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같은 점심시간의 달콤한 커피 타임. ⓒ장지혜

15분 간격, 두 번의 알람에 인상을 찌푸리며 마지못해 눈을 번쩍. 비몽사몽간에 오늘 날짜를 확인하곤 출근 생각에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킨다.

그리곤 수동휠체어에 몸을 싣고 욕실로 들어가 양치와 세수를 허겁지겁 끝내고선, 방으로 돌아와 옷을 주섬주섬 주워 걸친다.

화장품을 습관처럼 손에 잡히는 대로 얼굴에 문지르고 머리를 대충 정돈할 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짐을 챙겨 전동휠체어에 올라 집을 나선다.

양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좋아하는 노래를 재생시키고선, 금세 기분이 좋아져선 따라 흥얼거린다. 덕분에 차가운 겨울바람에도 끄떡없이 직장에 도착. 마주치는 직원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며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곧 자리에 도착해 전동휠체어를 자리에 대고, 컴퓨터를 켜고 간단히 짐을 정리한 후 탕비실에 들어가 물을 끓인다. 뜨거운 커피 한잔을 타서 옆자리 선생님과 지난밤 안부를 나눈다.

잠시 후 업무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쌓여있는 요청사항들을 확인한다. 통계 자료를 정리하며 틈틈이 걸려오는 전화도 받고, 찾아온 이용자들을 응대한다. 그렇게 정신없이 일을 하나씩 처리하다 보면 금세 점심시간이다. 황금 같은 한 시간을 아껴 바삐 끼니를 챙겨 먹고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산책의 즐거움도 맛본다.

오후의 시간은 느린 속도로 바쁘게 흐른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들리는 이용자들이 많아 사람이 몰리기도 하고, 별별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터지기라도 하면 해결하느라 분주해진다.

그러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며 창밖에 아름다운 노을이 펼쳐지면, 곧 퇴근이라는 생각에 부풀어 오르는 마음. 잠시 후 시계가 여섯시를 땡! 하고 가리키면 부리나케 가방을 챙겨 퇴근길에 나선다.

오늘 저녁엔 뭘 먹을까, 뭘 하고 놀까, 즐거운 상상을 하며 집에 도착하면 하루를 무사히 보낸 후에 오는 안도감과 피로감을 느끼며 온기 가득한 침대에 풀썩, 쓰러진다. 뭔가를 하겠단 계획은 대부분 피로에 묻혀서는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곤 한다.

이런 하루가 다섯 번 지나가면 기다리던 주말이 눈 앞에 펼쳐진다. 평일의 피로는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얼굴에 생기가 흘러넘친다. 평일에 피곤에 쩔어 늦잠을 간절하게 바라며 살다가도, 주말엔 새벽같이 일어나 집을 나선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쇼핑을 하고, 공연을 보고, 때론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렇게 반짝이는 이틀은 눈 깜빡할 사이에 사라져버리고 정신을 차려보면 벌써 일요일 저녁이다. 다음날의 출근을 떠올리며 더 놀지 못한 억울함과 괴로움에 발버둥 치다 느지막이 겨우겨우 잠이 든다.

이 이야기는 4년 동안 지내온 내 보통의 하루 일과다. 처음엔 약하디 약한 몸으로 어떻게 서울에서 자취를 해 나갈지 막막하기만 했었는데, 이젠 매너리즘(mannerism)에 빠질만큼 모든 게 익숙해졌다. 5년 차가 되니 감사보단 피로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언젠가, 어떤 취준생이 직원증을 목에 걸고 한 손에 커피를 든 직장인들이 점심에 바깥을 돌아다니는 걸 보고 마치 직장에 다니는 걸 자랑하는 것 같이 보여 속이 상했단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나도 한때 그런 적이 있다.

대학 졸업 후 취준생이었을 때, 똑같이 졸업했는데 나 빼고 전부 취업된 비장애인 동기들이 직장생활 힘들다고 툴툴거리는 걸 봤을 때 그랬고, 첫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고통의 시간을 보냈을 때에도 제대로 취업한 장애인 친구들의 소식이 자랑처럼 들렸다.

물론 지금은 그게 아니라 내가 꼬였을 뿐이라는 걸 알지만 취업에서 밀린 상처로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땐 그랬다. 그렇게 삐뚤어진 마음을 애써 토닥이며 발버둥 치던 어느 날, 취업에 성공하고선 세상 모든 감사할 구실을 찾으며 기뻐해 놓고. 이제 와선 매너리즘(mannerism)이라니, 사람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어쨌든 그러던 어느 날, 에이블뉴스 칼럼니스트 모집공고를 보았고, 나의 무료한 일상에 변화를 줄 어떤 기회가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한낱 기대를 품게 되었다. 청년이자 여성이자 장애인인 내가 가진 경험을 공유한다면 누군가에겐 킬링타임용 에세이로, 누군가에겐 새로운 아이디어로, 누군가에겐 변화의 계기로 읽힐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 기록하고 정리할 기회가 되어주지 않을까 하고. 그래서 나의 닉네임인 "제제"와 기록한다는 의미의 "로그"(log)를 합쳐 <제제로그>라는 코너명을 만들어냈다.

용기를 내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보려 한다. 지방에서 나고 자란 나의 서울살이 이야기는 물론이고, 취준생과 직장인으로서의 경험, 대학시절의 이야기도 포함하여 말이다.

특히 30대 미혼 여성으로서 겪는 고유 경험도 나누어보고 싶다. 즐겁고 기분 좋은 얘기도 있겠지만 분명 쓰고 아프고 어두울 때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이야기를 하든 진솔하게 써나가려 한다.

누구든, 함께 직·간접적으로 소통해주길 바란다. 그리하여 글을 읽는 모두에게 의미 있는 2019년이 되었으면 한다.

그럼 제제로그. 이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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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혜 칼럼리스트
서울시립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다. 문화 전반에 관심이 많아 월급의 대부분을 문화생활에 쏟고 있으며, 주말에 집에 있으면 몸이 쑤시는 몹쓸 병 때문에 어디론가 자꾸만 나들이를 떠나곤 한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든 순간을 사랑한다. 칼럼 지면을 통해 여성, 청년, 장애인으로서 겪은 고유의 경험과 생각들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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