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tine’이라는 단어가 있다. 사전을 찾아보면 정례적인, 일상적인, 보통의, 판에 박힌, 지루한과 같은 의미의 단어라고 한다. 일상생활에서도 종종 ‘루틴하다’라는 식의 표현으로 사용하곤 한다.

국정감사기간에 직업재활시설에 대한 지적들을 살펴보면 바로 이 단어가 떠오른다. 올해도 어김없이 직업재활시설 근로장애인들의 임금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근로장애인의 임금이 너무 낮고 최저임금적용제외 대상자가 많다는 것이다.

매년 반복되는 지적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올해에는 월평균급여 대신 시급을 언급하며 지적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참신하다면 참신하다고 할 수 있을까? 실상 내용은 너무 적은 급여를 지급하고 있고 최저임금적용제외 대상도 줄여야 한다는 식의 문제가 이야기 되었다.

정말 심각한 것은 현장에서 바라보기에 앞으로도 이러한 지적이 반복된다 하더라도 상황이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 없이 많이 지적했지만,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면 다양한 측면에서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직업재활시설 근로장애인의 임금에 대해서도 반복적인 문제지적만 거듭할 것이 아니라 왜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법정 최저시급이 7,530원인데 장애인보호작업시설의 근로장애인 평균시급이 2,835원이라는 보도는 분명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 이유를 하나씩 생각해 보면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이지만 이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요인 몇 가지를 두 번에 걸쳐 이야기해 볼까 한다.

우선 오늘은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시설 현황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해 보겠다. 물론 자립과 관련해서 직업을 가지고 자신의 노력을 통해 얻어진 소득을 기반으로 생계를 유지해 가는 것이 여러 가지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하지만 현재 직업재활시설이 순수하게 직업재활 서비스 제공 기능만을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장애인들이 학교를 졸업한 이후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근로능력이나 욕구 등과 무관하게 직업재활시설을 찾게 되는 이들이 있다고 본다.

2015년 기준으로 전국에 주간보호시설은 총 592개소가 설치되어 있으며 정원은 9,915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 종사자 1인당 2명에서부터 8명까지의 장애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직업재활시설은 2015년 약 550개소에서 15,000여명의 장애인에게 직업재활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리고, 통상적으로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은 종사자 1인당 12명 내외의 장애인에게 직업재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단순한 자료만 가지고 추정하기에는 한계가 있겠으나 주간보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직업재활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보다 좀 더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할 것이라는 추론은 가능하다.

제한된 예산으로 주간보호 서비스와 직업재활 서비스 중 한 가지를 선택하여 제공한다면 행정당국의 입장에서는 직업재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일선 직업재활시설들을 방문해 보면 시설 종사자들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모습들, 자신들이 사회복지 관련분야 종사자인지 단순 제조업 종사자인지 혼란스럽다는 이야기 등을 자주 접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근로장애인에게 물리적 공격을 받는 경우까지 경험하는 이들도 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듣게 된다. 이런 여러 가지 상황들을 고려해 볼 때 직업재활 시설에서 직업재활 서비스를 받는 이들 중에는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노동력을 제공하고 급여를 받는 것이 적합하지 않은 이들도 있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결국 일정 부분 정부가 주간보호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이들이나 장애 당사자 스스로 노동을 원하지 않는 이들까지도 직업재활 시설 영역에 포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재활서비스 제공이라는 특수성은 인정하지 않고 노동관계법을 준수토록 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러한 모순된 상황이 결국 우리 장애계가 폐지를 요구하고 있는 최저임금적용제외 제도를 존치토록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

직업재활 서비스가 적합한 이들에게만 직업재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른 서비스 제공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부담해야 할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기에 지금의 직업재활시설들이 최저임금을 적용하기 어려운 현실을 알고서도 그 책임을 피할 수 있는 최저임금 적용제외 제도를 폐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생산 원가가 조금 더 많이 드는 옷과 조금 덜 드는 옷 두 가지를 각각 한 치수씩만 만들어 놓고, 원가가 비싼 옷은 조금, 원가가 싼 옷은 많이 제공한 뒤 알아서 옷의 치수에 몸을 맞추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다소 심한 비유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장애인들의 욕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복지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최저임금 문제를 지적하기에 앞서 진정 직업재활 서비스가 필요하거나 이것을 원하는 이들에게 직업재활 서비스가 제공되도록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옷에 몸을 맞추라고 해 놓고 1년에 한 두 번씩 왜 옷에 비해 팔 다리는 이렇게 많이 자라지 않았냐고 질타한다면 그것만큼 납득하기 어려운 일도 없을 것이다. 일정 수준이상의 생산성을 갖춘 이들을 대상으로 직업재활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들이 제공한 노동력에 대한 충분한 급여를 지급하도록 지도 감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는 국정감사 현장에서 직업재활 서비스 제공 대상자로 얼마나 적합한 이들을 선발했는지, 그리고 직업재활 서비스 대상이 아닌 이들을 위해 다양한 서비스를 왜 제공하지 않는지 등을 지적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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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래 칼럼리스트 나 조봉래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보조공학부를 총괄하며 AT기술을 이용한 시각장애인의 정보습득 향상을 위해 노력해 왔고, 최근에는 실로암장애인근로사업장 원장으로 재직하며 시각장애인의 일자리창출을 위해 동분서주해 왔다. 장애와 관련된 세상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소홀히 지나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예리한 지적을 아끼지 않는 숨은 논객들 중 한 사람이다. 칼럼을 통해서는 장애계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나 놓치고 있는 이슈들을 중심으로 ‘이의있습니다’라는 코너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 갈 계획이다. 특히, 교육이나 노동과 관련된 주제들에 대해 대중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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