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군들 자살을 꿈꾸지 않았으랴

삶은 외롭고 고달픈 것이니

그대는 지금 그 서러운 길 위에서

절망하고 있다.

절망이란 무엇인가?

문자 그대로 희망이 없는 것이니

그대여

우리의 인생사 서러워라

차가운 세상사

무한히 서러워라

- 이외수 <자살을 꿈꾸는 그대에게> 중에서 -

지난 15일,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을 키우는 한 어머니의 투신자살 비보는 뿌연 미세먼지가 내려앉은 늦가을 하늘만큼이나 내 마음 전체를 침침하게 했습니다.

고백하건대 나도 한때는 규재를 키우며 머릿속에 자살을 품고, 떠날 채비를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채비 보따리는 풀지 않고 구석 방 어딘가에 던져져 있지요.

아마 장애가 있는 자식을 키우는 엄마들에겐 자살이라는 단어는 그리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장애가 있는 자식을 먹이며 씻기며 가르치며... 각박한 세상 사람들의 힐끗거림도 그저 순간, 우리 엄마들에겐 둘도 없는 소중한 금지옥엽 자식들입니다. 누군가 내 자식을 흰 눈으로 볼라치면 당장 쫓아가서 멱살을 잡고 상욕을 뱉어 줄테다... 건들기만 해 봐,,, 눈에 힘을 주고 쌈닭의 자세가 되어 있지만, 가슴 속 눈물보는 늘 언제 터져 나올지 모르는 만수 상태이기도 합니다.

멱살과 상욕의 의지는 어디가고, 눈물을 펑펑 쏟으며 금지옥엽이 놀랄까 상처받을까 크게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는 것이 우리 엄마들일 것입니다.

매일을 동동거리며 살다가 내 몸과 마음이 쪄들고 쪄들어 더 이상 어찌할 수도 없이 체력이 바닥이 난 상태가 되면, 내 발에 신은 양말도 납덩어리처럼 무거워 걸음이 걸어지지 않습니다.

그대여,

나는 지금 자살을 꿈꾸는 그대 곁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우리의 인생은 서러운데

별은 저리도 눈부셔 눈물만 나는구나.

이 뜨거운 삶의 담벼락에 기대앉아

서로의 이를 솎아 주듯

나는 그대와 얘기하고 싶다.

그대여

희망은 과연 없는 것일까?

과연 세상은 눈곱만큼도 살 가치가 없는 것일까?

나는 지금

그대 눈물이 마른자리 눈곱을 떼어 주며

눈곱만큼 작은

세상의 희망을 말하고자 한다.

- 이외수 <자살을 꿈꾸는 그대에게> 중에서 -

이규재 작품 <슬플 땐 하늘을 보세요> ⓒ이규재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구요?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행복권이 위협받고 무시당하고 있는 이 현실은 누구의 책임입니까?

하긴 우리나라 국민이 언제는 국민행복권이라는 고차원적인 권리를 가져보기나 했을까요? 게다가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가정의 위기는 위태위태하기만 합니다.

발달장애가 있는 자식을 키우기가 버겁고 힘들어, 부모가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이 불행하고 편협한 나라, 대한민국!

장애가 있는 자식을 두고 목숨을 버릴 때는... 오죽하면 여북할까, 그 마음 와 닿아 어둠지옥이 따로 없는 현실입니다.

정권이 바뀌고 시대에 따라 복지의 패러다임은 달콤한 사탕발림으로 여러 번 둔갑해 왔습니다. 도대체 복지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하는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은 복지에 대한 소신과 철학과 원칙을 갖고나 있는 것일까요?

모두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며 살 수 있도록 필요한 곳에 도움을 주는 것이 당신들이 해야 할 일인 것을 알고는 있습니까?

구청마다 번쩍거리는 대리석과 수입 강화유리로 신축 꽃단장할 예산은 있어도 발달장애인들의 낮 활동을 위한 센터나 기관을 준비할 예산은 없는 것인가요?

국회의원들의 활동과 품위를 위해 필요하다는 세비라는 것! 수당, 입법활동비, 특별활동비, 여비라고 참 여러 가지 명목으로 받으시던데, 장애가 있는 국민과 그 가족들의 생존권과 행복권을 고민하며 민생을 경영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발달장애가 있는 자식이 낮에 갈 곳이 없어서 양육에 지친 엄마가 목숨을 던지는 이 불행을 개인의 내적 고립감으로 인한 것이라고 값싸게 팔지 마십시오.

명분에 치우쳐 실상을 보지 못하는 당신들의 편협된 정치관을 지탄합니다.

가끔씩 들려오는 발달장애인의 가족과 가정 붕괴의 책임과 원인은! ‘복지 정책의 부실’로 인한 우리 사회의 ‘정책결정자와 정치인’들이 해결책에 ‘나태함과 무책임함’을 보여주는 ‘무감각의 산물’이라고 강하게 주장합니다.

우리는 기쁨이 아니라는 이유로, 즐거움이 아니라는 이유로

분노와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인생을 서러워한다.

그러나 그대여, 이젠 알지어다

생로병사 희노애락

이 모두가

그대가 반드시 겪게 될 인생이니

여지껏 그대의 인생 속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없었다 하더라도

길고 긴 그대의 미래 속에는

그것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 이외수 <자살을 꿈꾸는 그대에게> 중에서 -

자살을 꿈꾸는 ‘나’에게 말합니다.

가장 강렬한 삶에의 갈망으로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선택보다

하늘이 준 내 생명을 다 끝내고 갈 때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네가 있어 사는 게 심심치 않았다’라고

우리 아이 손을 꼭 잡고 웃으며 얘기해 주겠다고...

{공고}2019년 에이블뉴스 칼럼니스트 공개 모집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김은정 칼럼니스트 발달장애화가 이규재의 어머니이고, 교육학자로 국제교육학회에서 활동 중이다. 본능적인 감각의 자유로움으로부터 표현되는 발달장애예술인의 미술이나 음악이 우리 모두를 위한 사회적 가치로 빛나고 있음을 여러 매체에 글로 소개하여,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며 장애인의 예술세계를 알리고 있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