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7월 한국장애인연맹(DPI)과 더불어민주당 윤일규 의원이 국회의원 회관에서 ‘장애인권리협약의 이행 증진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한 전경. ⓒ에이블뉴스 DB

장애인권리협약 1차 국가심의를 한 지가 벌써 엊그제 같은데, 7년이란 시간이 참 빠르다. 7년 전,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선 우리 정부의 국가보고서와 장애인계 및 시민단체의 민간보고서를 종합해 정부에 7년 전 최종견해를 내렸다. 2, 3차 병합보고서 심의 때까지 국가는 권리위원회에서 내린 최종견해를 제대로 잘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필자나 장애인계가 봤을 땐 국가는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내린 최종견해를 이행하려는 노력이 많이 부족함을 느낀다. 정부 보고서를 보면 대개 장애인의 권리를 증진하기 위한 제도, 법률들을 소개한 것에 불과하고, 이런 게 장애인들의 삶에 실질적인 변화로 체감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정부에서 현행 편의시설 의무설치 바닥면적 기준을 50㎡(약 15평) 이상으로 강화했다고 하며 장애인 권리 증진한 것처럼 발표했다. 하지만 내년 1월 1일부터 신축‧개축‧증축한 건물에만 적용한다는 것이고, 이와 관련해 통계청 자료에는 50㎡(약 15평) 이하의 편의점이 전체의 70%라고 한다.

지체장애인, 뇌병변장애인 등에겐 편의시설 설치가 합리적 조정의 일환이고, 권리다. 하지만 소상공인 부담을 줄인다는 명목하에 이를 부담으로 보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 더군다나 대한민국 제1차 국가심의 최종견해에서 편의시설을 바닥면적, 건축년도 등에 상관없이 설치하라는 유엔의 권고까지 이행하지 않은 셈이 되는 거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장애인권리협약 이행 관련 부서하면 보건복지부가 떠오른다. 보건복지부 조직 안엔 순환보직제라고 하는 것이 있다. 순환보직제는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조직 구성원을 여러 다른 직위 또는 직급에 전보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 기간이 대개는 2년이다.

장애인권리협약을 담당하는 공무원이 처음 업무를 배우는 과정에 애를 먹어 힘들었다가, 어느 정도 업무에 적응했다 싶었는데, 2년이 지나면 순환보직제가 적용되어 권리협약 업무가 아닌 다른 업무를 배우게 된다. 다른 직위, 직급으로 가는 것이다.

물론 여러 업무를 익히는 것은 좋지만, 한편으로는 장애인권리협약 이행, 모니터링 등과 관련된 전문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장애인권리협약을 담당하는 공무원 전문인력도 많이 부족하다.

장애인권리협약 2, 3차 국가보고서 가운데 제25조 건강에 관련된 장애인 의료비에 대한 국가의 보고내용. ⓒ대한민국 정부

또한, 보건복지부 내에 권리협약에 나온 장애인의 권리를 정기적으로, 체계적으로 공부해 이를 정책에 반영하고 장애인 당사자에게 피드백을 받는 시스템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이런 상황이니 유엔장애인권리협약 국가보고서를 각 부처 제출자료 기반으로 장애인개발원 연구원이 편집한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거다.

법무부도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이행과 어느 정도 관련 있다. 국가의 인권은 물론 사법과 관련해선 말이다. 하지만 법무부 내 장애인 관련 담당 부서가 없으며 법무부가 소관 부처인 장애 관련 법도 없는 실정이다. 사법은 법무부 쪽이 전문성이 있는데, 장애인 관련 사법 하면 아직도 보건복지부가 전문성 있는 것 같은 인식이 있는 것도 문제다.

법원에서도 장애인권리협약을 통해 판결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영화관람권 차별 구제 소송에서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근거로 권리협약 30조의 내용을 말했다, 원고가 승소했지만, 승소 근거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었고 권리협약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단다.

국회는 어떤가? 국회 내에도 장애인권리협약을 정기적으로,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이를 입법 활동에 반영함은 물론 장애인 당사자 피드백을 받는 시스템이 없다시피 하다. 올해 국민의 힘 국회의원들이 ‘집단적 조현병’, ‘외눈박이 대통령’, ‘꿀 먹은 벙어리’등의 장애 비하 발언을 쏟아내 장애계 공분을 산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본다.

4년 전 12월 21일 이룸센터에서 한국장애인연맹, 한국척수장애인협회 등 17개 단체가 모인 UN장애인권리협약NGO연대(이하 NGO연대)에서 ‘장애인권리협약 국가보고서 질의목록 채택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하는 모습. ⓒ에이블뉴스 DB

그래서 국가 차원에서의 장애인권리협약 이행기구 상설화가 필요하다. 이는 장애인계에서 나온 지적이기도 하다. 이행기구엔 보건복지부, 법무부,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 등이 포함되어야 하고, 그 기구 안에 장애인 당사자의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

보건복지부에선 장애인권리협약 이행 등의 관련 담당자 담당 기간이 2년인 건 너무 짧고 그렇다고 기간 길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어 8~10년 정도의 장기간으로 하는 등 순환보직제를 개선했으면 한다. 다른 공무원이 권리협약 맡아도 전문성 있게 업무 처리할 수 있게끔 장애인권리협약을 공무원들 모두가 정기적으로 배우고 실천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내에 장애인권리협약에 대해 정기적·체계적으로 공부하고, 공부한 것을 정책, 입법, 판결 활동 등에 반영함은 물론 여기에 대해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인계의 피드백을 받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함도 말하고 싶다.

아울러 국가가 이행 잘하도록 전에도 말했듯이 국가와 독립적인 장애인권리협약 모니터링 체계가 필요하다는 점도 말하고 싶다. 이 체계에 지적장애인, 자폐성 장애인, 정신장애인 등 정신적 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 당사자 참여가 필수인 건 물론이다. 이외에도 법무부의 장애인 인권 관련 부서 설치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비준한 장애인권리협약이 단지 문서로만 그치거나 이행이 부실하고 국가보고서를 작성하면 ‘땡’이다시피 한 현실에서 탈피해 장애인의 권리가 실질적으로 증진되어 국내법과 같은 동등한 효력을 가지는 국제협약으로 우리나라에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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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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