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머리를 만지고 있는 그녀 ⓒ최선영

그녀가 엄마 머리를 만집니다. 눈치도 없이 빠른 동작으로 세상에 고개를 내미는 엄마의 흰 머리카락에 검정 물을 들였습니다.

“색이 너무 까맣다. 촌스럽게.”

“색이 짙으면 선명해 보이고 젊어 보여.”

“그런가?”

"훨씬 젊어 보이네~"

"그런 것 같기도 하네."

엄마의 투덜거림이 딸이 건네는 몇 마다 말에 회전을 합니다. 자세히 보니 마음에 든다고 그늘진 낯빛을 환하게 바꾸십니다.

“고마워 우리 딸. 네가 없었으면 난 어쩔뻔했니.”

“뭘 어째. 미용실 가서 했겠지.”

“귀찮지?”

"귀찮기는..."

“다리 아프지 않아?”

“잠시 서 있다고 아프지는 않지.”

엄마는 혹시라도 딸이 귀찮을까 봐, 다리가 불편한 딸이 힘들까 봐, 그녀의 손에 맡겼던 염색을 어느 날부터인가 미용 전문가에게 돌렸습니다. 그러다 가끔 혼자도 해보았습니다. 혼자 한 날에는 티가 났습니다.

‘그냥 나한테 해달라고 하시지... 아님 미용실을 가시던지 저게 뭐람.’

그녀는 어설픈 엄마의 손짓이 보이는 날에는 엄마가 나이 들어가는 것 같아 괜스레 속상했습니다.

머리 염색을 하고 1주가 지나면 어떻게든 자기의 존재를 알리고 싶은지 하얀 녀석들이 여기저기 쏙쏙 올라옵니다. 2주가 지나면 눈에 띄게 거슬리게 보입니다. 너무 자주 하면 두피가 상하니까 참아야지 생각하지만 3주부터는 염색약을 찾게 됩니다. 그나마 헤어 마스카라 같은 임시방편의 커버 염색 도구들이 있어 한 달은 버틸 수 있습니다.

자주 하다 보니 해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귀찮은 게 사실입니다. 가끔 모든 게 귀찮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눈을 질금 감고 눈에 들어오는 엄마의 흰 머리카락을 모른체하기도 했습니다.

하루 이틀... 거울을 보며 그새 올라왔다며 푸념을 하시는데도 내일 하자며 또 하루를 미룹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 미루고 있었는데 어느 날 엄마의 머리 색이 달라져서 오셨습니다.

엄마는 흰머리가 보이는 게 제일 싫다고 하십니다. 그런 엄마께 하루 이틀 미루었던 것이 죄송했습니다. 그 죄송한 마음 깊은 곳에 수고를 덜었다는 다른 마음이 보여 부끄러웠습니다.

"이젠... 내가 해드려야지..."

어쩌면 또 바쁘다는 핑계로, 느닷없이 사로잡는 게으름으로 지키지 못할 약속을 그녀는 혼자 했습니다.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다짐했던 건 엄마가 피부과를 다녀오시고 나서입니다. 엄마 가방에서 약을 보았습니다. 무슨 약이냐는 물음에 피부과를 다닌다는 답을 주셨습니다.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는 그녀 ⓒ최선영

“왜? 피부가 안 좋아?”

“머리 밑이 너무 따갑고 아파서.”

“왜? 갑자기?”

“미용실 가서 염색했는데 그때부터 안 좋아.”

“그러게 하루만 더 기다려주지.. 내가 해줬을 텐데... 아니면 다른 미용실 가셨어야지.”

속상한 마음에 볼멘소리를 합니다.

커트가 마음에 안 든다 펌이 할머니같이 너무 꼬불꼬불하게 나왔다는 등 미용실 다녀올 때마다 불평하던 엄마를 답답해하며 다른 곳을 추천해 드렸지만 그곳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다른 곳보다 저렴하다는 것. 그래서 동네 친구분들은 그곳에 다들 하신답니다.

미용실에서 사용하는 염색약 중에 저렴한 것은 냄새도 고약하고 두피도 몹시 힘들어합니다. 그렇게 한 번 생채기가 나면 고생을 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노랑머리가 하고 싶었던 팔랑거리는 나이에 그녀도 미용실에서 노랑이에 가까운 옅은 갈색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엄청 따갑고 아팠고 냄새도 고약했습니다.

머리숱이 많고 길다는 이유와 함께, 약도 제일 좋은 거라고 해서 엄청 큰돈을 지불하고 했는데 두피가 심하게 아팠던 것을 보면 약은 제일 저렴이로 한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바가지를 제대로 쓴 것입니다. 어릴 때라 몰랐습니다. 달라면 달라는 대로 주던 나이. 그녀는 그때 고생했던 생각이 났습니다.

엄마는 피부과를 다니며 미용실에서 저렴하게 한 몇 배의 값을 치렀습니다. 고생하고 돈은 돈대로 들었습니다. 엄마는 미용실 가는 건 아까워하시지만 병원 가는 건 절대 아끼지 않으십니다. 피부과 뿐만 아니라 안과 내과 정형외과... 모든 진료과목을 다니시며 꼼꼼하게 건강을 챙기십니다.

“내가 아프면 너희들 고생시키는 거니까 미리미리 검진하고 약 먹고 그래야지.“

심하다 싶을 만큼 과잉 자가진단 때문에 안 해도 될 검진을 매번 하십니다. 의사 선생님이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셔도 기어코 검진을 하시는 엄마가 건강에 유독 마음을 쓰는 것은 젊은 나이에 받았던 암 선고 때문입니다.

엄마는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하셨습니다. 어느 날,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된 어린 딸을 두고 떠날 수 없었던 엄마는 살기 위해 수술을 받았고 장애인이 된 딸을 돌보기 위해 암이 재발하지 않도록 건강을 지켜내려 했습니다.

딸을 위해 살고자 했던 엄마는 그렇게 한평생을 건강을 지키기 위해 병원을 내 집처럼 드나드셨습니다. 그녀는 가끔은 지나치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런 엄마의 노력이 있었기에 엄마의 사랑 속에 장애를 받아들이고 다르지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낼 수 있었습니다.

엄마가 없었다면 장애를 받아들이고 살아내는 것이 더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병원을 열심히 다닌 덕분에 엄마의 두피는 빠르게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흰 머리카락이 올라올 무렵 그녀는 아주 좋은 염색약을 구입했습니다.

습관대로 염색약을 많이 풀었습니다. 그런데 촘촘하게 바르고 덧바르기를 해도 약이 남았습니다. 오랜만이라고 해봐야 겨우 몇 달... 그새 엄마 머리숱이 많이 줄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짠.. 했습니다. 엄마의 나이 듦이 이제 손끝에서 확인이 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엄마의 머리를 염색하는 그녀 ⓒ최선영

“이제 숱이 많이 없지?...”

엄마가 그녀의 마음을 보셨을까요?

“아니. 조금.. 근데 보기에는 풍성해 아직.”

착한 거짓말을 하고는 목에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왔습니다.

“너도 관리 잘해라. 머리숱 많다고 자만하지 말고.”

“응. 나도 나이가 있는데.. 알지..."

횡 해진 엄마의 머리숱을 보며 사랑하며 함께 할 날이 생각보다 어쩌면 짧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써 그 슬픈 생각을 외면하며 서둘러 쫓아보냈습니다. 먼 훗날에나 만나게 될 일처럼 여기며.

비록 줄어든 엄마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색이 짙다 옅다 투덜거리지만 엄마와 함께 살을 비비고 정을 주고받는 이 시간이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만지고 싶어도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우리 중 누군가가 먼저 가게 된다면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돌아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는 지금 행복을 걷고 있습니다. 행복은 함께 하는 작은 일상에서 넉넉하게 부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게 행복인 것 같아. 우리 지금 이렇게 함께 하는 이런 거."

"그래 바로 이런 게 행복이지. 엄마는 정말 행복하단다. 처음 네가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 앞에 많이 절망하고 힘들었지만 내가 무너질 수 없었던 것은 다르지만 다르지 않게 살 수 있는 네가 되도록 키우고 싶었고 그래야 했기 때문이란다. 살아서 내 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라고 생각했어. 내가 암 진단을 받았을 때도 절망보다는 어린 너를 두고 떠날 수 없어서 살아남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이겨냈었고 그렇게 살아냈던 모든 시간이 지금 이런 행복도 만들어주는 거고."

“엄마... 고마워... 내 곁에 있어줘서... 그리고 정말 미안해... 더 잘해드리지 못해서..."

그녀는 뜨거워지는 눈가를 진정시키기 위해 두 눈을 깜빡거리며 혼잣말을 입안에서 오물거립니다. 염색을 귀찮게 생각했던 게으른 마음이 몹시 부끄럽고 죄송하고 미웠습니다. 이제 이 행복을 미용실에 빼앗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염색은 내가 해줄게. 미용실 가지 말고 집에서 해요.”

“너 귀찮잖아. 다리도 아플 거고."

“뭐가 귀찮아. 잠깐이면 하는걸. 몇 시간씩 쇼핑도 다니는데 이 정도로 다리 아프지 않아.”

“그래도......”

엄마는 거듭 괜찮다는 그녀의 말에도 계속 미안해하셨습니다.

평생을 엄마를 귀찮게 했는데 아프게 했는데 그것도 아주 당연한 것처럼. 그런데 엄마는 겨우 염색하는 30분 남짓한 이 시간을 미안해하셨습니다.

“엄마. 난 지우에게 안 그럴 거야. 미안해하지 않을 거라고. 엄마도 나한테 그러지 마. 미안해하지 말라고.”

그녀는 정말 엄마가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말했습니다. 그녀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덜 미안하도록.

엄마와 활짝 웃고 있는 그녀 ⓒ최선영

장애를 안고 살게 된 딸의 곁을 지키기 위해 암을 이겨 낸 엄마와 다르지만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그녀는 오늘도 엄마의 머리를 만지며 엄마와 함께 행복을 만들어갑니다. 이 행복이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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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담아 내려고한다. 동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의 폭이 넓어져 보이지 않는 편견의 문턱이 낮아지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어우러짐의 작은 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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