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트롱거 포스터. ⓒ 다음 영화

크고 깊은 눈. 그를 참 많이 좋아한다. 그가 출연한 다수의 영화를 봤지만 아마 나이트 크롤러(2014)와 사우스 포(2015)에서 보여준 그의 절망스러운 눈을 잊지 못해서다. 이 영화 역시 그렇다. 제이크 질렌할, 그는 눈으로 인간을 담아내는 배우다.

이 영화는 개인적으로 내가 겪었던 대부분의 상황과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참 복잡다단한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왜 그들은 강해져야만 하는가에 대한 수백만 가지의 감정이 들었다.

한 달 전에 헤어진 여자친구 에린(타티아나 매슬래니)을 우연히 동네 술집에서 마주친 제프(제이크 젤렌할)는 에린이 마라톤 자선 모금 중임을 알자 술집에서 모금을 돕는다. 그리고 마라톤 당일, 한 번도 제시간에 나와 그녀를 기다린 적이 없던 그가 그녀를 응원하기 위해 결승선 앞에 섰다. 그리고 폭탄이 터진다. 운명은 그렇게 제프의 두 다리를 날렸다.

에린은 자신 때문이라고 자책하고 모든 게 낯설게 된 제프는 그녀를 필요로 한다. 사실 사랑인지 연민인지 따위의 로맨스보다는 한 사람의 운명이 달라진 후의 변화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신파가 되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감독은 장애가 모든 것들을 낯설게 만들고 연인, 가족, 친구 등 각자 제프를 대하는 감정의 변화는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함부로 이해한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불안과 혼란, 트라우마로 여전히 숨 쉬는 것 자체가 고통인 제프를 살아 있다는 자체로 영웅으로 만들고 극복하길 바라고 그리고 자신들이 그를 보며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고 찬사를 보내는 이기적인 사람들을 앞에 제프는 왜 강해져야만 하는가, 왜 살아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삶의 질문이 명치를 끝을 오랫동안 저리게 만든다. 게다가 그의 슬프고 위태위태한 깊은 눈과 구부정한 어깨가 더해져 헤어 나올 수 없게 만든다.

영화는 제프를 통해 삶을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극명하게 양분된 삶의 방식을 직설적이며 자극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더 이상 아들이 살던 방식의 삶을 살 수 없음을 직감한 엄마는 아들을 언론에 노출시키며 지속적으로 감정팔이로 전락시킨다. 아들의 감정 따윈 관계없다. 떼 돈을 벌 수도 있다는 생계수단일 뿐이다. 오프라 윈프리가 뭐라고 야구 시구가 뭐라고.

반면 제프는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들의 감정팔이란 원색적 비난도 고스란히 견뎌야 한다. 자신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이 상황에 자신보다 더 혼란스러운 주변의 모습에 그는 어떻게 버텨내야 할까. 에린은 혼란스러워하는 그를 어떻게 해야 할까.

한편 영화는 똥 한번 싸려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지 않으려면 변기에 어떻게 올라앉아야 하고 똥구멍을 어떻게 닦아 내야 하는지, 두 다리가 잘려나가 더 이상 페달을 밟을 수 없지만 어떻게 운전을 잘 할 수 있는지, 엘리베이터도 경사로도 없고 빌어먹을 계단만 있는 집에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같은 두 다리가 붙어있을 땐 미처 깨닫지 못하고 너무 쉽게 누리기만 했던 것들이 더 이상 쉬운 것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 장애란 그런 것임을 슬쩍 이야기하기도 한다.

여전히 사고 트라우마를 겪어내고 있음에도 생계형 감정팔이 영웅으로 살아간다는 게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는 동의한다.

별반 스토리가 없는 사람보다 극적인 스토리가 있는 사람 더구나 불행한 사고로 그것도 나처럼 혼자 놀다 그런 게 아니라 사람들이 주목한 이슈에 그랬다면 더더구나 그런 희망의 메신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동의하지만 그래도 그런 감정팔이는 당사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이 될 수 있다.

아주 심한 관종이 아니고서야 그들은 달라진 모습을 구경하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숨 쉬는 것조차 아주 힘겹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싶다.

장애가 삶의 방식이 좀 달라졌을 뿐 인생이 혹은 사람 자체가 달라진 게 아니고 영웅만 살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더구나 모든 장애인이 다 극적인 영웅일 수는 없지 않은가.

제프가 장애를 극복했다고 다시 두 다리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의족을 끼고 다시 걸음마를 배우는 것처럼 달라진 삶의 방식을 배우는 것이다. 장애는 극복해야만 하는 게 아니다. 제프가 다시 삶의 목적을 찾았을 때 에린 앞에 앉아 그녀에게 손을 내미는 그의 표정은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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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을 하는 사회복지사가 필요 없는 세상을 꿈꾸는 사회복지사. 책 읽고 글도 쓴다. 그리고 종종 장애인권이나 인식개선을 위한 강연도 한다. 미디어에 비친 장애에 대한 생각과 함께 장애당사자로서 일상에서 겪는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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