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무 서둘렀다. 뒤늦은 학업 걱정, 그동안 나간 병원비 걱정, 눈앞에 보이는 것은 당장이라도 해결해야할 걱정들 뿐이었다. 그러한 걱정 속에 이렇게 저렇게 스트레스만 받다 6월이 되고 내 몸 상태는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었다.

천천히 나는 다시 혼자 일어설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일어서기 위해서는 몸을 최대한 앞으로 숙여서 뭔가를 짚고 일어나는 게 고작이었다. 잡을 것도, 짚을 것도 없을 때에는 몸에 반동을 사용해서 겨우겨우 일어났다. 그렇게 몸의 기능이 하나 두개 망가지기 시작하자 육안으로도 몸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몸이 붓기 시작하고 입안에 구내염이 또 생기기 시작하였다.

입안이 아파 견딜 수가 없던 날 국소 마취제를 구하러 다시 대학병원에 갔다. 그리고 그대로 입원을 하게 되었다. 지난번 검사 때 이미 염증 수치가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대학병원이라는 곳에선 미리 알려주거나 공지해주지도 않았다. 예약된 날짜가 되서야 나는 내 몸이 완전 망가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연하가 또 마비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온몸을 감쌌다. 필사적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서 미친 듯이 침을 삼켰다. 그리곤 세상 모든 원망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마치 처음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어찌해야 될 바를 모르고 그저 연하장애만 다시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삼켰다.

하지만 쌓이던 스트레스는 결국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X-ray 검사실에 갔을 때였다. 서있어도 앉아있어도 힘이 들었다. 어떻게 해도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 기다리는 것이 곤욕일 수 밖에 없었다. 그것에 맞춰 쌓인 스트레스는 분노로 바껴, 온갖 욕설과 화를 내며 힘없는 주먹으로 벽을 치며 분노를 표출했다.

실컷 화를 내고 욕설을 뱉은 후에 병실로 올라갔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민폐였는지... 아무튼 병실에 올라가자, 기침과 함께 피가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코피가 섞인 걸 수도 있고 경우의 수는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출혈량은 갈수록 늘어났고 여러가지 검사는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대장 내시경 검사를 하고 나는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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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섭 칼럼니스트 2010년 희귀난치성 질환 류마티스성 피부근염에 걸려 후천적 장애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을 오직 장애를 극복하겠다는 일념으로 살다. 2020년 삶의 귀인을 만나 장애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나아가 장애인 인식 개선 강사로써의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장애인 당사자로써, 근육병 환자로써 세상을 바라보며 느끼는 바를 전달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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