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에서 주최했던 발달장애인 문화예술제에서 한기명(위 맨 좌측)씨가 포함된 인형극단 '멋진 친구들'이 공연하고 있는 모습.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나는 요즘 페이스북을 하면서 정치나 사회, 경제, 장애계 소식, 드라마 등 온갖 정보들을 보면서 나만의 느낌을 적고 사람들과 소통하기도 한다. 내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의견을 주는 사람들도 있는 등 사람들 생각이 다양하다.

소통하면서 즐겁기도 하지만 힘들 때도 있다. 혹시 내 생각이 틀렸나 조마조마하게 느끼는 순간들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 생각이라는 게 다 다른 거고 각자만의 이유가 있으니까 그러려니 하련다. 물론 쿨하게 잘 넘어가지 못할 때도 있지만 말이다. 내 생각의 크기를 넓히도록 조금이라도 노력하면 달라지려나...

그건 그렇고, 최근 페이스북을 보다가 ‘뻔장코(뻔뻔한 장애인 코미디언의 약자)’ 동영상을 많이 시청해달라는 내용의 글을 봤다. 보니 잘 아는 분이라 반가웠다.

요즘 잘 나가는 ‘스탠드업 코미디언’ 한기명 씨가 올린 내용이었다. 여기서 ‘스탠드업 코미디’란 희극 배우(코미디언)가 관객을 마주하는 실시간 희극을 말한다.

필자가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를 다니던 시절에 인형극단 ‘멋진 친구들’의 단원으로 활약했던 분이다. 필자가 업무를 보다 휴식시간을 가질 때 가끔 이야기를 나누어 어느 정도 안면이 있었다. 4년 전엔 발달장애인 문화예술제에서도 만나 장애계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런 인연이 있었던지라 그 내용을 보면서 관심이 갔고 동영상을 몇 개 시청해보았다. 예전에도 봤던 동영상도 있었지만, 그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다시 보고 또 보면서 한기명 씨가 하려고 한 의도를 조금씩 이해하다 보니 웃음이 나오게 되었다. 필자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이야기가 조금 길어질 수도 있으니 양해를 부탁드린다.

한기명 씨의 스탠드업 코미디 장면. ⓒYoutube캡처

1. ‘부러우면 니들이 장애인 하던가’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어휴, 장애인은 좋겠어. 나라에서 돈도 나와. 세금도 안내, 게다가 게다가 지하철도 공짜야. 게다가 공과금까지 나와’

‘아니 그렇게 부러우면 니들이 장애인 하던가’

그러면서 한기명 씨는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간다.

‘솔직히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장애인 아니에요? 아니 보면은 제가 까놓고 누구라 집진 않겠는데, 여기 탈모장애 있고, 비만장애 있고, 안면비대칭장애도 있고, 많네요... 아니 물론 국가에서 급수를 안 매겼을 뿐이지, 여러분들 다 장애인이에요.’

우리나라에서 장애인 하면 대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다. 장애라는 이유 하나로 또는 비장애인 기준에 적응하라는 암묵적인 압박을 받으면서 천대, 차별, 멸시, 거부 등을 겪으며 오늘 하루도 삶을 힘겹게 지탱해 간다.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편견을 갖는 비장애인들이 많은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하지만 장애인이면 실제로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고 세금도 안 내니, 가뜩이나 경기가 어려워지는 때, 이들 입장에선 ‘나도 장애인이 되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마음속으로는 해보며 부러웠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막상 장애인이 된다고 생각하면 불쌍하다는 시혜와 동정의 시선을 받거나 혐오를 겪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물론 장애인이 되면 불편한 것도 있기에 그렇게 되기는 본능적으로 싫은 마음도 들지만 말이다.

장애인은 무료로 탑승하는 지하철 신분당선 양재역 승강장 모습 ⓒ이원무

실제로 장애인 당사자들은 지하철 무료에 버스는 요금 그대로 내는 등 일관성 없는 교통요금 정책을 원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지하철, 버스 등을 일관되게 50% 할인하고, 나머지는 정부가 보조금으로 지원해 장애인들이 주체적인 소비자로 교통수단을 이용하길 원한다.

또한, 세금 내는 당당한 장애인이 되게 해달라고 일자리 만들기 및 소득보장 관련 정책을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금 안 내는 것, 지하철 무료 등의 현실은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 생각해보면 장애인들이 누리는 혜택을 받고 싶지만, 막상 그러고는 싶지 않은 모순된 심리, 또는 시혜와 동정을 받고 싶으나 한편으론 그러긴 싫은 그런 심리로도 볼 수 있다. 그래서 ‘부러우면 니들이 장애인 하던가’는, 많은 비장애인들의 모순된 심리를 풍자적으로 묘사한 표현이란 느낌이 들게 되는 거다.

비장애인들이 그동안 편견과 무지로 대한민국의 장애인들을 대해왔다는 현실도 함축적으로 녹여낸 표현이 이 표현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블랙코미디의 냄새가 풍긴다. 좀 웃기면서도 슬픈, 한마디로 말해 웃프다.

한기명 씨는 한술 더 떠, 비만장애, 탈모장애 등도 있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외모지상주의가 심한 사회에서는 비만이나 탈모 증세가 있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비만이나 탈모 등이 대한민국 사회맥락에선 일상생활에 불편을 주기에 장애라 부르는 것이 맞다.

장애인권리협약에서 장애란 의료적인 정의에 차별적인 시선, 사회장벽 등 사회적 정의까지 고려해 정의하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그는 결국 의료적으로만 장애를 정의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까지 날카롭게 꼬집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러분들 다 장애인이다!’라고 말을 맺으면서 말이다.

2. ‘이겨도 병신, 져도 병신, 승리하는 병신이 되겠습니다!’

‘이겨도 병신, 져도 병신. 져도 병신이라면 승리하는 병신이 되라. 누가 한 말이에요? 지금 내가 한 말이에요. 아니 근데, 내가 하기 전에 또 누가 했더라고. 딱 찾아보니까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라는 학자가 했더라고요. 모두들 경외하세요. 나는 승리한 병신이니까.’

이겨도 병신, 져도 병신? 언뜻 보면 이상해 보이나, 생각해보면 이 말이 이해가 간다.

미래학자인 Alvin Toffler모습 ⓒ위키백과

‘병신’이라는 말은 장애인을 얕잡아 비하하는 말로 그 말 속에는 장애인에 대한 지독한 편견이 담겨 있다. 아까 전에도 말했듯이 장애인 하면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으로 인식한다. 또한, 능력 없는 사람으로도 여기곤 한다.

그런데 예를 들어, 장애인권리위원회를 보면 권리위원회에는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장애인 당사자들이 위원으로 참여하며 각국의 권리 이행 현실을 심사하고, 현실 개선을 위한 권고까지 내린다. 능력이 출중하고 당당한 분들이다. 이런 분들을 비장애인들이 안다면 감히 장애인을 ‘병신’이라고 함부로 부를 수 없을 거다.

그리고 져도 병신? 사람들에게 있는 ‘장애인은 뭐를 해도 못 한다’는 편견을 장애인 당사자 스스로 깨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역시 잘 못 하네’하며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강화한다.

병신은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이니 이겨도 병신, 져도 병신이라는 말은 사람들의 편견에 상관없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로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승리하는 병신이 되겠다는 말은 병신으로 생각했던 장애인이라는 사람들 가운데는 능력도 출중하고 당당한 사람들이 있으니 비장애인의 마음속에는 ‘이거 병신으로 불렀다가는 장애인들에게 호되게 당하겠는데. 나에게 무슨 잘못된 생각이 있는 건 아닐까?’하고, 자신을 깊게 돌아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엔 ‘병신’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않게 되고, 장애인 비하의 심각성을 생각하며 인지까지 하게 되는 계기를 비장애인에게 주게 된다는 느낌마저 ‘이겨도 병신, 져도 병신? 저는 승리하는 병신이 되겠습니다.’라는 말을 통해 받게 된다.

‘모두들 경외하세요. 나는 승리한 병신이니까.’는 대사까지 더해지면서 관객들의 웃음을 자연스레 자아낸다. 병신이라는 장애인 비하 단어를 소재로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그의 재치가 돋보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특수학교 문제점을 도표로 설명한 그림 ⓒYTN뉴스캡처

3. ‘특수교육, 특수학급, 특수학교? 그러면 특수부대 보내주던가’

‘저는 장애인을 지칭하는 올바른 표현들이 많다는 것이 싫어요. 예를 들면 특수교육, 특수학급, 특수학교? 이런 것들이 왜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제가 뭐가 그리 특수하다는 건지, 차라리 그럴 거면 얼마 전에 병무청에 갔었을 때 나를 특수부대에 보내주던가. 아, 군대 가고 싶다...’

특수부대는 최전선에 배치되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거치며, 막강한 전투력을 자랑한다. 군대에서 능력 있는 사람이기도 할 테고. 그런데 분리된 공간에서 혹독한 훈련을 하는 특수부대에 장애인을 보내달라? 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군대 특성상 특수부대는 장애인을 차별할 소지가 높다.

특수교육, 특수학급, 특수학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분리하는 교육시스템이다. 그런데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함께 어울리기를 원한다.

그리고 장애인의 특성을 생각하지 않는 게 차별의 소지로 작용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배려하는 식으로 ‘특수’자를 넣는 것도 차별로 느껴진다.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존엄성 있는 동등한 존재요, 권리와 책임, 의무를 함께 가져간다는 점을 보면 그렇다.

결국 ‘특수교육, 특수학급, 특수학교? 그러면 특수부대 보내주던가’라는 말은 장애인을 너무 지나치게 챙겨 차별을 느끼게 하지 말고,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대우하라는 해학적인 표현인 셈이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어울렸으면 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이외에도 할머니 한 분이 전동차 안에서 옆에 앉고는 ‘어쩌다 몸이 그렇게 됐어?’ 라는 말에 ‘전철을 공짜로 탈려고요’라고 한기명 씨 자신이 말했다며 이를 연기했던 대사도 있었다. 대사를 들으면서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보는 우리나라 장애인 정책의 한 단면을 다시 한 번 엿볼 수 있었기에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교육 포스터 ⓒ고용노동부,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대한민국 장애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혐오와 차별로 오랜 시간 형성되어 왔기에 그런 인식이 바뀌는 건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쉽지 않다. 최근 직장 내 장애인식개선교육을 직장에서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정부가 나서고 있지만, 아직도 장애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판을 치는 모습을 보면 더욱 쉽지 않다는 것이 느껴진다.

물론 비장애인이 장애인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고 악의적인 차별도 하는 것도 있기에, 인식개선을 하고 장애에 대해 알려주어야 하는 건 맞다. 정부 조치는 전에 비해 그나마 고무적이긴 하다.

그런데 장애인식개선교육이라는 말이 장애를 겪지 않는 비장애인이 잘못되었다는 뉘앙스를 주기에, 차별‧혐오할 의도가 없는 비장애인에게는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그래서 장애이해교육이란 말이 그런 뉘앙스를 줄일 수 있는 용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런 배경 속에 장애인식 관련 스탠드업 코미디가 계속 이어진다면, 사람들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스스로 돌아보게 되어 의무적 교육의 효과가 배가된다고 본다. 장기적으로 진행된다면 장애인식에 대한 올바른 문화가 형성되기에, 궁극적으로 장애인식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당사자인 한기명 씨도 장애를 겪는 후배들을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양성해 장애인이 자신의 장애를 숨기지 않고 즐기며, 당당한 사회의 한 일원으로 자리 잡도록 일조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아울러 스탠드업 코미디를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고 그게 있으면 좋겠다는 포부까지도 밝혔다.

그가 바라는 대로 장애인이 자신의 장애를 스스로 밝히고 즐기며, 당당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활동하는 사회가 되길 필자도 간절히 바란다. 오늘도 열심히 삶을 살며 장애인식을 좋게 하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하는 그를 응원한다.

그나저나 코로나 시국의 장기화로 우울해지기 쉬운 요즘, 재미있는 뻔장코와 같은 코미디나 훈훈한 감동을 주는 ‘한 번 다녀왔습니다’, ‘영혼수선공’ 등의 드라마 좀 많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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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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