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행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점장님, 죄송합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제가 깜박하고 얼마 되지도 않는 것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다음 달에 꼭 보내겠습니다. 용서하세요.”

길을 가는데 할머니께서 손을 잡으며 말씀하시는데 갑자기 당한 일이라서 당황했다.

‘이 할머니가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가?’

누구신지 얼른 알아보지 못하고 잠시 어리둥절했던 자신을 힐책하며,

‘아하∼ 그 분이시구나, 박정자 할머니시구나.’

할머니는 2011년 10월 31일 행복나눔무지개푸드마켓 7호점이 판암동에 개점을 한 첫 달부터 이용한 손님이셨다.

푸드마켓이란? 식품을 기부받아서 지원이 필요한 수요자가 직접 방문하여 원하는 식품을 무상으로 제공받는 슈퍼마켓 형태의 복지시설인데 대상자들은 정부의 혜택이 주어지지 못하고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긴급지원대상자, 국민기초수급탈락자, 차상위계층, 다문화 가정, 독거노인, 장애인들이다.

이들에게 한 달에 1회씩 무상으로 물품을 제공하는 곳.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사랑의 나눔 공간이다.

한 사람이 푸드마켓을 이용할 수 있는 기간은 짧게는 6개월에서 최대 1년까지인데 할머니는 1년을 받으신 분이셨다.

처음으로 물건을 가져가시기 위해서 마켓에 방문하시고는 이런 제도가 있어서 어려운 이웃들에게 도움을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하다시면서 민망할 정도로 고개를 숙이시며 인사를 하시면서 당신도 돕고 싶다고 하시면서 후원금 카드를 써놓고 가셨는데 다음 달부터 매달 21일이면 후원금이 꼬박꼬박 들어오고 있었다.

형편에 따라서 할 수도 있고 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 기부이지 부담스러우시면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필자의 손을 잡고 그토록 미안해하시는 할머니의 표정을 필설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세상에 이런 분도 계시구나!’

푸드마켓을 이용하는 이용자 중에는 더 주지 않는다고, 혹은 대상에 넣어주지 않는다고 동사무소에 가서 난리치는 사람도 있다.

또 출근시간 30분 전에 와서 문 열지 않는다고 구청에 민원 넣는 사람도 있는데 할머니의 말씀은 ‘우리 같은 늙은 사람들에게 국가에서 살게 해 주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조금이나마 나눠야 합니다.’하시는 분이시니 얼마나 고마운 마음인가.

콩 한쪽도 나눠야 한다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모습이 바로 할머니의 모습이다.

할머니 댁에는 냉장고와 세탁기도 없다. 한쪽 다리가 많이 불편한 장애의 몸이면서도 음식은 끼니마다 해 먹으면 되고, 빨래는 손으로 하면 되는데 전기 낭비를 왜 하느냐며 아직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움직여 보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아껴 쓰시면서 푸드마켓 외에도 세 곳을 더 도와주고 계셨다.

누군가를 도와주기 위해서는 나 쓰고 싶은 거 다 쓰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란 것을 할머니의 마음을 보면서 다시금 깨닫게 했었다.

저만큼 멀어져가는 백발의 생머리를 곱게 빗어 묶은 할머니의 뒤 모습은 햇살만큼이나 화사하고 따뜻해 보였다.

어떤 모임에서였다. 옆에 앉은 여인들이 주고받는 대부분의 대화가 몇 평짜리 아파트를 구입했느니, 재개발지역 땅을 몇천 평을 구입했다느니, 올겨울에 얼마짜리 모피코트를 샀느니 하면서 줄곧 가진 것에 대한 자랑들이었다.

그네들이 자랑하는 몇 천분의 일, 몇 억분의 일만 이웃에게 나눠준다면 세상이 지금보다 더 따뜻할 텐데…….

그 자리가 참으로 씁쓸했었다.

며칠 후면 우리의 명절, 까치까치 설날이다. 설날하면 새 옷, 새 신발을 받고 싶은 마음에 손꼽아 기다렸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가난했지만 그때는 양말 한 켤레를 머리맡에 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았던가?

설날이면 가난한 사람도 부자인 사람도, 몸이 건강한 사람도 건강하지 못한 사람도 행복해야 한다. 아니 우리에게는 행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어떡하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을까?

그것은, 나누면 된다고 생각한다.

많고 적고의 차이점은 있을 수 있겠지만 부유한 사람도, 가난한 사람도, 건강한 사람도 장애인도 할 수 있는 것이 나눔이다.

복지는 머리만 가지고 하는 게 아니다. 사회복지를 전공한 사람만 하는 것도 아니다. 따뜻한 가슴으로 하는 것이다.

새해에는 따뜻한 가슴이 유행병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전염되어 다 같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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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서 칼럼리스트
장애인당사자의 권익옹호와 정책발전을 위한 정책개발 수립과 실행, 선택에 있어서 장애인참여를 보장하며 지역사회 장애인정책 현안에 대한 제언 및 학술활동 전개를 위하여 다양한 전문가와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대전지역 장애인복지 증진과 인권보장에 기여하는데 목적을 둔 대전장애인인권포럼 대표로서 장애인들의 삶의 가치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는 따뜻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전해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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