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막이 단체복을 입은 대학교 2학년(2009년) 학과 촬영여행 당시의 필자. ⓒ장지용

대학교를 다닐 때 저는 학과에서 단체복을 준다길래, 방송에서 많이 본 야구 점퍼에 가까운 것으로 줄 것이라고 상상했습니다. 그러나 받은 단체복은 바람막이에 가까웠습니다.

처음에는 대단히 실망스러운 느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대학교 4년 동안 학과 촬영여행(저는 사진을 전공했습니다.)이나 현장 촬영 수업 등을 갈 때 일부러 이 옷을 입고 갔었을 때, 매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날씨가 궂을 때 바람과 비를 피해줄 수 있었고, 촬영을 할 때는 실용적으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겉멋만 생각하고 실용성을 생각하지 않은 제 잘못이었습니다.

다만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입은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기억이 난다면, 아마 학과 내 위기로 소집된 대학교 동문회 긴급총회 때 입고 간 것으로 기억합니다.

대학교 2학년(2009년) 학과 촬영여행 도중 과감히 누운 자세로 사진 촬영에 집중하는 필자. ⓒ장지용

대학생 시절, 이 옷을 언제나 입고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촬영하는 날 같은 때에는 입고가면서 학과 일행임을 알려준 것도 있고, 겉멋만 든 점퍼보다 실용적인 바람막이로 사진촬영이 더 편했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심지어 학우들이 저를 찍어준 사진에는 제가 과감히 누운 자세로 사진 촬영에 집중하던 장면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대학 입학으로부터 10년이 흘렀고, 제가 입학했을 때 동기들은 제가 졸업하고 나서 몇 년 뒤에 끝까지 남은 학생까지 제 동기 학번인 08학번 학생들은 모두 졸업했습니다. 그래서 이 점퍼는 더욱더 ‘역사 유물’에 가까워졌습니다.

2013년 대학 졸업 후 제대로 입고 나선 적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대학을 실질적으로 졸업한 것이나 다름없는 학자금 대출을 끝낸 기억이 이제 대학생활의 마지막 이야기로 기록되었습니다. 대학시절에 대한 부담감이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이번에야 다시 대학교 과 단체복을 꺼내봤습니다. 옷에 적힌 ‘상명대학교 사진전공 08학번, 1985년부터 학과 개설’이라는 뜻의 영문 기록과 카메라에서 흔히 F8이라고 부르는 카메라 조리개 상태 그림, 그리고 뒷면의 숫자 8을 연상시키는 렌즈가 2개인 옛날 카메라 그림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었습니다. 제가 08학번이었기 때문에 유난히 8에 대한 그림이 많았던 것입니다.

지금은 대학 입학으로 따지면 12년 뒤고, 졸업만 해도 이제 7년 뒤였으니, 적어도 7년 전까지 입은 옷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험난했던 대학 생활이 이제 새로운 감동을 느꼈고, 이제는 추억하면서 느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나이도 이제 대학을 다니던 20대를 훌쩍 넘어 30대의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때 살아남기 위해 애썼던 저는 결국 직장생활을 잘 해내는 사람으로 변했고, 카메라는 대학교 3학년 때 새로 장만한 것이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으며, 오히려 대학교 1학년 때 고등학생 때 훈련받던 콤팩트 카메라를 대체할 새 카메라를 샀던 것이 창고 안에 있는 것으로 전락했습니다.

물론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대학교 3학년 초반까지 쓰던 DSLR은 더욱더 창고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 쥐었던 콤팩트 카메라는 사실상 폐기되었습니다. 이제는 작동하지도 않거든요.

학자금 대출을 다 갚고 나서 받은 첫 월급 받는 날이 되었습니다. 새로 받은 6번째 첫 월급명세서를 받아보니 뿌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월급 받고도 이제 학자금 대출 갚는 것에 신경 하나도 안 써도 된다는 자부심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새로운 시작이 다가왔다는 느낌도 듭니다. 학자금 대출 상환이라는 이름 속에 갇힌 제 돈의 자유를 이제 만끽할 시간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해외여행을 가고 싶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주요 해외 여행지들은 대부분 입국 금지령이 내려진 상황입니다.

결국 진정한 의미의 첫 해외여행의 꿈은 빨라야 올해 11월에야 꿈꾸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제기한 겨울 재창궐 시나리오에 대단한 불안감도 있습니다.

작년 말부터 개인적으로 제기된 컴퓨터 교체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해도 늦지 않을 듯합니다. 코로나19 때문에 부품 가격 상승으로 시일이 늦어졌을 뿐. 다만 컴퓨터를 잘 아는 제 대학동기가 벌써 130만 원 정도라는 예상 금액 견적을 뽑아줬습니다. 아마 제 상태에 대해 미리 이야기해 준 덕에 벌써 사양이나 금액 생각을 벌써 생각해놓은 모양입니다.

그래도 대학 단체복을 오랜만에 입고 갈 생각입니다. 명분은 외출할 때 입는 겉옷이 드라이클리닝을 다들 맡겨놓은 상태라 입을 옷이 없고, 입을 옷도 지금 보관 중이라 ‘대타’로 투입된 옷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의미도 있습니다. 대학시절이 진정한 의미에서 다 끝나고, 대학시절의 험난했음을 기억하면서 새로운 직장생활에 잘 적응하겠다는 굳은 다짐을 입고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학 시절의 초심을 다시 한번 기억하자는 것도 있고요.

급하게 입는 옷으로 대학교 단체복이 ‘차출’된 것이지만, 그래도 하필이면 학자금 대출 상환 종료 이후 처음으로 받는 월급을 받을 즈음에 입어보니, 새로운 의지를 다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명분이야 어쨌든 간에 사실상 7년 만에 처음으로 대학 단체복을 다시 입고 밖으로 나섭니다. 12년 전 느낌과 7년 전 느낌, 그리고 지금 느낌은 제 기억에서도, 제 몸으로도 확실히 다름을 느낍니다.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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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계약 만료로 한국장애인개발원을 떠난 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그 이후 장지용 앞에 파란만장한 삶과 세상이 벌어졌다. 그 사이 대통령도 바뀔 정도였다. 직장 방랑은 기본이고, 업종마저 뛰어넘고, 그가 겪는 삶도 엄청나게 복잡하고 '파란만장'했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파란만장했던 삶을 살았던 장지용의 지금의 삶과 세상도 과연 파란만장할까?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픽션이지만, 장지용의 삶은 논픽션 리얼 에피소드라는 것이 차이일 뿐! 이제 그 장지용 앞에 벌어진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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