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증으로 나날히 갈피를 못 잡고 있을 즈음 의사분들은 영양공급이 너무 부족하다며 콧줄이나 뱃줄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뱃줄은 배에 구멍을 뚫어야 하는 것으로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콧줄을 시도하기로 했다.

처음엔 견딜만 했다. 하지만 경관 급식을 시작하자마자 식도에서 위까지 계속 쓰라리기 시작하였다. 밤을 새워 고통스러워하며 하루를 참다가 결국 버티지 못하고 콧줄을 제거하였다.

콧줄을 제거하자 어쩔 수 없이 뱃줄을 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배에 구멍을 뚫고 뱃줄을 삽입하는 게 너무 무서웠던 나는 억지로 죽을 사서 잘 안 넘어가는 것은 오만 인상을 써가며 넘겨가며 위기를 모면해보려고 가진 애를 써봤다.

하지만 당연히 잘 될 수가 없었다. 이미 마비가 된 연하(삼킴)은 아무 감각이 없었고, 식사를 하는 일이 내겐 너무 버거운 일이 되어있었다. 당연히 영양섭취가 충분할 수 없었기에 얼마갈 수 없었다.

심지어 얼마가지 않아, 입속이 아프기 시작했다. 마치 구내염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의사분들이 육안으로 살피기에는 아무 문제가 안보인다고 하였다. 그렇기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통이 되었다.

문제는 그 아픔의 크기였다. 숨만 쉬어도 아프고 침만 닿아도 찢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방법을 찾지 못하고 대안으로 리도카인이라는 국소마취제를 면봉으로 입안에 덕지덕지 바르기 시작했다. 입안의 감각이 없어지면서 흡인성 폐렴 문제가 더욱 두드러졌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또 한 고비를 어떻게 넘기나 싶었지만, 역시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얼마 가지 못해서 이번엔 오후 10시쯤부터 새벽 내내 헛구역질을 하는 증상이 생겼다.

거의 12시간 내내 멀미하는 기분이었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 증상은 전해질 부족에 의한 것으로 그나마 원인이라도 찾을 수 있었고 3일 가량을 고통받은 끝에 겨우 진정 될 수 있었다.

상황은 계속 나의 영양공급이 부족하다는 쪽으로 흘러갔다. 결국 뱃줄을 피할 방법이 없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어느덧 두려움은 사라져버렸다. 그 간의 고통으로 완전 지쳐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생애 처음 뱃줄을 배에 삽입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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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섭 칼럼니스트 2010년 희귀난치성 질환 류마티스성 피부근염에 걸려 후천적 장애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을 오직 장애를 극복하겠다는 일념으로 살다. 2020년 삶의 귀인을 만나 장애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나아가 장애인 인식 개선 강사로써의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장애인 당사자로써, 근육병 환자로써 세상을 바라보며 느끼는 바를 전달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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