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나에게 장애로 인해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한다면 무엇인가를 바꾸거나 결정하는 과정에서 내 입장이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물리적 공간을 새롭게 만들거나 바꿀 때 소수에 불과한 나와 같은 시각장애인들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기에 이동에서부터 화장실 하나 찾는 것까지도 큰 어려움이 되어 버린다.

비단 물리적 공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전문가들과 유능한 인력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만들어내거나 개편하는 제도들도 소수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지 않기 때문에 이 제도들로 인해 또 다른 불편함과 차별, 그리고 소외가 우리 삶을 어렵게 만들곤 한다.

그래서 정책이나 제도를 결정하고 집행하는 과정에도 우리 장애 당사자들이 진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런데, 시각장애인의 공직 진출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를 갖게 하는 기사를 보았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지난 11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공무원임용시험령 개정안이 국가직 7급 공채시험에서 공직적격성평가(PSAT)를 도입하고 한국사과목을 검정시험으로 대체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이 개정안은 2021년부터 국가직 7급 공무원 채용이 기존 필기시험과 면접시험 두 단계로 치러지던 것에서 PSAT, 전문과목 평가, 면접시험 등 3단계로 바뀌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는데 전문과목평가의 경우는 기존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인사혁신처에서는 PSAT의 도입으로 종합적 사고력을 평가할 수 있어 직무역량 검증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PSAT가 민간기업이나 공공분야에서 채용시 활용하는 적성평가와 유사하기 때문에 공무원시험 준비생들의 진로전환도 용이해 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도 민간분야와 공공분야 모두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어 공무원수험생들의 부담을 줄임과 동시에 공무원시험과 다른 분야간의 호환성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2019년 하반기 국가직 7급 PSAT 문제 유형이 공개되고 2020년 2회의 모의평가를 거친 뒤 2021년 새로운 시험제도가 시행될 것이라고 한다.

이 '공무원 임용시험령 개정안'도 단편적으로는 유능한 인력들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 끝에 바람직하고 합리적인 제도개선을 이룬 것처럼 보인다.

공무원 시험에 대한 관심이 날로 커지고 있고 선호하는 직업 1위로 공무원이 선정되는 조사들도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공직진출을 준비하는 이들이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 좀 더 쉽게 다른 분야로의 전환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좋은 제도개선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많은 제도개선들이 그러하듯 이 개정안도 다양한 이들의 상황이나 입장을 고려하는데에는 소홀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개정안의 시행으로 인해 시각장애인들의 국가직 7급 진출은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오래전 칼럼을 통해 행정고시 1차시험이 PSAT로 이루어지고 있고 이 PSAT에 자료해석과 같이 무수히 많은 도표나 그래프 등을 포함하는 과목이 포함되어 있어 중증시각장애인이 행정고시에 합격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한 바 있다.

이 개정안대로라면 이제 중증시각장애인들은 5급뿐만 아니라 국가직 7급으로의 진출도 매우 어려워지게 된다. 기존의 국가직 7급 공채시험도 중증시각장애인에게 그리 쉬운 시험은 아니었다.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중증시각장애인들 중 다수가 영어 과목이 가장 어렵고 부담스러운 과목이라 이야기 한다.

외국어보조음성엔진을 이용한다 해도 화면낭독프로그램으로 영어지문을 듣고 문제를 푸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영어과목이 외국어능력시험으로 대체되며 시각장애 수험생들은 또 수험편의 제공과 관련해 외국어시험 시행기관들과 크고 작은 실랑이들을 벌이기도 했다.

이렇게 기존의 시험도 중증시각장애인에게 많은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한국사 능력검정과 PSAT까지 도입된다니 과연 중증시각장애인 중 합격자가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우려까지 든다.

이미 국무회의를 통과한 개정안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2년이라는 준비기간이 남아 있기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체문제 출제나 수험편의 제공 등과 같은 사항만이라도 철저히 준비할 수는 있을 것이라 본다.

아울러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등의 수행기관과 협의를 통해 시각장애 수험생의 정당한 편의제공에 소홀함이 없도록 준비해야 할 것이다.

제도나 정책과 관련해 다양한 이들의 의견이 고루 반영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더 다양한 사람들의 공직진출이 가능해야 한다.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전환을 위해 마련하는 제도개선들이 오히려 소수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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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래 칼럼리스트 나 조봉래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보조공학부를 총괄하며 AT기술을 이용한 시각장애인의 정보습득 향상을 위해 노력해 왔고, 최근에는 실로암장애인근로사업장 원장으로 재직하며 시각장애인의 일자리창출을 위해 동분서주해 왔다. 장애와 관련된 세상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소홀히 지나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예리한 지적을 아끼지 않는 숨은 논객들 중 한 사람이다. 칼럼을 통해서는 장애계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나 놓치고 있는 이슈들을 중심으로 ‘이의있습니다’라는 코너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 갈 계획이다. 특히, 교육이나 노동과 관련된 주제들에 대해 대중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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