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수업 온라인 접수를 위한 지원시스템 사이트. ⓒ한지혜

전력을 다해 몸의 기운을 손가락으로 모은다. 정각 저녁 8시를 알리는 알람이 울리자마자 컴퓨터 자판의 F5버튼(새로고침 실행을 위한 단축키)를 누른다. 이제 신청 버튼만 클릭하면 끝. 그런데 신청 버튼이 어디에 생성되어 있는지 찾을 수가 없다.

마음은 급해지고 약한 시력으로 허둥거리며 버튼을 찾아 헤매는 동안 시간은 야속하게 지나간다. 긴장감 속에 나의 잔존 시력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앗! 드디어 찾았다. 신청 버튼을 클릭한다. 그런데 알림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신청이 이미 마감되었습니다.”

위 상황은 필자가 얼마 전에 접한 생생한 경험담이다. 당일은 우리 쌍둥이들의 방과후 수업을 온라인으로 신청하는 날이었다.

아이들이 너무나 하고 싶었던 수강이었고 필자 역시 엄마가 IT를 활용하는데 제약이 많은 만큼 저렴한 수강료에 질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에 간절히 희망했던 수업이다. 하지만 보다시피 결과는 허탈하게 끝났다.

“그래. 다음에 여름방학 특강에 꼭 도전해 보자. 그 시간에 쉴 수 있으니 더 잘 된 거야 그치?”

필자의 위로에 쌍둥이들은 어린아이들 답게 쿨하게 받아드렸고 방과 후 수업 이야기는 그날 이후 언급되지 않았다.

그런데 혼자 곰곰이 생각해보니 너무나 비합리적이고 사회적 균등 원리에 적합하지 못한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밀학급이라 학생수도 많은 학교에 코로나로 인해 15명에게만 주어지는 수업은 분명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신청 방법은 장애인, 비장애인을 떠나 온라인 활용에 능숙한 신청자 또는 시스템 환경이 좋은 여건의 신청자에게 부여되는 특혜는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바꾸어 생각하면 온라인에 익숙하지 못하고 IT환경이 열악한 이들에게는 애초에 똑같은 출발점이 허락되지 않은 것이다.

단면적으로 방과후시스템을 실례로 들었을 뿐 세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선착순을 마치 가장 공정성 있는 공급 체계인 듯 보편화 시키고 있었다.

말로는 ‘함께’를 외치지만 함께할 수 없는 수백만 가지의 숨은 이유들에 대해서는 얼마나 관심이 많았는지 반문해 보고 싶다.

갈수록 신속과 빠름을 이용자들에게 요구하는 현 사회는 우리들을 사회 참여의 기회에서 더욱 거리를 두게 만들고 있으며 단단한 바리케이드가 되어 접근을 막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인지해야만 한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평생교육도 웹 접근성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지 파일로 안내지를 게시하는 일이 다반사이고 교육 신청 역시 온라인 선착순을 고수하고 있다. 각 구에서 운영되는 국민체육센터는 어떨까? 인기 있는 강좌는 새벽 6시부터 선착순 신청인데 1분이면 마감돼버린다.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위해 편의시설을 법제화 한들 이를 이용하는 당사자들을 위한 서비스 신청 기회조차 공정하지 못하다면 편의시설은 전시물에 불가할 것이다.

IT에 능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빨리빨리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무능한 듯 현대사회는 본질을 흐리며 이상기류 현상이 사실인 듯 자리매김 중이다. 편의와 효율성을 가장한 이 양태에 또 다른 소외계층을 양산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세상 사람들은 장애인들이 불편하기 때문에 많은 배려와 양보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또한 사실이고 그리고 몸소 실천해 주는 분들에게는 당사자로서 서면으로 나마 깊은 감사와 존경을 표하고 싶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우리 역시 치열한 선착순 경쟁 속에 기회균등이 이루어지지 않아 체념하고 자발적 유무와 상관없이 비장애인에게 많은 양보를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자의에 의한 양보는 보람이라도 있겠지만 일상생활의 현저한 어려움들로 인해 양보를 일삼는 것은 그저 씁쓸하고 안타깝다. 조바심 내며 허우적거리는 시간 속에 이미 GAME OVER가 되는 상황 이제는 그만하고 싶다.

이 사회의 모든 서비스의 1순위 수혜자는 속도력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 간절함이 있는 사람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필자는 그래서 비록 우리 쌍둥이들에게 컴퓨터 수업은 수강시켜 주지 못하였지만 넓은 시야로 세상과 공존하는 미덕을 가르쳐 주려고 한다. 신속과 편의를 요하는 컴퓨터 수업보다 훨씬 가치 있고 아름다운 아날로그 감성을 마음에 깊이 새겨주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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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혜 칼럼니스트 집에서는 좌충우돌 쌍둥이들의 엄마! 직장에서는 소규모 사회복지시설의 책임자. 외부활동에서는 장애인인식개선 강사. 동네에서는 수다쟁이 언니. 이 모든 것과 함께하는 나의 장애. 장애인들은 슬프기만 해야 하나요? 우리를 바라만 봐도 안타까우신가요? 장애인의 삶을 쉽게 예단하지 마세요. 우여곡절 속에서도 위풍당당 긍정적 에너지를 품고 매일을 살아가는 모든 장애인동료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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