인 30% 수준으로 장애인용 화장실의 수를 늘려야 한다.

등받이 불편 사례-페이스북 캡쳐. ⓒ배융호

둘째, 등받이 설치 위치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지난 2018년에 장애인등편의법이 개정되면서 장애인용 화장실에는 등받이 설치가 의무화되었다. 그러나 정확한 등받이 설치 위치는 정해지지 않아 변기 커버가 올라가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변기 커버는 변기에 앉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일부 남성 장애인들이 소변을 보기 위해서는 변기 커버를 올려야 한다. 그런데 등받이가 너무 변기 앞쪽에 설치되면서 변기 커버가 올라가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등받이 설치 위치가 별도로 정해지지 않아 그때 그때 다르게 설치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등받이 설치 위치 기준, 예를 들면, “등받이는 변기 끝에서 45cm 내외로 설치한다” 등과 같은 기준이 필요하다.

대변기 뒤에 설치된 광감지식 센서와 작은 버튼형 물내림장치. ⓒ배융호

셋째, 세정장치(물 내림 장치)의 위치 및 종류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장애인등편의법 시행규칙 별표1(편의시설의 구조·재질등에 관한 세부 기준)의 13. 장애인등의 이용이 가능한 화장실-가. 일반사항-(3) 기타설비에 의하면

“(나) 세정장치·수도꼭지 등은 광감지식·누름버튼식·레버식 등 사용하기 쉬운 형태로 설치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고,

동 시행규칙 별표1의 13. 장애인등의 이용이 가능한 화장실-나. 대변기-(4) 기타설비에 의하면,

“(가) 세정장치·휴지걸이 등은 대변기에 앉은 상태에서 이용할 수 있는 위치에 설치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이 무색하게 실제 장애인용 화장실의 세정장치는 변기 뒤쪽에 설치되어 앉은 자리에서 손이 닿지 않으며, 작은 버튼형으로 설치되어 더욱 사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특히 등받이가 설치된 상태에서 변기 뒤쪽에 작은 버튼이나 레버식 형태의 세정장치가 설치된 경우 휠체어 사용자는 거의 이용이 어렵다.

등받이 뒤에 설치된 세정장치. ⓒ배융호

광감지식 세정장치(센서형 자동 물내림 장치)도 실제로는 이용이 어렵다. 무엇보다 센서가 장애인을 감지하지 못해 작동하지 않을 때가 많다. 따라서 광감지식 세정장치의 센서 위치에 대한 변경이 필요하다.

현재처럼 변기 뒤에 설치하는 것은 변기에 앉았다가 일어서는 동작의 감지가 목적이므로 휠체어 사용자 등에게는 효용이 없다.

따라서 장애인용 화장실의 광감지식 센서는 대변기 뒤가 아닌 대변기 옆 벽면에 설치하되, 손바닥 등을 갖다 대면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팬데믹(Pandemic) 시대인 만큼 비접촉 장치인 광감지식 세정장치는 더욱 확대하되, 대변기 옆 벽면 설치로 접근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또한 누름버튼식 세정장치도 반드시 대변기 옆 벽면에, 수평수직손잡이(L형 손잡이) 내에, 휴지걸이 부근에 설치해야 하며, 가볍게 누를 수 있는 버튼 형태로 변경되어야 한다. 기존의 벽 누름 버튼은 많은 힘을 써야 하므로 살짝 눌러도 되는 버튼 형태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잘못 설치된 세면대 손잡이. ⓒ배융호

넷째, 세면대 손잡이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 현재 장애인등편의법에는 세면대 손잡이에 대해서 “세면대의 양옆에는 수평손잡이를 설치할 수 있다”라고만 되어 있어, 손잡이 형태나 높이 등은 정하고 있지 않다.

세면대는 단독형 세면대의 경우 목발 사용자 등이 팔을 기댈 수 있도록 세면대 양측에 세면대와 동일한 높이로 상하회전형 손잡이를 설치하여야 하고, 세면대 앞에는 손잡이를 설치하지 않아야 한다.

상하회전형을 설치하는 이유는 휠체어의 이동 공간을 손잡이가 막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즉, 필요할 때만 손잡이를 내려서 사용하고 휠체어 사용자가 활동하기에 공간이 부족하면, 손잡이를 올려서 공간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잘못 설치된 대변기 손잡이. ⓒ배융호

그런데 세면대 양옆 손잡이를 상하회전식이 아닌 고정식으로 설치하여 공간을 좁게 만들거나 세면대 앞에 가로 바 손잡이를 설치하여 휠체어 사용자가 세면대로 접근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가장 흔한 잘못 설치한 사례이다. 다만 카운터식(또는 테이블식) 세면대는 팔굼치를 기댈 공간이 있으므로 손잡이를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세면대 손잡이에 대해 "단독형 세면대의 양옆에는 세면대와 동일한 높이로 상하회전형 손잡이를 설치하되, 세면대 전면에는 가로 바 손잡이를 설치하지 않는다”와 같은 명확한 규정이 필요하다.

바르게 설치된 대변기 손잡이. ⓒ배융호

세면대 뿐 아니라 대변기 손잡이 역시 잘못 설치되는 사례가 많다. 대변기의 손잡이의 경우 장애인등편의법에 정확한 기준이 있는데도, 기준과 다르게 수평수직손잡이(L형 손잡이) 방향을 반대로 설치하거나 반대편 수평손잡이를 상하회전식이 아닌 고정식으로 설치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장애인용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는 이유 가운데 손잡이 설치 잘못이 가장 많으므로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시공과 감리에 대한 감독이 필요하며, 시공사와 감리사에 대한 교육도 병행되어야 한다.

다섯째, 장애인용 화장실의 조명장치에 대한 기준도 추가되어야 한다. 최근 에너지 절약 등을 이유로 장애인용 화장실에도 자동조명장치를 설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화장실은 공간의 특성상 오랫동안 머물게 된다. 그런데 자동조명장치는 일정 시간(대부분 1-2분 내외)이 지나면 꺼지게 된다. 더욱이 자동조명장치 센서가 휠체어 사용자를 잘 인식하지 못해 변기에 앉아 있는 경우 조명을 켜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장애인용 화장실의 경우 자동조명장치 보다는 버튼식 조명 장치를 설치해야 한다.

장애인용 화장실은 실제로 화장실을 이용하는 휠체어 사용자 등 장애인이 가장 편리하게 이용하고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장애인용 화장실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거나 명확한 기준도 시공과정에서 법대로 설치되지 않아 실제로 이용할 수 없는 화장실이 되고 있다.

장애인용 화장실을 많이 설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실제 이용이 가능하도록 제대로 설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필요한 기준들을 제정하고, 미비한 기준들은 개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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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융호 칼럼니스트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사무총장,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집행위원장, 서울시 명예부시장(장애)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사단법인 한국환경건축연구원에서 유니버설디자인과 장애물없는생활환경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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