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랑, 호주의 국가장애보험제도를 소개합니다. ⓒ이루나

“가정의 소득이 높으면 NDIS 펀드를 받을 수 없는 건가요?”

잔뜩 긴장하고 물었다. 미쉘이 우리 부부의 직업 유무, 장애 이력, 호주에 사는 다른 가족이나 친척의 유무 등과 같은 민감한 질문을 하자 걱정이 된 내가 질문했다. 가난을 처절하게 증명할수록 복지가 시혜나 특혜를 베풀 듯 주어졌던 나라에 살다 온 사람이니 어쩔 수 없다.

“아니에요. NDIS는 부모나 가족의 재산, 직업의 종류, 수입에 무관하게 당사자가 지닌 장애에 관련해서 국가가 지원하는 시스템이에요. 만약 가정이 경제적으로 어렵다면 비장애인 가정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경제적 지원 제도를 통해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에요.”

미쉘의 설명은 이랬다. NDIS펀드의 책정은 해당 장애의 종류와 정도, 당사자가 처한 상황에 맞게 필요(Necessary)하고 합리(Reasonable)적인 도움과 지원의 여부가 기준이다. 코디네이터들이 몇 가지 사적인 질문을 하는 이유는 당사자에게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라,

가정 환경과 상황을 잘 이해해서 개별화 되고 맞춤화된 지원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이다. 또한 당사자 중에는 가족들도 다양한 장애를 가진 경우가 있어서 좀 더 치밀하고 정교한 지원이 필요한 경우가 있기 때문에 가정의 구성원이나 환경에 관한 질문이 필요하다고 했다.

호주란 나라, 국경 하나 넘었을 뿐인데 ‘절망’을 ‘희망’이란 단어로 대체 시킨다. 사는 나라가 바뀌니, 삶의 풍경이 달라도 너무 다르고, 삶의 풍경이 바뀌니 발달장애인 아들과 사는 일이 덜 버겁고 심지어는 벤의 ‘미래’를 꿈꾸게 한다. 오래전 엄마의 마음 속에 눈물과 함께 묻어둔 미래.

어쩌면 아직 한국에 살고 있다면 나는 거리에서 데모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호주처럼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전 폐지하라고’, ‘장애등급 심사제를 폐지하라고’, 그리고 제도에 사람을 끼워 맞추지 말고 ‘개별 맞춤화 된 필요한 지원을 하라’ 요구하며 팔뚝질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상상만으로도 처음 벤이 자폐인이란 사실을 안 순간처럼 속이 울렁거리고 멀미가 난다.

한국 사회의 구성원 중에 국민건강보험제도의 필요성에 의문을 던지는 사람이 있을까? 대부분의 국민들은 국민건강보험제도의 미진한 부분을 보완하고 개선하자는 주장은 할 수 있겠지만 제도 자체의 필요성을 부인하진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호주에는 메디케어(Medicare, 한국의 국민건강보험제도와 유사)가 있고, 나의 완전 소중한 국가장애보험제도(NDIS, National Disability Insurance Scheme)가 별도로 존재 한다.

한국에 사는 구성원 중에 만약 태어난 아이가 장애인이라면? 어느 날 배우자가 교통사고로 인해 평생 휠체어를 타게 됐다면? 어느 날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게 됐다면? 어느 날 머리를 다쳐 언어 기능을 상실하게 됐다면?

그러니까 호주에 살고 있다면 나의 경험처럼 NDIS에 전화 한통을 넣으면 된다. 벤처럼 발달 장애인 뿐만 아니라 누구든 영구적이고 심각한 장애를 지닌 사회 구성원을 국가가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이고 실천인 셈이다. 언제든 사회적 약자의 자리로 몰락해도 소외 받지 않고 차별 받지 않도록 국가가 개입을 해서 보호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진보적인 제도와 정책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수많은 부침과 역경을 딛고 탄생하 듯, 호주의 국가장애보험제도 역시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선물처럼 뚝 떨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기존의 메디케어 제도로 전 국민의 건강을 국가가 책임지 듯, 장애인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논의 것은 2010년이다.

호주는 6개의 주(State)와 2개의 테리토리(Territory)로 이루어진 연방 국가다. 다시 말하면 각 주와 테리토리의 자치와 분권이 강화되어 있어, 장애 관련한 제도와 서비스들이 지역마다 독립적으로 산재했었다. 그러다 보니 지역별로 관련 제도와 서비스들의 편차가 크고, 정보가 분산되어 당사자들의 접근이 어렵고, 당사자들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개별화된 맞춤 지원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불만이 지속적으로 터져 나왔다.

마찬가지로 정부 차원에서도 예산은 예산 대로 투입하고, 당사자와 가족들의 만족도는 낮은 비효율적인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들이 이어졌다. 결국 당사자와 케어러, 관련 기관들의 의견들을 수렴해서 찾아낸 방법은 연방정부가 국가차원의 내실 있고 튼튼한 제도와 정책과 방향을 마련하고, 재원은 각 주와 테리토리에서 지원하고, 각 지역의 현장에서 신속하고 효과적이고 찾아가는 당사자 중심주의 행정을 집행하는 기관들(NDIA)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2013년, 호주식 국가차원의 장애보험 제도인 NDIS가 각 주 별로 시범 실시가 이루어졌다. 장애 노인들을 위한 시범지역, 장애 청소년을 위한 시범지역, 장애 영유아와 어린이를 위한 시범 지역, 전 연령 장애인을 위한 시범 지역 등을 구분해서 적용 실시하다 2016년, 마침내 호주 전역으로 확장 실시되었다.

호주의 NDIS는 오늘도 진화 중이다. 이 제도는 장애계의 만병통치약도 요술 방망이도 아니란 점에서 수시로 당사자와 케어러들에게 만족도 조사와 개선해야 할 점들을 묻고, 협의 과정을 거치고 수정과 보완을 거듭하고 있다.

장애 자녀를 사랑하는 일은 부담이 따른다. 부모의 건강, 부모의 직업, 부모의 경제적 자산, 부모의 사회적 관계망, 부모의 정신 건강, 사회적 환경 등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고, 그 모든 요소들이 뒷받침 될 때 아이의 장애와 무관한 부담이 덜어진 사랑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호주에 와서 깨달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가족에게 NDIS는 사랑이다. 덕분에 ‘자폐인’ 벤이 아니라 ‘9살 아이’ 벤을 사랑하는 일이 한결 수월해졌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팀으로 작동해서 지원하니 신체적·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줄고, 벤의 장애와 관련한 비용은 국가가 책임지니 경제적 부담이 없고, 국가가 든든한 빽이 되어 준다고 생각하니 심리적인 위축이 덜하다. 그래도 가장 좋은 점이라면, 미래에 대한 불안을 접고 현재를 살게 되었다는 사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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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나 칼럼니스트 아이 덕분에 통합교육, 특수교육, 발달, 장애, 다름, 비정형인(Neuro Diversity), ADHD, 자폐성 장애(ASD)가 세상을 보는 기준이 되어버린 엄마. 한국에서 교사로 재직하다 아이가 발달이 달라 보여서 바로 호주로 넘어왔습니다. “정보는 나의 힘!” 호주 학교의 특수·통합교육의 속살이 궁금해서 학교 잠입을 노리던 중, 호주 정부가 보조교사 자격증(한국의 특수 실무사) 과정을 무료로 제공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냉큼 기회를 잡아 각종 정보를 발굴하고 있는 중입니다. 한국에서 일반 교사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호주의 교육(통합/특수)을 바라보고, 아이를 지원하는 호주의 국가장애보험 제도(NDIS) 등에 대해 주로 다룰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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