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자폐성장애를 가진 아들이 스무 살 되었을 때 행정복지센터에서 우편물이 왔다. 장애인연금 신청안내였고, 자격 내용은 아래와 같이 적혀 있었다.

'만18세 이상의 등록한 중증장애인 중 본인과 배우자의 소득인정액이 선정기준액 이하인 자.

(등록한 중증장애인) 신청일 현재, 「장애인연금법」 제2조 제1호에 따른 중증장애인(1급, 2급, 3급 중복)에 해당하는 자.'

우편물은 한동안 그대로 방치되었다. 통상적으로 우리나라 복지지원은 부양의무제로 제한되어 부모가 맞벌이하는 장애자녀에 해당될 리 없을 것이고, ‘본인과 배우자’라는 문구에서 독립한 세대주 장애인만 해당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오해가 없으려면 보건복지부 안내문에 ‘부모나 형제의 소득수준이나 동거여부에 상관없이’라는 쉬운 문구가 적혔어야 했고, 행정복지센터에서는 신청이 누락될 시 직접 전화로 확인관리를 했어야하는데, 이후 안내서비스는 전혀 없었다.

일반고등학교를 졸업한 아들에게 학교에서는 성인기 이후 복지정책에 대한 안내가 없었고, 복지관에서도 프로그램 이용 외에 개인별 복지지원에 대한 안내는 없었다. 필자는 당시 음악치료사로서 18세 미만 장애인 대상 발달재활바우처서비스 등의 지식은 있었으나, 그 외 복지전반 정보는 일일이 찾지 않으면 알 수가 없었다.

이렇듯 복지 관련 종사자도 알 수 없는 정보를 맞벌이 부모나 친인척과 함께 거주하는 장애인, 또는 혼자서 독립거주하는 발달장애인이 우편물만을 보고 정확히 파악하고 곧장 신청할 수 있을까?

정보력도 부익부빈인빈으로 치중되어 꼼꼼히 챙기는 부모나 형제를 둔 장애인은 연금뿐 아니라, 부동산이나 자동차 구입부터 기타 세금 감면과 교통비까지 일상의 작은 혜택들도 놓치지 않고 잘 활용하나, 정작 하루 생계를 유지하기도 급급한 이들은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다. 이들 중엔 두 명 이상의 장애자녀를 둔 가정도 있고, 부모의 우울증으로 발달장애자녀가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경우도 있다.

몇 년 혹은 10년, 20년이 지나 지인의 우연한 도움으로 복지급여를 신청하게 된다 해도, 그 이전의 십여 년분은 한푼도 소급되지 않는다. 단지 정보력과 문해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받지 못한 몇백, 몇 천 만원을 증발시켜버리는 게 타당한가?

아무리 좋은 서비스라도 본인이 원해야 줄 수 있다는 복지서비스 ‘신청주의’는 겉으로는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 현장의 요구는 전혀 조사 반영하지 않은 관료적 편의주의일 뿐이다. 만 18세가 넘으면 모든 중증장애인에게 해당되는 장애인연금 매월 30만원을 일일이 전화나 방문으로 안내했을 때 받기 싫다고 거부하는 이가 과연 한 명이라도 있을까?

연금뿐이겠는가. 장애수당, 진단검사비, 재활치료비, 직업훈련수당, 평생교육바우처, 정보화교육지원, 창업지원, 근로지원, 활동지원, 보조기기, 이동통신비 감면 등 장애인 대상 서비스 외에 보호자를 위한 부모심리상담서비스, 휴식지원서비스, 장애아동양육지원 등 십수년에 걸쳐 연구와 시범사업으로 마련된 수많은 복지서비스를 다 아는 장애인과 가족은 얼마나 될까? 정보를 알려줬다고 해도, 신청절차를 스스로 수행할 수 있는 장애인은 얼마나 될까?

안타깝게도 해마다 바뀌는 복지제도에 대해서는 행정복지센터의 담당 공무원도 다 알지 못한다. 장애당사자가 서비스를 신청하고자 전화를 걸면 “저도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라고 답하는게 대부분이다. 왜냐하면 장애인복지담당 공무원 한 명이 다 감당할 수 없는 대상자 현황에다 빈번한 보직변경 때문에 늘 불안정한 업무상태가 되는 것이다.

복지담당공무원도 알지 못하고, 부모도 알지 못하고, 더군다나 지능과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특성인 발달장애인 대상의 ‘복지서비스 신청주의’는 마치 망망한 바다 속에 보물금고를 던져놓고 알아서 헤엄쳐 건져내라는 것처럼 무책임한 시스템이다.

서비스 프로그램 자체를 집집마다 가서 해주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정보안내와 신청절차만큼은 누락되지 않도록 전화와 방문으로 모두에게 확인되어야 한다. 사각지대의 열악한 장애인과 가족들이 방치되지 않도록 현장의 바닥까지 이어지는 전달시스템과 공무 인력충원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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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주 칼럼니스트 청년이 된 자폐성장애 아들과 비장애 딸을 둔 엄마이고, 음악치료사이자 부모활동가로서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들을 만나고 있다. 현장의 문제와 정책제안,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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