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6일 전체회의를 열어 정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추천과 관련해 당 지도부가 자체적 판단으로 후보를 전략공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발표를 그대로 해석해보면, 지도부가 일방적으로 정하지만 않으면 된다.

즉 공천위원회 등에서 회의를 통해 공천을 하면 지도부가 단독으로 전략공천을 한 것이 아닌 것이 된다. 이는 단순히 절차를 거쳐 공천만 할 뿐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선관위가 이런 발표를 한 법적 근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번에 국회에서 자유한국당이 참여하지 않은 선거법 개정의 결과 새로운 조항이 생겼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 제47조 2항에는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자를 추천하는 경우 정당은 민주적 심사절차를 거쳐 대의원 당원 등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의 민주적 투표 절차에 따라 추천할 후보자를 결정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당 내에서 단순히 공천심사위에서 비례대표를 심의하여 결정하는 것만으로는 법적 조건을 충족했다고 보기에 부족하다. 자유한국당에서는 지역구가 아닌 직능별 대표를 공천하는 것은 정당의 고유권한인데 지나치게 법이 규제를 하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위성정당을 구성하여 비례대표를 정당의 지지율로서 배정받고자 할 경우, 절차를 복잡하게 하여 기한에 선거인단 구성과 투표까지 하기에 업무가 과도하게 되어 위성정당 구성을 쉽게 하기 어렵게 하기 위한 것을 염두에 둔 조치가 아닌가 하는 반발을 사고 있으나, 민주적 절차를 통해 소수 권력자의 일방적 비민주적 행위를 막기 위한 것이라는 해명을 하기도 한다.

비례대표의 영입인사들이 영입의 대우를 받으면서 영입 자체가 비례대표 내정을 의미하는 것에서 이제는 영입은 하였으나 투표를 하여 영입 자체가 의원직 자리를 보장할 수 없다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더구나 선거인단 투표에 들어가는 비용 등을 비례대표 후보자들이 지불해야 하므로 그 비용도 상당한 부담으로 여겨질 수 있다.

물론 정의당의 여성장애인 후보와 같이 당에서 입후보 비용을 면제해 줄 수는 있다. 그러면 비용을 낸 후보자와 그렇지 않은 후보자가 영입의 대우가 서로 다르다는 점에서 역차별의 감정을 가질 수 있다.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의 참가비용을 대납해주는 결과가 생긴다.

공천후보 상당수가 당에서 많은 활동을 해 왔는데, 그 동안의 수고에 대한 인센티브는 없고 새롭게 영입된 인사에 대하여는 각종 홍보와 언론의 관심으로 인한 홍보 효과가 있으니 기존 당원의 후보자는 상당히 불리한 처우를 받았다고 여길 수 있고, 영입인사 입장에서는 그 동안 당내에서 활동을 한 인사가 선거인단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그 동안 선거운동을 한 셈이니 자신들이 더 불리하다고 말할 수 있다.

민주적 절차로 공천을 한 것이니 불만족한 점이 있어도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렵겠지만, 어쨌든 낙천자는 기존 당원이든 영입인사든 서운함은 어쩔 수가 없다. 영입인사로 인해 경쟁을 해야 하고, 다시 낙천이 되면 두 번 죽는 결과라고 여길 것이다. 영입인사 입장에서는 영입을 해 놓고는 그 인물됨이나 능력, 사회활동 경력을 인정하지 않고 경선을 하여 낙천되면 스파링 연습에 이용을 당한 것 같다는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

정당에서는 각종 이벤트를 하는 등 경선을 통해 선거의 분위기를 띄울 수 있으므로 선거의 바람을 순풍으로 돌릴 기회가 되니 경선을 반대만 할 일이 아니고, 공천심사 비용을 받아 정당의 살림에도 도움이 된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정당에서 비례대표 공천을 단순히 경선 리스트에 올려 서열을 정할 것인가? 그 동안 여성은 홀수 번호에 배정하여 비례대표 절반을 여성에게 배정하여 왔다. 그 원칙도 무시하고 아무런 조건 없이 경선만으로 서열을 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것과 마찬가지로 장애인 비례대표는 장애인끼리만 경쟁을 하도록 하여, 순번을 미리 내정해 놓고 순서만 정하는 경선을 한다고 하여도 공직선거법을 위반하는 것은 아니다.

정의당에서 7(여성인 경우), 8(남성인 경우)번과 17, 18번을 장애인에게 배정을 하는 원칙을 미리 정해놓고 장애인 후보끼리 경쟁을 하되, 경선에서는 장애인만 놓고 투표를 하지 않고 전체 투표를 하되 장애인 득표율로 장애인끼리 경쟁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다른 정당에서는 어떻게 경선을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는 아직 없다. 경선 규칙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민주적 절차의 형식은 갖추었으나, 사실상 절차만 거쳤을 뿐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먼저 경선을 하려면 후보 리스트를 작성하여야 하는데, 얼마나 언론에 노출을 시켜 주느냐, 당의 중견인사와 함께 하는 행사에 얼마나 자주 노출시켜 주느냐, 경선에서 투표 번호를 어떻게 배정받느냐 등등의 변수가 투표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각 정당에서 장애인 비례대표를 영입해 놓고 모든 비례대표 후보자들과 단순 경쟁을 시키는 것은 민주적 절차 같아 보이기는 하지만, 비례대표의 제도 취지를 무시하고 또 하나의 선거방식에 그치게 해서는 안 된다. 이미 구축된 줄세우기에서 파워게임이 민주화의 가면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장애인 비례대표는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담을 대표로서 당선 가능한 자리에 미리 순번을 정해 놓고 경선을 할 필요가 있다. 어떤 인물을 선택할 것인가는 선거인단의 선택에 맞기더라도 그 자리는 보장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지 않으면 소수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보장하는 듯 생색만 내고 불리한 선거를 하게 하여 당에서는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하면서 사실상은 무시해버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언론에서도 영입인사가 누구인지 과도하게 보도하는 것은 그 후보의 홍보를 도와주는 것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므로 공정성을 고려한 신중한 보도 태도가 필요하다. 영입과 공천 위원회에 정당에서 그 권한을 위임한 것이지, 특정 지도층이 특권으로 가지는 것이 아니므로 그 위임을 인정한다면 굳이 경선을 통하지 않아도 민주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법에서 경선을 하도록 규정을 하였으니, 경선을 통한 부작용과 잡음이 당에 많은 악영향을 불러올 여지가 생겼다. 그래도 절차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이익과 불리가 따를 수 있어 경선을 하였다고 완전히 민주적이라고도 할 수 없다.

민주적 절차를 거치면서도 당의 의지가 충분히 반영되고 모두가 승복할 수 있는 제도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영입인사가 자신의 입지는 보장받은 상태에서 지역구와 정당 지지를 높이기 위해 올인을 하면서 지원하는 자세가 아니라 선거 직전까지 자신의 입지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은 여러 가지 걱정거리를 만든다.

각 정당에서 21대 국회에 장애인 비례대표를 정하고는 있으나, 정말 장애인 당사자가 원하는 후보가 공천을 받을 수 있도록 어떻게 절차를 만들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선관위의 경선 결정이 장애인을 홀대하는 핑계로 작용하지 않기를 바라며,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하고 오히려 신뢰받는 정당이 되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경선의 방법이나 규모는 정해져 있지 않으니 비례대표 선거인단이 당원이나 국민의 참여가 어느 정도 되는 것인지, 정당 내 경선위원회의 소규모로 이루어질 것인지도 아직은 알 수 없으나, 진정한 당사자성을 가진 자가 국회에 입성하도록 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비례대표를 내걸고 국민들의 정당 지지도를 심판받는 것이 이미 민주적인 방법인데, 경선을 거치도록 한 것이 이중 절차가 될 것인지, 결과가 뻔한 허례허식이 될 것인지 실질적 민주사회의 실천수단이 될 것인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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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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