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나아가 장애를 드러내는 방식에도 문화적 차이가 있다. ⓒunsplash

아들이 세 살 무렵 부엌 의자에서 놀다가 그만 바닥에 넘어졌다. 하필이면 전날 마신 맥주병을 모아둔 자리에 얼굴이 떨어지면서 유리병 입구에 얼굴이 부딪치고 말았다. 다행히도 눈이 아니라 눈 바로 아래 살이 2센치 정도 찢어져 피를 제법 흘렸다. 하필이면 그날은 일요일. 우리 가족은 부랴부랴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 의사는 아이의 상처를 간단히 소독하고, 상처가 더 벌어지지 않도록 의료용 반창고를 붙인 뒤 “반창고가 저절로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세요. 이후엔 상처에 공기가 잘 통하도록 관리하시면 됩니다”라고 할 뿐이었다.

“새 반창고 붙여줘야 하지 않나요? 연고 같은 거 안 발라줘도 되나요?”

“반창고도 연고도 필요 없어요”

“그래도… 흉터 생기지 않을까요?” 근심 어린 표정으로 내가 묻자 의사는 “어차피 수년간 흉터로 남을 거예요.”라고 담담하게 말할 뿐이었다. 베를린 최고의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나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옆에서 차분하게 지켜보던 남편도 독일에서는 원래 그렇게 한다고, 상처가 자연적으로 아물 때까지 그냥 기다리면 된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그래도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아이와 함께 어린이집으로 향하던 중, 직업이 소아과 의사인 엄마 한 명과 마주쳤다. 아이를 딱 보자마자 그녀가 말한다. “반창고가 저절로 떨어지고 난 후 최대한 공기 잘 통하게 관리하면 괜찮아요”. 그제서야 나는 이게 독일 방식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처럼 독일에서는 몸에 상처가 났을 때 되도록이면 반창고나 연고 없이 상처가 공기 중에 자연스레 아물도록, 오히려 상처를 밖으로 드러내는 방식을 권하는 편이다(물론 깊고 큰 상처인 경우는 다르다.) 흉터가 생겨도 크게 염려하지 않는다.

독일에 오래 살다 보니, 상처와 흉터를 드러내는 독일인의 태도가 자신이나 가족의 장애를 드러내는 태도와 닮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독일 장애인과 가족은 장애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이 불만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장애나 가족의 장애를 숨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안드레아스의 장애여부를 전혀 알아채지 못한 채 그의 집을 처음 방문한 날, 현관에 놓인 의족을 발견하고 내가 잠시 머뭇거리자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아~ 그거 내 다리야!"

오랜만에 놀이터에서 마주친 레나는 대화를 시작한 지 1분도 안 되어 내게 말한다. “우리 아이가 자폐성 장애 진단을 받았어. 이제 주변에 다 알리려고. 그래야 다들 우리 아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으니까.”

중도중복장애가 있는 딸을 둔 카트린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수시로 딸의 사진과 영상을 보내며, 딸이 현재 어떤 휠체어와 (의사소통)보조기구를 사용하며 생활하는지, 어떤 테라피를 받고 있는지, 딸과 함께 일상에서 어떠한 추억을 만들어가고 있는지, 소소한 근황을 알려준다.

“안녕? 지금 뭐해? 잘 가!” 이 한 문장을 상대방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반복하는 슈테판과 처음 만나 식사를 한 날, 중증지체장애가 있는 친구 헬렌이 즐겨 쓰는 말이 떠올랐다. “그건 내 문제가 아니라 네 문제야!”(Das ist nicht mein Problem, das ist dein Problem!) 발달장애가 있는 슈테판의 행동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몰라 약간 당황한 건 나의 문제지, 슈테판의 문제가 아니었다. 슈테판 부모의 문제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아주 여유롭고 자연스럽게 식사를 이어 나갔다.

독일 장애인과 가족이 이토록 장애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모습이 처음에는 독일인 특유의 당당함과 떳떳함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사실 그것은 너무나도 평범한, 당연히 그래야 하는,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독일 장애인과 가족은 장애로 인해 당황하거나 불편해하는 주변 세계에 당당하게 표현하며 살아가는 듯하다. “그건 우리 문제가 아니라 당신들 문제예요!”

독일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가 아들의 얼굴에 난 흉터를 처음 발견했을 때, “얼굴에 흉터가 났네. 무슨 사고 났어?”라고 물은 게 전부였다. 한국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가 아이의 흉터를 발견했을 때, “저런 저런, 얼굴에 왜 흉터 생겼어? 왜 아이한테 상처크림 안 발라줬어? 네가 관리만 잘 해줬으면 흉터가 크게 안 남았을 텐데!”라며 나에게 질책하며 거의 죄책감까지 안겨주었다. 이러한 모습 또한 한국인과 독일인의 차이, 즉 상처와 흉터, 나아가 장애를 대하는 한국인과 독일인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아들의 흉터는 3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히 남아있다. 하지만 흉터가 있어도 괜찮다. 그 또한 아이의 일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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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세리 칼럼니스트 독한 마음으로, 교대 졸업과 동시에 홀로 독일로 향했다. 독한 마음으로,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재활특수교육학 학사, 석사과정을 거쳐 현재 박사과정에 있다. 독일에 사는 한국 여자, 독한(獨韓)여자가 독일에서 유학생으로 외국인으로 엄마로서 체험하고 느끼는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와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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