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은 자체 채용사이트를 운영하여 그곳에서 지원서 접수를 받고 있고, 일부 경우에는 합격자 명단도 이곳에서 발표하기도 한다. 그런데, 발달장애인이 이 채용사이트에 들어가서 신청할 수 있을까?

의외의 사실이지만, 필자도 자체 채용사이트에서 입사지원서를 써본 적이 있다. 공공기관에서도, 대기업에서도 그랬다. 그 대기업은 사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회사였다. 물론 처참하게 실패를 했지만 하여튼 그렇게 지원서를 써봤다.

심지어는 발달장애인에게 채용 편의를 제공해 줄 수 없다는 논리(?)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발달장애인 직원 채용에서도 자체 채용사이트로 지원서 접수를 받는 경향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이력서도 자체 양식이고, 적어야 할 내용도 자기 나름대로고(심지어는 어떤 회사는 사진을 넣지 말라는 곳도 있다), 자기소개서는 엄청나게 자기회사 멋대로 질문을 작성했다.

필자가 2015년 엔씨소프트에 지원서를 넣었을 때, 자기소개서의 첫 번째 질문은 이랬다.(미리 원문을 복사해놓고 보관해놨던 것임을 밝힌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진지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수행했던 경험(Integrity/진지함), 무엇인가에 빠져 열정적이고, 헌신적으로 그것을 수행했던 경험(Passion/헌신),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는 개선을 통해 타인을 감동시켰던 경험(Never-ending Change/감동) 중 한 개를 선택하여 그 경험과 결과에 대해서 서술하시오.”

이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우리 회사의 가치를 당신의 경험에 맞춰서 왜 당신이 우리 회사에 맞는 인재인지를 설명해보세요”라고 요약이 가능하다. 그런데, 발달장애인에게 그런 경험이 과연 제대로 갖춰졌을까?

아닐 것에 더 가깝다고 느낀다. 발달장애인이 대학을 다닌다면 아직도 ‘발달장애인이 장애를 극복하고 졸업하는 것’이 적어도 지역신문의 뉴스거리인 세상이고 회사에서 요구하는 경험은 대부분 대학에서의 경험을 의미한다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말하는 ‘경험’이란 조별과제, 대외활동, 동아리, 배낭여행 이런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발달장애인에게는 대학생활 자체가 ‘꿈꾸는 것이지만 정작 성적표의 문제부터 편견의 문제까지 너무 어려워서 힘든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경험이라는 단어는 사전에 존재하지 않는 것에 더 가깝다. 아니, 그러한 경험이라는 단어가 존재할 수 없는 것에 가깝다.

이렇게 따지면 발달장애인 구직에서 가장 급한 이슈를 하나만 뽑으라면 ‘경험을 많이 가지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곳에서 경험을 쌓게 하는 것이 필요하고, 통합교육이 이러한 것을 뒷받침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이다.

요즘 특수학교도 자유학기제를 도입한다고 들었다. 사실, 만시지탄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발달장애인에게는 그러한 경험을 쌓을 기회가 없었는데 이렇게라도 경험을 쌓게 하지 않았다면, 그 경험에 대해서라도 쓸 수 있을까? 없을 것이다. 특수학교와 특수학급에서의 자유학기제는 미리 시행을 했어야 맞았다는 뒤늦은 후회를 교육부 관료들이 하게 만드는 것이 어찌 보면 필요할 것이다.

발달장애인들이 비발달장애인 수준의 경험을 갖춘다는 것은 그야말로 ’신의 난이도‘에 도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대기업에서 말단 사원을 뽑아도 경험에 대해서 많이 쓰라는 이러한 자기소개서 질문지를 던진다면 과연 제대로 답안지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게다가 머리가 아픈 문제는 그러한 것이 100자가 아닌 1000자나 2000자 수준의 답안지를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의미는 한마디로 사실관계를 적는 것을 넘어서 자신이 그러한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웠고 더 나아가 그 경험이 지원하는 회사의 가치에 어떻게 맞아떨어지는 것인지를 다 설명하라는 의미이다.

필자 본인은 대학교 교양 논술 시험에서 빨리 답안지 작성을 끝내라고 채근당할 정도로 1000자나 2000자 정도의 글은 가볍게 쓸 수 있고 글을 구성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하게 답하라고 해도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초등학교 저학년 때 글쓰기 과외를 받았기 때문에 이렇게 글을 제대로 쓸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뒤늦게 밝힌다.

그런데 발달장애인들 상당수의 학력으로는 워드 한 페이지 분량을 채울 수 있는 글을 작성할 수 있을지가 의문시될 정도이다. 실제로 필자가 올해 참여하는 장애청년6대륙드림팀 원서 준비 과정에서도 필자가 속한 팀 일부 팀원들은 준비 서류에 들어가는 자기소개서 작성에 애를 먹은 사례가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해당 팀원에게 “이렇게 써보는 기회를 잘 잡아서 잘 써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 입사 자기소개서를 이렇게 쓰는 것은 탈락을 의미한다”라는 이른바 ‘돌직구’를 담은 지적을 했을 정도이다.

어쨌든 대기업의 자기소개서 작성이라는 것은 ‘엄청난 경험’을 1000자 이상으로 답하라는 것인데, 이러한 상황으로는 발달장애인에게는 버거운 난이도일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발달장애인이 경험을 쌓는 문제부터 시작하여 이것을 1000자 이상의 글로 녹여내는 작업까지 곁들인다면 발달장애인의 대기업 진입 난이도가 높은 진정한 이유는 차별도 차별이거니와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배려하지 않은 입사지원서에 있지 않는가 하는 추측을 자아낸다.

대기업이 진정 발달장애인을 고용하고 싶다면, 비발달장애인에 맞춰진 자기소개서 양식을 보완하여 발달장애인에게 걸맞은 자기소개서 질문과 발달장애인이 노력만 하면 충분히 작성할 수 있는 분량의 답안지 크기를 요구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발달장애인 고용의 큰 적은 고용하려는 회사 자신일 수 있다는 의문을 ‘책 좀 읽고 신문 좀 읽고 지원서 몇 번 써본 발달장애인’은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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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계약 만료로 한국장애인개발원을 떠난 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그 이후 장지용 앞에 파란만장한 삶과 세상이 벌어졌다. 그 사이 대통령도 바뀔 정도였다. 직장 방랑은 기본이고, 업종마저 뛰어넘고, 그가 겪는 삶도 엄청나게 복잡하고 '파란만장'했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파란만장했던 삶을 살았던 장지용의 지금의 삶과 세상도 과연 파란만장할까?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픽션이지만, 장지용의 삶은 논픽션 리얼 에피소드라는 것이 차이일 뿐! 이제 그 장지용 앞에 벌어진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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