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증인’ 포스터 ⓒ네이버

영화를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로만 구분한다면 영화 ‘증인’은 분명 ‘좋은 영화’ 일 것이다.

그러나 좋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측면에서 ‘좋은 영화’라는 뜻이지 잘 만들어진 ‘웰 메이드’ 영화라는 의미에서 좋은 영화라는 뜻은 아니다.

내가 너무 야박한가? 이 영화에 대해 쏟아지는 극찬들 때문에 너무 기대한 탓인지 사람들 극찬대로 별 다섯 개를 빵빵하게 안겨 줄 만큼 내겐 그렇게 넉넉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모두 칭찬 일색이니 나 하나쯤은 조금은 삐딱해도 되지 않을까. 그래서 이 지면에서는 굳이 칭찬을 보태지 않고 아쉬운 점만 언급해 보기로 한다.

우선 스토리 측면에서 영화는 기대만큼 내 가슴을 쿵 때리지 못했다.

예측대로 흘러가지 않고 허를 찌르는 반전의 묘미가 있어야 흥미로울 텐데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 예상을 한 치도 빗나가지 못하고 모든 이야기가 흘러가 버렸다. 그래서 김빠진 콜라처럼 맛이 없어져 버렸고...

설령 이야기가 예측대로 뻔하게 흘러가더라도 예측 너머의 감성을 미처 상상할 수 없던 방법으로 찔러 주어야 감동일 텐데 그렇지도 못했다.

일단 관객으로서 가지는 감정적 기대는 그렇게 무너졌다.

그럼, 이제부터 감성이 아닌 이성적인 측면으로 바라보자면...

지우(김향기)는 왜 결국, 특수학교로 전학을 갔을까?

나는 이 점이 가장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았다.

지우가 가진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결국 ‘통합’으로가 아니라 특수학교로 가는 ‘분리’로의 선택이라니... 줄곧 다른 세상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말해 오다가 영화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엇나가는 느낌이었다.

일반 학교에서 반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친구라고 믿었던 아이에게마저

폭력을 당하는 지우의 모습이 오늘 우리 사회 현실일 수 있겠다.

그러나 그런 현실을 보여주고 난 다음에 이 영화가 보여준 해결 방법은...?

‘그러니까 너랑 다른 아이들 속에서 정상인 척 애쓰지 말고

너랑 비슷한 아이들 속에서 너답게 사는 게 좋은 거야!’...

말하자면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지우의 등하교를 돕는 친구 신혜는 늘 ‘자폐애들은...’ 이라며 쉽게 지우를 단정 짓고 무시하곤 했다. 겉으론 지우를 돕는 착한 친구인 척했지만 결국 뒤에서는 몰래 지우에게 폭력까지 행사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신혜의 그런 폭력적 태도는 어쩌면 지우와 함께 다닌다는 이유로 가해지는 다른 아이들의 조롱과 폭력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우에게 그렇게 폭력을 가하긴 했지만 비 오는 날 지우에게 우산을 던져주고 도망치듯 가버리는 신혜의 모습에서 죄책감과 망설임이 느껴진다.

그 죄책감과 망설임은 충분히 지우와 신혜 사이가 좋은 우정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읽히기도 하는데 영화는 그 둘의 관계를 풀지 않았다.

사건이 해결된 후 지우는 그냥 특수학교로의 전학을 선택해 버리고 자기 같은 아이들 속에서 정상인 척하지 않아도 되니 좋다고 말하며 그런 선택을 합리화하기까지 한다.

어쩌면 신혜가 지우와 다른 아이들을 이어주는 소중한 징검다리가 되어 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영화 ‘증인’ 의 순후와 지우 ⓒ네이버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지우가 변호사 양순호(정우성)에게 묻는 이 질문이 이 영화의 주제다.

그러나 나는 세상을 바꾸는 것은 결국 ‘좋은(good)’ 사람이 아니라 ‘옳은(right)’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속에서 지우가 사람들의 좋아 보이는 표정만으로는 그 사람의 진짜 내면을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좋다’는 것은 다분히 상대적인 것이어서 단순히 좋은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순후마저도 결국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으로는 '좋은 사람'을 정확하게 구분해내지 못하지 않았던가.

물론 이 질문은 영화 속에서 불의한 현실과 타협하려는 순호를 자각시키는 중요한 화두가 되었고 그는 결국 법조인으로서 옳은 선택을 했다.

“자폐인들은 저마다의 세계가 있어요.

나가기 힘든 사람과 소통하고 싶으면 당신이 거기로 들어가면 되잖아요”

영화 속 이 대사처럼 나와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발달장애인의 세계 속으로 먼저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자체는 참 좋은 메시지이고 좋은 생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지우가 겪고 있는 우리 사회의 나쁜 환경들은 단순히 좋은 사람만으로는 바꿀 수가 없다. 단지 ‘좋은 사람’이 되는 것만으로 세상을 바꾸기에는 무력할 뿐이다.

그런데 영화는 순후 한 사람만 좋은 사람 만들고 지우는 나쁜 세상을 피해 자기와 닮은 아이들이 있는 특수학교로 가는 선택을 했다.

어쩌면 지우가 스트레스를 덜 받고 편안할 수 있는 좋은 선택일 수 있지만 결코 옳은 선택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상에는 불편하고 아프지만 옳은 선택을 해야 할 때도 있고 옳은(right) 일을 하며 계속 좋을(good) 수만은 없는 일들도 많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인이 등장하는 영화들 ⓒ네이버

특히, 발달장애인을 등장시키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영화는 꼭 그렇게 한 사람의 ‘좋은 사람’을 내세우고 그 사람의 힘으로 영화를 이끌고 가는 경향이 있다.

오래전 영화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영화 ‘말아톤’에서는 한 사람의 헌신적이고 좋은 엄마가 있었고 최근 영화 ‘채비’에서도 역시 좋은 엄마가 빠지지 않았으며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는 또한 좋은 형이 있지 않았던가.

그렇게 저마다 발달장애인 주인공들이 살아갈 세상의 책임을 오롯이 좋은 사람 혼자 떠안으며 ‘좋은 세상’의 문을 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좋은 사람이 영화 ‘증인’에서는 순후(정우성)인 셈인데 이제는 좋은 한 사람만이 애쓰는 노력 말고 ‘좋은 세상’에 대한 좀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해주면 안 될까.

결코 좋은 한 사람의 영향력을 무시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한 사람에게만 지우는 노력과 책임의 무게를 이제는 여럿이 나누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사람들로부터 자폐에 대해 잘 다루었다는 극찬을 듣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역시 지우를 평범한 장애인이 아니라 슈퍼 장애인으로 그렸다는 점이다.

‘말아톤’의 초원이는 달리기를 겁나 잘 해요,

‘그것만이 내 세상’의 진태(박정민)는 피아노를 겁나 잘 쳐요.

영화 ‘증인’의 지우는 기억력이 겁나 좋아요...

사람들에겐 어쩌면 이런 것들이 더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서 무의식적인 편견이 되지 않을까.

모름지기 자폐라 함은 천재적인 능력 하나쯤 있어 줘야 자폐 아니에요?

그동안의 영화나 드라마들은 보통 사람들에게 이런 인식을 심기에 충분했다.

영화 속 지우를 보고 나서 앞으로 발달장애인을 만나는 사람들이 물방울 넥타이, 물방울 손수건을 내밀며 물방울 수가 몇 개인지 한번 맞춰 보라고 하면 어쩌나 걱정이 다 들 정도다.

다분히 천재적인 면모를 가진 슈퍼 장애인을 보여줌으로써 현실의 평범한 장애인들이 오히려 더 무가치한 존재로 폄하되는 것. 이것이 바로 슈퍼 장애인이

만드는 폐해일 텐데 이 영화 역시 그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쉽다.

이 세상은 그런 슈퍼 장애인이 아니라 평범한 장애인들이 고군분투하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내고’ 있다.

그러나 애써 특별히 고군분투하지 않아도, 가까스로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상을 그저 평범하게 ‘누릴 수 있는’ 세상이 정말 좋은 세상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좋은 세상은 ‘옳은’ 사람들이 옳은 생각을 하고 옳은 선택을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옳은 사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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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미경 칼럼리스트 ㅅ.ㅅ.ㄱ. 한 광고는 이것을 쓱~ 이라 읽었다. 재밌는 말이다. 소유욕과 구매욕의 강렬함이 이 단어 하나로 선명하게 읽힌다. 나는 내 ‘들여다보기’ 욕구를 담는데 이 단어를 활용하겠다. 고개를 쓰윽 내밀고 뭔가 호기심어리게 들여다보긴 하지만, 깊이 파고들진 않는 아주 사소하고 가벼운 동작, 쓱... TV, 영화, 연극, 책 등 다양한 매체가 나의 ‘쓱’ 대상이 될 것이다. 그동안 쭈욱 방송원고를 써오며 가져 왔던 그 호기심과 경험들을 가지고... (ㅅ.ㅅ.ㄱ. 낱말 퍼즐은 읽는 분들의 몫으로 남겨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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