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아직은 덥다. 이렇게 더운 날 아무데도 가지 않고 있다. 가고 싶은 곳은 많다. 지난 겨울에 보았던 겨울 바다도, 여름의 산뜻한 바람도, 가을 끝자락에서 느꼈던 쓸쓸함도 9평 방안에서는 느낄 수 없다. 마음대로 나갈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 벌써 몇달이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아무데도 갈 수 없다. 뭔가 먹을 때만 마스크를 뗄 수 있다.

중증장애인의 경우 활동지원사가 섬세한 동작을 돕는다. 마스크를 쓰고 벗는 것 역시 활동지원사가 도와야 할 때가 많다. 마스크를 쓰고 벗을 때마다 얼굴이 일그러진다. 힘들다. 숨쉬기도 말하기도, 우리 활동지원사는 그래도 니가 아프면 나까지 일을 할 수 없게 되니 절대 아프지 말라고 한다. 5년 전부터 일을 하고 있는 이 분은 내가 걱정인 것인지, 마스크를 꼭 끼워 주며 절대 빼지 말라고 신신당부다.

갈 곳이 없어졌다. 카페도 위험하고 식당도 위험하다고 한다. 퇴근 후 그렇다고 곧장 집으로 갈 수는 없어 중고서점을 매일 들른다. 책을 좋아한다. 아니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안정감을 좋아한다. 목포 우리집에는 거실 벽 한 면이 책장으로 가득했다. 아버지 방도 그랬다. 그래서 읽지 않고 표지만 보아 오던 책들이 가끔 떠오른다. 책장에 꽂힌 책들은 어린 날 아무데도 갈 수 없었던 나를 위로해 준다. 이젠 어디든 갈 수 있는데 또다시 감방살이다.

전동휠체어가 생기자 마자 간 곳도 도서관이었다. 책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주는 안정감은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다. 그 때 읽었던 책이 간디 위인전이다. 간디가 아마 우리나라를 동방의 등불이라고 했다.

동방의 등불은 등불인데 어두운 것 같다.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 격상으로 당분간은 아무데도 가기 어렵다고 방송에서 그런다. 방역에 애쓰시는 분께 욕하고 침뱉는 걸 티비로 보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삶의 목적이 있다. 그냥 사는 사람은 없다. 낮에 전화온 녀석은 여자친구와 결혼하기 위해 용돈을 모으고 있다. 며칠 전에 길에서 마주쳤던 녀석은 며칠 뒤 집을 얻어 이사를 간다. 사람들이 저마다의 삶을 사는 동안 어떤 사람은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에게 침 뱉고 욕을 한다. 내눈에도, 내 친구들의 눈에도 그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나갈 곳이 없어진 내 친구들은 거의 매일 집콕이다. 집밖을 잠시만 나와도 가게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함에도 친구들이 갈 곳은 없다. 복지관도, 기관도 문을 열지 않는다.

광화문 집회하는 날 비가 많이 왔다. 그 전주부터 온 비가 그치지 않아 걱정이 되었다. 하나 비가 오면 집회에 어르신들이 좀 덜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비가 오지 않던 주말에도 사람들은 많았고 마스크도, 사회적 거리두기도 지키지 않아 걱정을 하던 차였다.

연일 광화문 집회로 확진자가 200명대에서 300, 400명대로 늘었다 한다. 어처구니 없게도 신은 그사람들을 지켜주지 않은 듯했다.

전날 센터로 찾아온 아이들은 등교를 할 수 없어 집에 있는 날이 더 많다고 한다. 외출을 좋아한다고 한다. 남자 아이는 제주도 한번 가는 게 소원이라고 한다. 여자 아이는 들리지 않는다. 말을 걸어도 대답을 해주지 않아 답답했다. 활동지원사가 아이 손을 꼭 잡으며 누군가 이 아이 관심 좀 가져 줬으면 한다. 들리지 않으니 가족 중 아무도 말을 걸어 주지 않았다. 아이는 반응을 전혀 할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은 시시때때로 변한다. 변화하고 성장하고 그렇게 살아간다. 2020년은 장애인들에게 잔인한 해다. 변화를 멈추게 하고 그 가족들을 힘들게 한다.

얼마 전 뉴스에서는 발달장애인 모자가 차에서 연탄가스를 마시고 자살을 했다고 한창 떠들어 댔다. 그러고는 잠잠하다. 잊혀지는 아이들, 그 가족이 우리 곁에 있다.

코로나19로 누구나 힘들다. 소상공인들은 장사가 안되 사업장을 접고, 그 덕에 일자리가 없어진 사람들은 손가락을 빨아야 할 지도 모른다. 장애인들의 삶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공공일자리가 올해는 없어져 버렸다. 이 넘의 코로나는 사람들을 결국 죽음으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일하는 곳에는 마음을 나누어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갈 곳 없어진 사람들, 일할 곳 없어진 사람들을 광화문집회에 나왔던 사람들은 알랑가 모르겠다. 몰라도 된다. 옆에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한다.

당신들이 모여서 자유를 부르짖는 동안에도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 하루 하루 전쟁 같을 사람들이 있다. 순간순간 힘들어할 이들이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 감히 신에게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 또한. 오만이므로…

제주도에 가고 싶다는 명준이를 꼭 제주도에 보내주고 싶다. 코로나19가 추위가 오기 전에 잠잠해져 명준이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그렇게 된다면 올해가 그냥 아무 의미없이 지나가지 않았음을 베시시 거리며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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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주 칼럼니스트 현재 삼육대 일반대학원 사회복지학과 학생으로 장애 전반, 발달장애 지원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 중이다. 장애인 당사자로 당사자 지원에서, 일상생활에서 장애로 인해 느꼈던 것들을 전반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지체장애인으로 보여지고 전동휠체어를 타고 있어 일상생활 자체가 글감이 될 수 있어 나는 좋은 칼럼니스트의 조건을 갖고 있다.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들에 대해 거의 매일 쓰고 있다. 전동휠체어를 매개로 생각하고 지나다니다 본 것들에 대해, 들은 것, 경험한 것들에 대해 쓴다. 전동휠체어 위에서의 일상, 지체장애인으로의 삶에 대해 꿈틀꿈틀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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