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꽃을 들고 가는 민혁. ⓒ최선영

5월의 햇살은 눈부시도록 아름답습니다. 장미를 한 아름 들고 붉은 장미를 닮은 그녀를 만나러 지금 달려갑니다.

그녀를 처음 본 계절도 5월이었습니다. 일본에서 돌아와 막 한국에 도착한 그가 할머니께 드릴 선물을 사기 위해 들른 곳에서 그녀를 만났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가족을 따라 일본으로 갔던 민혁.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 회사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3년간 근무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께 회사는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드렸습니다.

아버지 또한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능력도 안되는데 회사를 맡길 생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민혁은 아들이기 이전에 회사를 위해서 탐이 나는 사람입니다. 아버지의 설득에도 민혁은 아버지 그늘이 아닌 곳에서 원하는 일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민혁은 아버지와 6개월의 긴 줄다리기 끝에 5년의 시간을 받았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5년 동안 마음껏 해보고 5년 후에도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아버지도 포기하겠다고 말하고 그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민혁이 하던 업무를 3개월간 정리하고 그렇게도 원하던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공항에 마중 나온 삼촌과 반갑게 만났습니다.

“녀석 여전히 멋있구나.”

“삼촌 잘 계셨어요. 할머니도 잘 계시죠.”

“어제도 통화했다면서 뭘 또 물어. 잘 계시지. 너 나오는 거 말하지 말라고 해서 아직 말씀 안 드렸다. 너 보면 무척 반가워하실거다. 기절하시는 거 아닌지 모르겠구나. 허허.”

“하하, 제가 먼저 기절할 것 같아요. 정말 할머니 품이 그리웠거든요.”

“그래, 어서 가자.”

“삼촌, 가는 길에 약밥 좀 사 가려고요. 할머니 아파서 밥은 못 드셔도 약밥은 잘 드실 정도로 좋아하시잖아요.”

“녀석, 알았다.”

바쁘신 부모님을 대신한 할머니는 민혁에게 아빠였고 엄마였습니다. 그토록 한국을 오고 싶어 했던 이유는 할머니와 함께 지내고 싶은 마음도 컸습니다.

민혁이 대학 입학하고 할머니는 한국으로 나오셨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한국에 오고 싶어 했습니다.

남은 시간은 할아버지와 가까운 곳에서 지내고 싶어 하는 마음을 민혁조차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장미꽃을 들고 있는 그녀. ⓒ최선영

할머니가 즐겨드시는 약밥을 사기 위해 들른 곳에서 그녀를 만났습니다.

그녀의 손에는 붉은 장미와 안개꽃이 들려있었습니다. 그녀도 약밥을 주문하고 있었습니다.

계산을 하고 돌아서 나가는 그녀의 뒤를 민혁이 따라갑니다.

“어. 정 선생님.”

“아, 안녕하세요. 혜리 아버님.”

그녀의 뒤를 따라나오던 민혁은 삼촌과 인사를 주고받는 그녀를 봅니다.

“아, 민혁아 인사드려라. 우리 혜리 과외 선생님이셔.”

“안녕하세요. 혜리 삼촌 강 민혁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정 인주예요.”

그들은 나란히 삼촌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합니다.

인주는 혜리 과외를 오던 길에 할머니를 드리려고 꽃과 약밥을 샀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모레가 저희 어머님 생신인 걸 어떻게 아셨어요?”

“지난번 수업시간에 혜리에게 들었어요. 약밥 좋아하신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꽃은 뭘 좋아하시는지 몰라서 제가 좋아하는 걸로 샀어요.”

“어이쿠, 선생님 마음씨도 얼굴만큼이나 예쁘시네요. 저희 어머님이 많이 좋아하시겠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참, 민혁이도 약밥 산다고 했잖아.”

“아...... 그게, 그냥 나와버렸네요. 하하 할머니께는 제가 선물이죠.”

인주를 따라 나오느라 약밥도 사지 못한 민혁은 머리를 긁적이며 웃어 보입니다.

그날 할머니는 가장 큰 선물 민혁을 보고 기절할 만큼 좋아하셨습니다.

“내가 어제 꿈이 좋아서 무슨 좋은 소식이 있으려나 했는데 이렇게 큰 선물을 한꺼번에 받는구나. 고맙다 민혁아. 고마워요 선생님.”

인주의 꽃과 약밥을 받아든 할머니는 민혁과 인주를 번갈아 보며 행복해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인주가 오는 날은 민혁도 일찍 집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인주가 끝나는 시간 약속이 있다며 인주를 따라나와 약속 장소가 인주 집 부근이라는 핑계를 대며 차를 태워주었습니다.

티 나게 다가서는 민혁이 인주도 싫지 않았습니다. 함께 하는 시간이 더해지면서 순수하고 따뜻한 민혁의 모습에 자꾸만 마음이 두근거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인주는 그런 설레는 마음이 더 흔들리지 않도록 그럴 때마다 냉정해지려고 마음을 붙들었습니다.

엄마와 단둘이 사는 인주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힘들게 공부를 마쳤습니다.

인주가 중학생이 되던 해, 어린 인주와 시각장애인인 엄마를 남겨두고 아빠는 사고로 먼저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저시력 시각장애 엄마는 불어를 전공하셨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번역 일을 간간이 하시지만 일정하지 않은 적은 수입으로 생활비에 학비까지 감당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장학금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인주가 엄마의 부담을 덜어드렸지만 늘 빠듯한 생활이었습니다.

“엄마 힘들죠...... 조금만 참으세요. 제가 졸업하고 취직하면 엄마 편하게 잘 모실게요.”

“힘들기는. 네가 힘들지...... 미안하구나.”

“엄마는 뭐가 미안해요. 이렇게 예쁘게 잘만 키웠는데. 엄마 닮아서 다들 예쁘다고 하잖아요.

취직하면 엄마 좋아하는 여행도 다니고 그래요 우리.“

“그래, 그러자.”

인주는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취업 준비생이 된지도 벌써 2년. 쉽지 않은 취업이 자꾸만 멀어지는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하지만 인주는 다시 파이팅을 외치며 힘을 냅니다.

그래도 과외를 몇 군데 하면서 학교 다닐 때 아르바이트보다는 경제적으로는 여유로워져서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밝게 웃습니다.

인주는 장애를 가진 엄마가 아빠도 없이 자신을 키우기 위해 힘든 번역 일을 밤새워 하던 모습이 문득문득 떠올라 마음이 아픕니다.

아빠 몫까지 엄마께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열심히 취업 준비를 하는 인주에게 누군가를 사랑하고 어쩌면 그 사랑 때문에 그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 봐 두려웠습니다.

결혼은 인주에게는 먼 이야기입니다.

엄마는 인주의 그런 마음을 잘 알기에 늘 기도합니다. 인주를 이해하고 진심으로 사랑해 줄 따뜻한 사람을 만나기를. 인주의 길에 자신이 혹시라도 걸림이 되는 일이 없기를.

민혁은 한국에 들어와 자신이 원하던 회사를 세우고 인주를 향한 마음만큼이나 열정을 쏟으며 일을 합니다. 인주의 깊은 사연을 다 알지 못하는 민혁은 한발 한발 인주를 향해 더 빠르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민혁과 인주. ⓒ최선영

“저...... 이제부터 차 안태워주셔도 돼요. 집이 멀어서 과외 못한다고 말씀드렸어요.”

인주는 민혁을 피해야 했습니다. 자꾸만 거리를 좁히는 민혁을 밀어낼 자신이 없어서 도망치기로 했습니다.

“저 때문이죠? 다른 좋아하는 사람도 없으면서 왜 나는 안되는 거죠? 이유라도 알고 싶습니다.”

인주는 긴 시간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연애는 제게는 사치에요. 그리고 전 엄마와 단둘이 지금처럼 살고 싶어요.”

“지금처럼 사세요. 어머니랑 행복하게. 저와 사랑하면서.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아요. 저를 만나는 게 왜 사치죠? 어머니와 이별해야 하는 일도 아니고 저와 함께 어머니를 더 행복하게 해드릴 수도 있잖아요. 그런 이유라면 절대 포기 안 합니다. 도망치고 싶으면 달아나 보세요.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갈 테니. 그리고 저희 회사에 이력서 넣어보세요. 냉정하게 평가할 테니까 다른 걱정은 마세요. 아직 작은 회사지만 앞으로 가능성이 크니까 와서 보고 미리 너무 실망하지 말고.”

민혁은 인주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인주의 인사도 그 어떤 말도 듣지 않고 가버렸습니다.

그들의 줄다리기는 오래 이어졌습니다. 민혁도 인주도 같은 마음이지만 다른 반응을 보이며 안타까운 사랑을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2년이 또 흘렀습니다.

“이제 더는 못 기다리겠습니다. 할머니 많이 쇠약해지셨어요. 빨리 손자며느리 보고 싶다고 야단이신데 언제까지 이렇게 기다리게만 하실 거예요? 제가 다른 여자 만나고 그 여자랑 한이불 덮고 자고 그래도 괜찮아요?”

“......”

“난 인주 씨가 다른 남자 품에 있는 거 상상만으로도 화가 납니다.”

“반대하실 거예요.”

“걱정 마세요. 인주 씨만 제 손 놓지 않는다면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합니다. 그리고 저희 가족들 그런 분들 아닙니다.”

그날 이후 인주는 민혁의 손을 잡고 함께 가기로 합니다.

그동안 못다 한 사랑을 나누며 함께 했습니다.

민혁의 가족들은 좋은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인주와의 결혼은 반대했습니다.

혼자 힘들어하는 민혁을 봅니다. 인주는 민혁을 더 이상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인주는 결국 이별을 말하고 돌아섭니다.

이별하는 민혁과 인주. ⓒ최선영

“기다려줘. 꼭 허락받고 돌아올게.”

“싫어요. 반대하는 거, 저는 아무렇지 않아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요. 하지만......

저희 엄마에게 이런 대접받게 할 수는 없어요. 누구보다 힘들지만 당당하게 딸을 키우시며 열심히 살아오신 분이에요. 전 저희 엄마가 초라해지는 거 싫어요. 다시는 민혁 씨 보고 싶지 않아요. 돌아올 생각도 돌아오지도 마세요. 기다리지 않을 거예요. 엄마를 이해하고 함께 모실 수 있는 그런 사람 이제 찾아볼 거고 만날 거예요."

그리고 그들은 이별을 합니다. 민혁은 아니라고 했지만 1년을 이별 인체로 살았습니다. 민혁이 없는 인주의 시간은 그리움의 시간입니다.

길을 걷다가도 민혁인가 돌아보면 낯선 남자였고 인주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또 돌아보면 가을바람이었습니다.

인주가 없는 민혁의 시간은 죽을 것 같은 통증으로 아파하는 시간입니다.

햇살의 눈부심이 내리면 인주의 미소가 보이고 먹구름이 들고 온 외로움은 인주의 그림자라도 안아주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리워도 만날 수 없고 죽을 만큼 보고 싶어도 안아줄 수 없는 그 시간을 민혁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런 민혁을 지켜보는 할머니는 민혁의 편에 서서 가족을 설득합니다.

가장 큰 지원군을 만난 민혁은 절대 인주를 포기하지도 인주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하지도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

“세상을 다 가질 수는 없다. 이런 제안은 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 회사가 많이 어렵다. 우리 회사에 네가 절실히 필요하구나. 회사로 돌아온다면 나도 양보하마.”

결국 아버지 회사로 돌아가기로 하고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인주가 좋아하는 계절에 인주를 닮은 장미를 들고 그녀를 만나러 갑니다.

인주가 없는 1년이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날보다 더 길게 느껴졌던 민혁.

그가 그녀 앞에 섰습니다.

다시 만난 민혁과 인주. ⓒ최선영

“1년이나 기다리게 한 거 미안해. 힘들게 한 1년. 평생 행복으로 갚아줄게.”

누구보다 기뻐한 것은 인주의 엄마입니다. 민혁이 없는 1년을 눈물로 보내는 딸을 보며 자신의 탓인 것처럼 마음이 아팠습니다.

엄마의 그 마음을 민혁도 알기에 죄송했고 그 죄송한 마음을 살아가면서 갚겠다고 말합니다.

“어머니, 이렇게 예쁜 딸을 저에게 주셨으니 이제부터 어머니께 제가 아들이 되어 효도하겠습니다.”

“고마워요. 민혁 씨.”

“인주야. 널 사랑하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어머니를 잘 모실게. 나 이제 어머니 아들이잖아.”

인주는 믿음직스러운 민혁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민혁의 부모님도 인주 어머니를 만나고 반대했던 것을 많이 미안해했습니다.

인주에게도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딸처럼 예뻐해 주었습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 그들의 사랑은 활짝 핀 장미꽃만큼이나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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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담아 내려고한다. 동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의 폭이 넓어져 보이지 않는 편견의 문턱이 낮아지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어우러짐의 작은 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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