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에 올라탄 아들. ⓒ정민권

오래전 한 패스트푸드 업체의 TV 광고.

​횡단보도를 마주하고 아버지와 딸이 마주친다.

아빠는 반갑게 손을 흔들고 아이스크림을 먹자는 사인을 보낸다.

딸 옆에 있던 트럭이 사라지자 환호성을 지르는 딸의 친구들이 떼로 나온다.

대략 난감인 아빠의 표정.

재밌게 봤던 광고의 한 장면이 현실에서 그것도 내게 일어나 버렸다.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 횡단보도를 마주하고 친구들과 수다 삼매경인 딸을 발견했다.

어찌할까 잠시 고민하며 주춤거리다 오던 길로 잽싸게 내뺐다.

그때 등 뒤로 “아빠! 어디 가!”라는 딸의 외침이 들렸다.

아뿔싸 싶었지만 못 들은 척 달아나던 길을 더 빠르게 도망쳤다.

딸은 더 크게 소릴 지른다.

“아빠! 어디가냐고~”

딸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가자미눈을 하고 나를 째려본다.

“아빠 나 못 봤어? 봤지? 내가 그렇게 불렀는데.. 못 들었어?”

큰소리로 아빠를 다그치는 딸을 보며 아내는 영문을 몰라 눈만 깜빡거린다.

나는 모르는 척 그저 책 속에 얼굴을 더 깊숙이 파묻는다.

나무라는 엄마에게 딸은 야속하다는 듯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아씨 아빠가 횡단보도에서 나보고도 못 본 척 도망가잖아. 애들이랑 떡볶이 사달라고 그렇게 불렀는데..”

장애인 아빠로 사는 건 참 어렵다.

나는 딴에 지 생각해서 모른 척해준 건데 이리 아빠 마음도 몰라 주다니.

녀석이 막 태어났을 때, 포대기에 쌓인 아이를 내미는 간호사를 피해 뒷걸음치며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너무 신기하고 벅차서 그러기도 했지만 행여 불편한 팔로 안아보다가 떨어트리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었다.

신생아 때는 불편한 내가 혹여 다치게 할까 안절부절했고 좀 크니 아이들 틈에서 행여 놀림을 당하지 않을까 싶어 앞에 나서지 않았다.

부모 참관 수업이나 아빠 교실, 운동회며 발표회며 자꾸 아빠를 오라고 불러 댔지만 나서지 못했다.

아이가 커가는 모습과 함께하고 싶지 않은 부모가 있을까. 하지만 아빠가 친구들의 아빠들과 다르다는 것을 굳이 확인시켜 주고 싶지 않았다.

도망간 아빠 때문에 짜증이 난 딸에게 슬며시 물었다.​

“넌 아빠가 안 창피해? 친구들이랑 있던데 애들이 뭐라 안 해?”

딸은 댓거리를 찾는지 빤히 쳐다보며 잠시 뜸을 들이다 이렇게 말한다.

“아빠 휠체어 타는 거? 그게 뭐? 별로 생각 안 해 봤는데? 애들도 그럴걸?”

어쩌면 내가 과민 반응한 걸지도 모르겠다.

요즘 아이들은 내가 자란 시절보다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는데 말이다.

아이들은 아이들의 세계가 있고 그 세계는 다양한 경험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 그건 장애인을 비롯한 소수자의 삶도 포함한다.​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아들 녀석은 내가 휠체어만 타고 나가면 걷기 싫다며 휠체어 뒤에 매달린다.

심지어 “아빠는 휠체어를 타고 가니 좋겠다.”라고 하기까지 한다. 친구라도 만나면 멋진 바이크를 탄 것처럼 손을 흔들고 아주 난리다.

녀석이 싸가지가 없는 게 아니라 그저 아빠의 다름이 상관없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아빠는 자신들이 세상에 나올 때부터 장애인이었고 그런 아빠와 여러 불편함을 겪으며 자랐다.

함께 운동이나 여행 같은 몸으로 하는 것들은 아빠와 거의 해 본 경험이 없지만 활동적인 것들이 하고 싶으면 넉살 좋게 친구 아빠와 한다.

그렇게 장애인 아빠와 사는 불편함은 개의치 않고 스스로 해결하는 법을 배웠다. ​​

과연 ‘장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장애는 어려움이나 불편함’이 아닐까. 장애가 있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이 겪는 처한 상황이나 환경의 문제다.

휠체어를 탄다고 문제가 아니라 휠체어가 가지 못하는 길이나 계단 같은 사회적 환경의 문제다. 장애가 ‘특별’해지는 순간은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질 때 생기는 것은 아닐까?

매일 부딪치고 경험하다 보면 장애는 특별한 게 아니고 그저 다른 방법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자주 만나고 이야기하고 같은 공간에서 무엇이든 함께 하는 경험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장애는 대수롭지 않은 불편함 정도로 여겨진다.

누구에게나 각자만의 불편함이 있는 것처럼. 그런 의미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거리는 함께하며 만들어지는 경험만큼 좁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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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을 하는 사회복지사가 필요 없는 세상을 꿈꾸는 사회복지사. 책 읽고 글도 쓴다. 그리고 종종 장애인권이나 인식개선을 위한 강연도 한다. 미디어에 비친 장애에 대한 생각과 함께 장애당사자로서 일상에서 겪는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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