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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권은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두에게 접근 가능한 선거 위해 함께 연대해야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0-09-11 13:07:32
최근 시각장애인 관련 점자형 선거공보물 면수 제한에 대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판결이 나왔다. 청각장애인과 관련한 임의적인 수화‧자막 방영도 역시 헌법에 반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한 글자를 점자로 표현하기 위해 2~3배 정도의 크기로 해야 함을 고려한다면 점자형 선거공보물 면수 제한은 시각장애인에게는 다른 이들과 동등하게 선거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어려워지고 장애를 고려한 것이 아니기에, 시각장애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거다.

수어와 자막을 표현수단으로 하는 청각장애인들에게 임의적 수화‧자막 방영을 한다는 것도 이들에게는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후보자 선거 정보를 얻기 힘든 때가 발생한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청각장애인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지적장애인 선거권에서도, 그림투표용지와 쉬운 선거공보를 장애인 당사자들이 요구했지만, 그림과 사진을 넣으면 선거 공정성에 문제가 생긴다며, 선관위는 이들의 정당한 요구를 무시했다. 이런 소식들을 접하면서 누구에게나 평등한 선거권이 대한민국 장애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게 아직도 여전하다는 것을 느낀다.

이와 관련해, 점자형 선거공보물 면수 제한 폐지, 수화자막 방영의 의무화, 쉬운 선거공보 및 그림투표용지 등을 공직선거법에 명시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하는 장애인 당사자와 관계자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그것도 필요하므로 그것 나름대로 강하게 주장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국가가 시‧청각, 지적장애인 등의 선거권 요구를 무시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한 시각장애인이 4년 반 전, 20대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모의투표체험을 하는 모습. ⓒ에이블뉴스 DB 에이블포토로 보기 한 시각장애인이 4년 반 전, 20대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모의투표체험을 하는 모습. ⓒ에이블뉴스 DB
공직선거법 제151조를 보면 투표용지 작성 시, 정당‧후보자 칸 사이 여백을 두고 구체적 방법은 선관위 규칙을 따른다고 되어 있다. 8항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특수투표용지 또는 투표보조용구를 제작‧사용할 수 있다고도 되어 있다. 장애계에서 10년 넘게 특수투표용지 만들어달라고 주장했기에 특수투표용지가 법에 들어갔다.

그런데 시각장애인에게 특수투표용지인 점자투표용지가 나오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국가에서 선거권을 지극히 장애인만의 문제로 해석해 점자투표용지 만드는 거로 인식하며 ‘이 용지 만드는데 돈이 얼마나 들어?’ 하면서 선거를 권리가 아닌 돈 문제로 이해하기에 장애인에게 필요한 투표 편의 관련 논의가 한발짝도 진전되지 못하고 있는 거다.

결국, 국가가 점자형 선거공보 면수 제한의 정당성을 내세우는 등 선거를 장애인만의 문제, 비용문제로만 바라보는 게 장애인의 선거권 요구를 무시하는 근본 이유인 것이다. 그러면 이전에 잠깐 언급했던 헌재 판결과 관련한 내용을 알아보자. 판결내용은 이렇다.

‘현재 점자출판시설로 기능하고 있는 점자도서관 수가 전국 약 40여개에 불과하고, 점자형 선거공보의 경우 국가 및 지자체가 작성비용까지 부담하고 있어, 점자형 선고공보의 면수를 제한하지 않을 경우 점자출판 시설 및 점역‧교정사 등의 부족으로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고, 국가가 과다한 비용을 부담하게 될 수 있다’

헌재까지 장애인 선거권 침해하는 국가의 입장에 손을 들며 찬성하고 있는 입장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선거권은 진짜 장애인만의 문제인 것일까?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에이블뉴스 DB 에이블포토로 보기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에이블뉴스 DB
글과 숫자를 모르는, 다시 말해 문해력이 없다고 한 사람이 311만 명이고, 장애인 인구는 2018년 기준으로 258만 명으로 추산된다. 7년 뒤에는 초고령 사회가 도래한다고 한다.

지적장애인은 선거공보가 어려워 정보를 얻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그런데 노화로 인해 정보가 어려워서 선거 관련 정보를 얻기가 어려운 어르신들도 있다. 문해력이 없다고 한 사람 수만 연관해서 생각해보아도 선거권은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닌 거다.

심지어는 노화로 인해 눈이 침침해 앞이 잘 안 보이게 되어, 글자, 숫자를 인식하지 못하는 어르신들도 있을 수 있다. 노화로 인해 청각장애를 겪는 데다, 수어를 잘 몰라 선거 관련 최신정보를 얻고 이해하기 어려워하시는 어르신들도 있을 수 있다. 선거권은 이런 분들도 행사하기 어려워질 여지가 높다.

결국, 선거권은 장애인만이 아닌 어르신, 문해력이 부족한 아동 등 모두의 문제일 수 있다. 이 점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지적장애인, 정신장애인, 어르신, 아동 등 모두가 당당한 대한민국 국민의 한 구성원으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도록 모두 접근 가능한 유니버설, 배리어-프리 기준의 선거공보, 투표용지 등을 제작해야 한다.

그럴 때 선거공보, 투표용지 등의 제작비용은 점자투표용지를 포함한 각 장애 유형별 선거공보와 선거용지 등을 따로따로 제작할 때보다 돈도 덜 들게 되어 국가가 주장하는 비용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는 비용문제에 대해 변명할 여지를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안 마련 토론회 전경. ⓒ이원무 에이블포토로 보기 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안 마련 토론회 전경. ⓒ이원무
그런데 배리어-프리 기준의 선거공보, 투표용지 등을 제작하게 된다면 이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정치권, 재벌, 사법부 등의 기득권들이다. 장애인, 성 소수자, 어르신 등 국민 모두 나라와 정치권 등에서 하는 일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표명할 계기가 생기니, 모두가 평등해지게 되고, 기득권들은 전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기득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따라서 전 장애계와 시민단체, 장애인‧노인 당사자 등이 모두에게 접근 가능한 투표를 위해 서로 연대해 뜻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등 장애 유형별로 각각 투표 관련 정당한 편의를 따로따로 외치는 차원을 넘어 전 장애 유형, 노인 등 모두가 하나가 되어, 모두에게 접근 가능한 투표를 위해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거다.

그럴 때 국가가 선거를 장애인만의 문제로, 비용문제로 인식하는 사례, 그리고 여기에 대해 사법부가 찬성하는 판례들은 점점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경지에까지 가게 될 거다.

요즘 서울시에서 공공시설에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할 움직임을 보인다. 하물며 광역 지자체에서도 이러는데, 국가도 이제는 선거공보, 투표 등 모든 선거 과정에 유니버설, 배리어-프리 기준을 적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도록 기득권층들이 기득권을 내려놓을 때 국민 모두에게서 권력이 나온다는 민주주의의 정신을 진짜로 실현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게 바로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는 거다.

그래서 이제는 선거와 관련해 각 장애별 정당한 편의 차원을 넘어 장애계, 장애인 당사자 및 시민단체 등이 머리를 맞대고 전략을 세워 모두에게 접근 가능한 선거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함께 매진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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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이원무 (wmlee7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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