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우연히 유튜브를 통해 KBS 다큐멘터리 ‘아임 뚜렛’을 보았다. 뚜렛 증후군이 있는 젊은 남녀의 삶을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게 조명하며, 두 주인공이 타인의 내레이션 없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달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아임 뚜렛'을 감상하고 나니 과연 독일 공영방송사는 뚜렛 증후군을 어떻게 다루는지 궁금해 여러 방송 자료를 검색해보았다. 그리고 '뚜렛과 섹스, 얀에게 물어보는 12가지 질문'(Tourette und Sex–12 Fragen an Jan)이라는 흥미로운 영상을 발견했다. 2021년 11월 기준으로 유튜브 조회수 600만에 달하는 영상이다.

독일에는 제1공영방송사 ARD와 제2공영방송사 ZDF가 공동 제작하는 디지털 방송사 풍크(Funk, www.funk.net)가 있다. 풍크에는 '아우프 클로'(Auf Klo), 직역하면 '화장실에서'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화장실처럼 꾸며진 무대에 사회 각양각층의 게스트들이 등장하여 말 그대로 화장실에서 인터뷰하는 내용인데, 2019년 4월에 '뚜렛과 섹스, 얀에게 물어보는 12가지 질문'이라는 약 6분짜리 영상이 방영되었다.

이 영상에서 뚜렛증후군이 있는 젊은 남성 얀(Jan)은 자신의 뚜렛증후군에 대한 오해와 진실, 에피소드, 치료 차원의 대마초 흡입 경험, 성생활 등 직설적이고 꽤 사적인 12가지 질문에 대답한다(실제로는 질문이 15개이다). 얀의 솔직 당당하고 유쾌하기까지 한 대답이 매우 인상적이라 이 내용을 에이블뉴스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뚜렛 증후군이 있는 사람과 함께 미소 지을 수 있는 사회, 우리가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한다 ⓒunsplash

질문 9: 당신은 글을 쓸 때에도 틱을 하나요?

얀: 네, 어떤 것을 글로 표현할 때에도 가끔씩 틱이 나와요.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입력하거나 손으로 글을 쓸 때 말이죠.

예전에 어느 치과에 처음 방문해서 질문서를 작성하는데 갑자기 틱이 나왔어요. 그래서 이름을 적어야 하는 칸에 가위표를 적곤 말았죠. 순간 민망해서 가위표를 얼른 집모양으로 바꿔 그렸어요. 가위표보단 보기 좋으니까요.

질문 10: 당신의 음성 틱을 인터넷으로 검색한 적이 있나요?

얀: 지난 주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놀러 갔는데, 거기서 네덜란드어로 단어와 문장 몇 개를 외쳐 댔어요. 그런데 저는 네덜란드어를 전혀 할 줄 모르거든요. 그래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봤더니 네덜란드 욕이더군요. 이 말을 제가 암스테르담에 머무는 내내 외치고 다닌 거 있죠.

질문 11: 대마초가 당신에게 도움이 되나요?

얀: 저는 어느 대학 병원의 임상실험에 참가해 대마초를 흡입한 적이 있어요. 액체 상태로 된 거랑 담배처럼 피울 수 있는 형태 두 가지 모두 시도해 봤지요. 그런데 저는 대마초 효과를 전혀 보질 못했어요. 아마도 저는 그 연구에 참여한 뚜렛 증후군 환자 중에 대마초가 전혀 도움이 안 된 유일한 케이스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질문 12: 당신은 어떠한 선입견에 가장 화가 나나요?

얀: 뚜렛증후군이 있는 사람에 대한 사회의 보편적 이미지는 시끄럽게 욕하고 소리치는 사람이지요. 물론 욕을 하는 뚜렛증후군도 있어요. 제 경우처럼 말이죠. 하지만 그건 흔한 케이스가 아니에요. 저 같이 욕하는 틱은 뚜렛증후군이 있는 사람들 중 많아 봤자 20퍼센트에 속해요.

질문 13: 뚜렛증후군 치료법은?

얀: 뚜렛증후군 자체를 치료하는 약은 아직까지 개발되지 않았어요. 대게 항정신병 치료제가 사용되기는 하는데, 사실 이것은 우울증이나 조현병, 파킨슨병, 다발성 경화증 등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된 약이지 뚜렛 증후군을 치료하진 못해요.

개인적으로 제게 도움이 많이 된 치료법은 '습관 역전 훈련'(Habit Reversal Training)이라는 행동치료법이에요. 틱을 대체하는 다른 행동을 하거나 오랜 시간 틱을 억누르는 법을 배우는 치료이죠.

마지막으로 '뇌심부 자극술'이란 수술을 통한 치료 방식이 있어요. 뇌에는 센서를, 가슴에는 모터를 삽입하여 이들을 연결한 후 수술 후 리모컨으로 장치를 제어하는 방식이죠. 그런데 저는 이 방식이 너무 끔찍하게 느껴져서 수술을 받고 싶지는 않아요.

질문 14: 지금까지 뚜렛증후군 관련 연구가 왜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나요?

얀: 뚜렛증후군은 틱이 굉장히 심한 단계라 할지라도 그것이 건강상 위험하지 않기 때문에 뚜렛 증후군 관련 연구가 많이 되지 않은 상황이에요.

그 말인 즉, 뚜렛증후군 자체가 당사자의 건강을 위협하지도 않고, 뚜렛 증후군으로 사망할 가능성도 없으며, 이것이 무슨 전염병도 아니기 때문이죠. 따라서 의료 전문가들은 다른 질환이나 병에 더 초점을 두고 연구를 하는 것 같아요.

질문 15: 뚜렛증후군은 당신의 성생활에도 영향을 미치나요?

얀: 성관계나 신체적 접촉이 많은 상황에서는 틱이 현저하게 줄어들어요. 왜냐하면 그러한 상황에서는 긴장이 많이 풀리거든요.

'뚜렛과 섹스, 얀에게 물어보는 12가지 질문'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얀이 인터뷰 중간중간에 욕(손가락 욕 포함)이나 성적 농담이 섞인 틱을 하는데, 방송은 이 부분을 모자이크 처리나 음성 편집 없이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더욱 인상적인 건, 음성 틱과 운동 틱에 얀 본인도 웃고, 현장의 스태프들도 함께 웃으며(결코 비웃음이 아니다) 한결같이 유쾌하면서도 동시에 진지한 분위기가 이어진다는 점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방송은 독일 제1, 제2 공영방송사가 공동 제작한 결과물이다. 다른 민영방송사들의 뚜렛 증후군 관련 방송을 보면 더 노골적이고 더 유쾌하다. 그러면서 뚜렛증후군에 관한 오해와 진실을 시원하게 밝혀준다.

"뚜렛증후군이 있는 사람이나 제3자가 틱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해요."

얀의 이 한마디가 귓가에 오랫동안 맴돈다. 뚜렛증후군이 있는 사람의 틱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기, 틱을 보고 함께 웃지는 못해도 적어도 인상 찌푸리지 않기. 이는 우리 사회에 던져진 과제이다. 뚜렛 증후군으로 사회에 고립되어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기본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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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세리 칼럼니스트 독한 마음으로, 교대 졸업과 동시에 홀로 독일로 향했다. 독한 마음으로,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재활특수교육학 학사, 석사과정을 거쳐 현재 박사과정에 있다. 독일에 사는 한국 여자, 독한(獨韓)여자가 독일에서 유학생으로 외국인으로 엄마로서 체험하고 느끼는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와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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