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에게서 멀어지는 영인 ⓒ최선영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영인아, 제발 이러지 마.”

“어머니, 어머니께는 정말 죄송해요. 하지만 전......”

눈물에 흠뻑 젖은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영인은 도망치듯 밖으로 달려 나옵니다. 대문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고개를 저으며 집에서 멀어집니다.

“영인아......”

그의 뒷 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그를 위해 기도합니다.

“난 아버지처럼은 살지 않을 거야. 절대로.”

어머니의 모습이 흘러내리는 눈물에 얼룩져 흐트러져 보입니다.

어머니의 가녀린 음성이 귀에 던져진 채로 그의 마음은 온종일 멍이 듭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그렇게 모진 말을 하고 집을 등지면 안 되는 것인데, 그는 아버지의 선택과 그 선택이 낳은 가난이 싫었습니다. 그것을 말없이 따르는 어머니가 너무 가여워서 더 싫었습니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기 위해 집을 나왔고 그는 멋지게 성공해서 부모님 앞에 서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하신 선택이 좋은 일이지만 가족에게는 힘든 일이었다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조금은 막막했지만 젊음과 건강은 그에게 큰 자신감을 주었고 성실한 그의 삶은 그가 땀 흘린 만큼 충분한 보상을 해주었습니다.

일을 하면서도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2년 후 대학 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2년 만에 고향집에 다시 돌아온 그를 어머니는 맨발로 반겨주었습니다.

“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지낸 거니, 얼마나 걱정했는데......”

어머니는 그의 손을 한시도 놓지 못하고 쓰다듬고 또 만지셨습니다.

대학을 진학하게 되었다는 말에 어머니는 무척이나 기뻐하셨습니다.

“영인아, 너의 길을 막을 생각은 없어. 처음부터 그랬다. 하지만 난 네가 태어나던 날 너를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기도를 했고 그 길을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또 그 얘기세요? 저도 아버지처럼 좋은 일하면서 살고 싶어요. 누구나 그렇게 다른 사람을 도우며 살고 싶어 해요. 하지만 아버지처럼 자기 가족을 희생시키면서까지는 하지 않아요. 아버지가 다른 아이들 밥해 먹이시느라 저희들 얼마나 많이 굶었는지 아세요? 엄마 좀 보세요. 일을 하도 많이 하셔서 허리가 구부러져 펴지지도 않아요. 저더러 그런 삶을 살라고요? 싫어요. 아버지처럼은 살지 않을 거고, 제 처자식을 어머니처럼 저처럼 누나처럼 만들지 않을 겁니다.”

그의 쏟아내는 말들에 아버지는 지그시 눈을 감고 더 이상 아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시 집을 나옵니다.

어머니를 남겨두고 다시 떠나는 영인 ⓒ최선영

“영인아, 밥이라도 먹고 가렴.”

“어머니, 아버지는 하나도 변한 게 없어요. 대체 왜 저러시는지 정말 이해가 안 가요. 처자식을 먹이고 입혀가며 다른 사람을 돌보든지 해야죠.“

“영인아, 불쌍한 사람들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게 당연한 거야. 그리고 아버지도 그렇게 은혜를 입어서 지금까지 살아계신 거고.”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요. 저 잘 살 거니까 걱정 마세요. 졸업하고 합격하면 그때 편안하게 모실게요. 조금만 참으세요.”

그는 또 눈물에 젖은 어머니 손을 그곳에 두고 아버지와 가난으로부터 멀어집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해 바로 사법시험에 합격을 했습니다.

“우리 집에서 영인 씨 보자고 하시는데......”

대학 4학년 때 소개팅으로 만난 그녀가 그에게 말을 합니다.

“조금만 기다려주면 좋겠어. 난 아직 아무것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알잖아.”

“알아, 다른 건 걱정하지 마. 우리 부모님이 준비해두셨으니까. 물론 남자로서 그 부분이 싫을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살면서 부모님께 갚으면 되잖아. 아버지 몸이 많이 약해지셔서 마음이 급하신가 봐.”

그녀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그는 그녀를 데리고 고향집을 갑니다.

낡고 초라한 집 바로 옆에 오래된 건물에서 사람들이 예배를 마치고 막 나오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떠난 자리를 정리하는 어머니가 보였습니다.

그들을 보자 어머니는 눈물로 먼저 반겨주었습니다.

“어머니......”

허리는 더 굽어져 있었고 굵은 주름이 깊게 패어 곱던 얼굴의 흔적을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이 변해있는 모습에 그는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큰절을 올리고 그녀를 소개했습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녀를 마음에 들어 했고 그녀의 손을 잡으며 좋아하셨습니다.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행복을 나누며 사는 삶이 되기를 기도하마.”

“아버지, 저희 행복하게 잘 살 겁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 외면하고 살지 않을 겁니다.”

“그래. 우리가 함께 하는 저 아이들에게 네가 아버지가 되어주면 좋겠구나.”

아버지의 말이 여전히 그의 마음에 가시처럼 걸립니다. 다른 사람을 돕고 살겠지만 아버지처럼 희생은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합니다. 교회 목사로 고아원 원장으로 한평생을 사는 아버지의 모습은 여전히 답답하고 싫었습니다.

3년이라는 세월이 또 흘렀습니다. 큰 로펌에서 그를 데려가려고 좋은 조건을 보였습니다.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동안 함께 하던 동료들과 만나 아쉬운 마음을 나누고 새벽에 집으로 돌아오던 그는 뺑소니차를 만났습니다.

그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어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받아들여지지도 않았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는 휠체어를 타고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 했습니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체 그는 매일을 술로 지냈습니다.

위로하고 안아주던 그녀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 눈이 잘 안 보여 자꾸 흐릿해지고 그래.”

“뭐? 진작 얘기하지. 이렇게 맨날 술로만 사니까 그렇지.”

병원에서 내린 진단은 망막색소변성증이었습니다.

그는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가 괜찮다고 하잖아. 어떤 모습이든 서로 의지하며 살면 되는 건데......”

그녀의 마음과 달리 그녀 부모님은 그를 더 이상 사위로 둘 수가 없었습니다.

“자네, 이렇게 나약한 사람이었나? 우리 딸 고생시킬 거면 이제 여기서 인연을 끝냈으면 싶네.”

그의 나약한 모습 때문에 그녀의 부모님이 그와의 인연을 끊으려 했던 것은 아닙니다.

돈은 많지만 늘 집안에 대학 나온 사람 하나 없다는 것이 부끄러웠던 장인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딸이 사법시험에 합격해서 법관이 될 그와 만난다는 말에 얼른 그를 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 똑똑한 사위가 장애인에 술꾼이 되어가는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시력까지 잃게 될 거라는 말을 듣자 냉정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녀는 끝까지 그의 곁에 있겠다고 했지만 그도 그녀를 받아주지 않으려 했고 그녀 아버지도 오빠도 그녀를 그대로 두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인연은 끝이 나버렸습니다.

휠체어에 앉아 한강을 바라보며 힘들어하는 영인 ⓒ최선영

죽고 싶어서 몇 번이나 죽으려고 했지만 그에게는 죽음마저도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휠체어에 몸을 맡기고 거리로 나 온 그는 점점 눈이 흐릿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갈 곳도 없고 불러주는 곳도 없었습니다.

실패를 거듭하는 죽음의 길. 그 길을 다시 또 가보겠다고 생각하고 마지막으로 한강을 보기 위해 왔습니다. 별빛을 받아 반짝이는 물 위로 동동거리는 달의 몸짓을 보며 부모님 생각에 눈물이 났습니다.

어머니가 보고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 얼굴을 뵙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으로는 고향을 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 현실이 그를 더 괴롭게 했습니다.

“갈 수 있을 때 가고, 볼 수 있을 때 보고, 할 수 있을 때 효도를 했어야 하는데......”

잘 나가던 인생이 한순간의 사고로 장애인이 되고 이제 눈까지 안 보이게 된다는 것이 악몽같이 느껴졌습니다.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이, 왜 나에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요? 내가 뭘 그렇게.”

그는 하늘을 보며 소리쳤습니다. 지나던 사람이 힐끔거리며 쳐다보기도 했지만 그는 계속 소리를 질렀습니다. 목이 쉬어 눈물조차 삼킬 수 없을 만큼 긴 시간 그렇게 하늘을 원망했습니다.

“저......”

지친 그가 휠체어에 앉아 잠시 잠이 든 사이 그를 깨우는 소리에 눈을 뜹니다.

“저 괜찮으세요?”

더위를 피해 친구들과 한강에 나온 지현이 그를 지나치지 못하고 그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냥 가라는 손짓을 합니다.

지현이 그냥 지나치려다 다시 그에게 말을 건넵니다.

“어디까지 가시는지 저희가 모셔다드릴까요?”

지현의 말에 그는 귀찮다는 듯 그냥 가라고 또 손짓을 합니다.

밤이 깊어지자 인적은 더 한산해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저 물에 들어갈 수 있을까......”

그는 그곳에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그가 천천히 휠체어를 움직이자 뒤에서 그를 부르며 사람들이 달려옵니다.

지현과 경찰이었습니다.

그를 혼자 두고 간 것이 마음에 걸려 다시 돌아온 지현은 그를 지켜보다 경찰을 불렀습니다.

그를 데리고 경찰서로 온 지현은 밝은 곳에서 그를 자세히 보더니 깜짝 놀라며

이름이 손 영인이 아니냐며 물어봅니다.

"제 이름을 어떻게......“

“소망교회, 소망원...... 저 거기서 자랐어요.”

그제서야 그도 지현을 자세히 봅니다.

“지현?”

“네 지현이에요.”

그는 지현과 함께 연락을 받고 온 누나 영숙의 차를 타고 부모님을 만나러 고향으로 내려왔습니다. 그의 친구들에게서 소식을 들었지만 아들이 찾아올 때까지 부모님은 타는 가슴을 잡고 기다렸습니다.

“혹시라도 네가 이런 모습 보이기 싫을까 봐...... 네 아버지가 너 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해서 가보지도 못하고 찾지도 못하고 얼마나 애가 탔는지...... 내가 처음으로 네 아버지 말씀 안 듣고 영숙이한테 너 좀 찾아보라고도 했었다.”

어머니는 영인을 안고 울며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냐며 두서없이 마음에 담았던 말들을 쏟아내셨습니다.

“지현아. 고맙구나. 네가 영인이를 찾아내다니.”

어머니는 지현을 보며 고맙다고 거듭 말합니다.

소망교회와 소망원은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새로 건물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자란 아들딸들이 고향을 위해 그리고 이곳에서 자신들이 자라며 꿈을 키우고 희망을 품었던 것처럼 더 많은 아이들이 그러기를 바라며 힘을 모았다고 했습니다.

영숙은 신학교를 가서 지금 전도사로 이곳에서 아버지를 모시며 예배를 인도하고 있고 소망원의 부원장으로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성공을 위해 행복을 위해 고향을, 부모님을 등지고 떠났던 그는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 부끄럽고 죄송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너무 죄송하고 부끄럽습니다.”

“아니다. 내가 살았던 길이 다 옳다고 할 수도 없고 네가 가려고 했던 길이 나쁜 길도 아니란다. 사람은 주어진 운명대로 사는 것이 최선의 길이고 행복한 것이지. 네가 비록 장애인이 되었지만 이 또한 너에게 주어진 제2의 인생이란다. 주어진 인생을 어떻게 살아내느냐가 더 중요한 거야. 장애인이면 어떻고 고아면 어떠냐. 꿈을 잃지 않고 희망의 끈을 잡고 열심히 살다 보면 노력한 시간은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 것이니까 언젠가는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지. 이 아버지도 고아원에서 자랐단다. 내가 받은 은혜를 나는 이렇게라도 갚고 싶었고 그 길에 네가 쓰임 받기를 바랐었단다. 영인아 우리 꿈을 가지고 희망을 품고 살아보자.”

그는 아버지가 만난 하나님을 만나고

아버지의 말씀대로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해 장애를 받아들었습니다.

죽음의 길을 택하려고 찾아갔던 한강, 그곳에서 소망원에서 자란 지혜를 만나 그녀와 함께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습니다. 그곳에서 자란 아이들이 청년이 되어 사회 곳곳에 나가 자기의 역할을 하고 소망원에서 받았던 그 사랑을 다시 그곳에 심고 있습니다.

그는 그들과 함께 그곳에 비장애아이들과 장애 아이들이 함께 어우러져 꿈과 희망을 키워가는데 제2의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영인 ⓒ최선영

두 바퀴로 새로운 세상을 만났고 빛을 잃은 그가 세상에 빛이 되었습니다.

많은 부모를 잃은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어 주었던 그의 아버지는 이제 그들 곁을 떠났지만 그 아버지의 뜻을 이어 이제 그가 그들의 오빠가 되고 삼촌이 되고 아버지가 되어 새로운 인생을 쓰고 있습니다.

그가 아이들에게 늘 해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인생을 만나더라도 꿈과 희망은 늘 나를 따라다닌단다. 내가 그 꿈을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놓지 않는다면 성공으로 가는 길이고 그 길을 걷는 모든 순간이 행복이란다.”

그의 길에 어머니의 기도와 누나 영숙 동역, 그의 눈과 발이 되어주는 지혜가 있기에 그의 인생은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하는 아이들이 있어 그는 더 행복합니다.

그들이 걷는 아름다운 그 길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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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담아 내려고한다. 동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의 폭이 넓어져 보이지 않는 편견의 문턱이 낮아지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어우러짐의 작은 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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