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 똑같이 달릴 수 있다는 신념은 장애인에게 희망일까 압박일까? ⓒunsplash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웬일인지 풀이 가득 죽어 있다.

“엄마, 나는 달리기만 하면 늘 꼴찌야. 그래서 슬퍼”

아들은 학창시절 달리기에서 매번 꼴찌였던 나의 유전자를 물려 받은 게 틀림없다. 나는 별 생각 없이 대답했다.

“괜찮아. 열심히 연습하면 너도 친구들처럼 빨리 달릴 수 있어!”

이 말을 하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과연 열심히 노력하면 남들처럼 빨리 달릴 수 있다고 강조하는 게 올바른 교육일까? 아니면 남들보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고 가르쳐 주는 게 올바른 교육일까?

그 날 밤, 엘리차 가빈이 쓴 칼럼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퇴행성 신경질환의 하나인 척수성 근위축증이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이다. 그녀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부모님은 내가 비장애인처럼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늘 강조하며 나를 키우셨다. 그래서 내가 일반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사회에 온전히 통합되어 성장하도록 모든 에너지를 쏟으셨다.

그러한 부모님의 노력이 주변의 뜨거운 환호와 지지를 받는 동안, 정작 나는 침묵하고 있었다. 그리고 성취압박과 경쟁이라는 내면의 적과 열렬히 싸워야 했다.

부모님이 장애가 있는 딸에게 희망을 선사하고자 수많은 일을 해내시며 주변의 감탄을 자아내고 계실 때, 정작 나는 그 반대를 원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모든 것을 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신체의 한계를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결코 발레리나도, 올림픽 메달리스트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나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님은 딸의 자존감을 최대한 향상시키고 딸을 향한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셨을 뿐이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적으로 행동하는 것도 결코 나쁘지 않다. 더군다나 나는 애초부터 발레리나도, 올림픽 메달리스트도 되고 싶은 마음이 없었으니까.

장애는 당사자의 에너지와 인내심을 조절하게 만든다. 나와 같이 시간이 갈수록 근력이 손실되는 병이 있는 사람은,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에너지를 조금씩 활용하며 살아가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더 현명한 삶의 방식일 수 있다.

내가 모든 일을 다 해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고 주변에 알리는 것. 어떤 일을 할 수 있다고 해서 그 일이 나의 에너지에 반드시 가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것. 나의 생산성과 효율성이 내 존재의 가치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 이것이 내가 그동안 인생을 살아가며 깨달은 점이다.

행복과 직업적 성공은 내 휠체어 아래의 바닥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법이다. 반드시 높이뛰기 하는 운동선수의 하늘일 필요는 없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아들에게 달리기 이야기를 다시 꺼내며 다른 아이들보다 늦게 달려도 괜찮다고, 너만의 속도로 최선을 다해 달리면 된다고 말해 주었다.

“그래도 아이들보다 더 빨리 달리고 싶어!”

“그럼 우리 오늘부터 달리기 연습할까?”

그러자 아이가 대답한다.

“싫어. 엄마랑 놀고 싶어!”

어쩌면 여섯 살 아들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부모의 교훈적인 말 한마디 보다, 엄마와 함께 하는 지금, 여기일지도 모른다.

“좋아, 오늘도 후회없이 놀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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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세리 칼럼니스트 독한 마음으로, 교대 졸업과 동시에 홀로 독일로 향했다. 독한 마음으로,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재활특수교육학 학사, 석사과정을 거쳐 현재 박사과정에 있다. 독일에 사는 한국 여자, 독한(獨韓)여자가 독일에서 유학생으로 외국인으로 엄마로서 체험하고 느끼는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와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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