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네 살 무렵. 언어발달이 느리다는 소견을 받았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좋아지겠지 생각하고, 책도 읽어주고 얘기도 많이 했음에도 눈에 띄게 좋아지지 않아 병원에서 소견서를 받기에 이르렀다.

친척들은 “아빠가 작업치료사인데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하는 눈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정작 내 자식의 일이다 보니 걱정이 앞서 이성적으로 상황을 헤쳐 나가는 게 더 어려웠다. 직장에선 성인 파트만 오래 담당했기에 아동 발달에 대한 지식은 잊은 지 오래였다.

암튼 병원에서 소견서를 받는 것까진 좋았는데, 그다음부터는 어디서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막막했다. 사설 치료센터 여러 곳에 전화를 돌리고, 인터넷을 통해 바우처를 신청하는 방법을 찾아봤다. 그런데 작업치료사인 나조차도 시스템이 너무 어려워 정신을 차리기 힘들 지경이었다. 바우처를 신청하기 위해 찾아간 동사무소에선 황당한 말을 들었다. “바우처가 무엇인가요?”

직원에게 5분 이상 바우처에 대한 설명을 해줬더니 다음에 다시 와서 신청서를 쓰라고 한다. 보직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분 같았다. 다시 와서 쓰라는 말은 그간 업무를 익히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러곤 다시 재방문해 신청 접수를 했고, 바우처를 활용하여 사전에 알아둔 아동 발달센터에서 언어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앞서 언급했듯이 신청 과정이 쉽지 않았다. 의료와 복지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분이거나, 더구나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신청을 한다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는 4살 무렵부터 8살까지 지속적으로 언어치료를 받은 덕에 지금은 좋아졌지만, 당시 혼란스러웠던 경험을 생각하면 내게 여러 시사점을 주는 것 같다. 아이는 온 동네가 함께 키운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바꿔서, 장애인이 지역에서 살아가려면, 거주 지역의 장애인과 관련된 모든 기관 및 종사자들이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은 범위로는 동사무소, 넓은 범위로는 동사무소를 포함한 복지관과 보건소가 해당된다. 그 외 방문진료 하는 장애인 주치의라든지, 꼭 등록된 장애인 주치의가 아니더라도 병원이나 일차의료기관도 포함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역에 거주하는 장애인 당사자가 보건의료복지에 대한 욕구가 있을 때,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협력체계가 있어 원스톱으로 안내하고 지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 말해, 아이에게 발달지연이 나타났을 때, 초기 스크리닝부터 치료 연계까지 기관 간 협력으로 의뢰와 회송을 받는 시스템이 정착된다면 아무런 정보도 없는 당사자 입장에선 더없이 좋은 환경이 될 것이다.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이 직접 여기저기 알아보고 발품을 파는 건 효율적이지 않다. 여러 제약 때문에 개별 서비스 신청이 어려워 쓸쓸하고 초라하게 세상을 떠난 장애인들이 셀 수 없이 많았던 것을 상기한다면, 개개인에게 맞춤형 사례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다학제 협력은 매우 필수적이다.

지역에 있는 여러 보건의료복지 기관들이 서로의 장벽을 걷어내고 같이 협력한다면 국가정책으로 추진되고 있는 지역사회돌봄통합(커뮤니티케어)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장애인의 커뮤니티케어는 다 직종 기관 협력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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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수 칼럼니스트 서울특별시북부지역장애인보건의료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 장애인의 건강한 삶에 관심이 많아서 지금 관련 업무를 하고 있다. 장애인이 병원을 떠나 지역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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