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연재하던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인한 후유장애에 대한 글을 대신해 내가 이번에 겪게 된 아주 이상한 의료 시스템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나는 5월 16일 일요일을 시점으로 발열과 허리 통증, 복통, 메스꺼림, 호흡에 어려움 등의 증상이 발생하여 초기 몸살을 의심하고 그저 휴식을 취하였다. 하지만 증상은 시간이 흐르면서 더 심해졌고 먹고 마시는 것이 전부 설사로 배설되는 상황을 확인하고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17일 오전에서야 급하게 분당에 모 대형병원 응급실을 찾아갔다. 어지러움과 발열에 의한 추위로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몸으로 어머니의 부축을 받아 어렵게 응급실에 도착하였지만, 코로나19로 인한 통제로 응급실에 바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기다림이 계속되고 드디어 내 이름이 호명되어 안심하던 순간, 의료진은 내 체온을 체크하고 39.0도가 넘는다며, 코로나 의심 환자로 격리 병동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격리 병동이 현재 가득 차 있는 상태라 해당 병원 응급실을 이용하기 위해선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검사 결과가 나오는 하루를 더 기다려 결과를 받아와야 들어갈 수 있다는 '통보'였다.

너무 당황이 돼서 뭐라고 따지지도 못하고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저 되물었다. 하지만 외례진료도 불가하다는 답과 함께 발열이 있는 상태에서 그냥 받아주는 응급실은 거의 없다며 다른 병원에도 연락을 해보라는 말 뿐이었다. 그리곤 의료진은 그대로 본인 할 일을 하러 들어가 버렸다. 남긴 말이라곤 대기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지우겠다는 말 뿐이었다.

어이가 없고 화도 났지만, 그러기엔 너무 아팠다. 급하게 다른 병원들에 전화를 걸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비슷했다. 너무 급한 나머지 동네 가정의학과에서라도 희망을 잡아보려 했지만 대답은 같았다.

끈 떨어진 연이 이런 기분일까? 어떻게 해야할 바를 몰라, 그저 코로나 검사 대기열에 줄을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너무 아팠지만 앉을 자리조차 없는 공간에서 그저 병증이 심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던 찰라 어머니께서 내 (자가 면역질환 전문의)주치의 선생님께 연락을 해보자고 말씀하셨다. 급하게 주치의 선생님께 연락을 취했고 빨리 병원으로 오라는 정말 반가운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차를 타고 40분을 달려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고 150ml, 500ml 링거 두 대를 맞고도 쉽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병명은 장염과 기관지염을 중심으로 하는 몇 가지 염증이 더 걸렸다고 하셨다. 그리곤 코로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주치의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처방받은 약을 먹고 진통, 해열제까지 먹은 후에야 겨우 안정을 취할 수 있었다.

그리곤 2주가량 병의 경과를 지켜보며,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근육병 장애인이고 근육병으로 인한 수많은 합병증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면역력이 낮기 때문이기도 하고 근육병이라는 병의 특징이기도 하다. 워낙 염증이 생길 수 있는 부위가 산발적이고 염증이 생기면 발열 증상이 뒤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그런 염증이 생기는 것은 나에겐 큰 위험이고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일 수 있다. 아마 나를 비롯한 많은 질병으로 인한 후유 장애인들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일반적 위험(코로나)로 인해 소수의 위험(질병으로 인한 후유장애인들)이 무시당해도 되는 것인가?

정확히 내가 겪은 의료 시스템은 소수의 희생을 강요하여 대를 구하는 시스템이다. 이것이 언론에서 그렇게 떠들며 찬양하는 K-방역이고 K-의료란 말인가? 사람이 먼저라는 말이 우습다는 생각이 들면서 코로나로 이런 일을 겪은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를 생각하면 아찔함 마저 든다. 그리고 그동안 아무 대책 없이 이런 시스템을 유지하게 둔 정부와 한국 의료계에 큰 유감을 느낀다. 정말 국민을 위한다면 약자를 무시하는 이런 시스템은 조속히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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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섭 칼럼니스트 2010년 희귀난치성 질환 류마티스성 피부근염에 걸려 후천적 장애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을 오직 장애를 극복하겠다는 일념으로 살다. 2020년 삶의 귀인을 만나 장애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나아가 장애인 인식 개선 강사로써의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장애인 당사자로써, 근육병 환자로써 세상을 바라보며 느끼는 바를 전달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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