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이응이의 초등 1학년 첫 참관수업이 있었다.

물론, 유치원 때도 3년 내내 ‘엄마참여수업’ 또는 ‘아빠참여수업’ 등으로 명명된 비슷한 참관수업에 3년간 열심히 참여했었다.

‘유치원 수업은 미술작품을 만들거나 게임에 참여하는 참여수업에 어려움이 있었다’. ⓒ은진슬

유치원 수업은 ‘참관’이라기보다는 ‘참여’에 방점을 찍고 있었기에, 시각장애엄마로서 함께 미술작품을 만들거나 게임에 원활히 참여하는 것 등에 대한 고민과 애로사항이 나름 있었는데, 이를테면, 가위로 뭘 자르는 걸 돕는다거나, 액티브한 게임에 참여한다거나 하는 것들이었다.

다섯 살 때는, 아이가 너무 어렸고 미술활동의 난이도도 높았기에, 선생님께 미리 말씀 드리고 약간의 도움을 받아 가며 청사초롱 만들기를 함께 했는데, 여섯 살부터는 워낙 아이가 독립적이고 조작능력도 또래에 비해 뛰어난 편이라, 나는 그냥 옆에서 훈수만 두어 주며 잘 한다 예쁘다만 해 주면 되었기에, 큰 부담은 사라졌다.

유치원 시절의 ‘참여수업’은, 초등학생이 되니 ‘참관수업’으로 바뀌었고, 엄마가 무언가를 같이 해야 하는 것에서 오는 부담감에서는 나름 해방되어 다행이라 여겼는데…

막상, 초등학교 첫 번째 학부모 참관수업을 해 보고 나니, 가만히 앉아 있다가 오기만 하면 될 줄 알았던 ‘참관수업’ 역시, 시각장애 엄마로서 나름의 애로사항과 스펙터클한 난관이 있음을 알게 됐다.

일단, ‘참(參)’은 되나, ‘관(觀)’은 안 되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은진슬

모름지기, 참관수업의 가장 큰 목적은, 내 아이가 학교 수업 시간에 보여주는 태도, 표정, 손 드는 빈도 등, 다분히 시각적인 정보들을 취합하여, 얼마나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를 가늠해 보고자 함일 것이다.

그런데, 시각장애맘은 도대체 뵈는 게 없으니, 어찌 보면 그 자리가 한없이 무의미하고 자괴감이 느껴지는 시간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래도 그 자리에 가는 이유는, 시각장애 엄마인 나는 내 아이를 보지 못해도, 아이가 엄마 얼굴을 못 보면 서운할 것이기 때문이다. 교실에 들어서도 일단, 내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다.

학부모 총회 때 아이가 앉는 자리에 부모들이 앉았기 때문에 이응이 자리가 어디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참관수업을 위해 자리를 변경했기에, 대체 어느 쪽을 바라보며 귀라도 쫑끗 세워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서로 이제 거의 처음 보는 사이인 다른 학부모들에게 내 아이가 어디 앉아 있는지 좀 찾아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아직 내가 누구 엄마인지도 제대로 모르고, 내 아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을까?

입학식 때 만나 포토존에서 사진 찍을 때, 내 뒤에 있었던, 딸아이가 이응이와 같은 반인 필리핀계 한국인 엄마가 바로 옆에 있기에, 얼른 다시 반갑게 영어로 인사를 건네고는 내가 시각장애인임을 밝혔다.

그리고는 휴대폰에서 얼른 이응이 사진을 찾아 보여 주면서, 내 아이가 어디에 앉아 있는지 좀 알려주면 고맙겠다고 부탁을 한 것이다. 찰나의 순간에 기지를 발휘하여, 내 아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내내 수업을 참관하는 참사는 겨우 막을 수 있었다.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내내 답답해하며 무력감과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마, 이응이가 말이라도 많이 했으면 목소리를 통해 여러 정보를 나름 파악할 수 있기에 좀 덜 답답했겠지만, 희한하게도 이제 좀 더 자란 이응이는 유치원 때처럼 적극적으로 나서거나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어떤 아이는 유치원 때 이응이처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기가 발표하겠다고 해서 몇 번이나 대답을 했는데, 적극적인 아이의 성향이 부러운 게 아니라, 아이가 대답을 많이 하다 보니, 시각장애엄마 입장에서 목소리를 들으며 아이 상황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부러웠다.

그나마, 이렇게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내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 시각장애 1급 엄마가 순전히 그 간 체득해 온 감으로 칼럼을 쓰기 위해 사진까지 건졌으니… 이정도면 나름 선방했나 싶기도 하다. (공지에서 참관수업 때 휴대폰 꺼내지 말라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칼럼 때문에 모범생 포기하고 소심하게 소리 죽여 찍었다.^^)

이응이는 기회가 있을 때 발표하겠다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데,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상황을 알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은진슬

한없이 답답했던 수업이 끝나자, 이응이는 쪼르르 내게 달려와 꼭 안아준다. 마치, 엄마의 그 복잡한 맘 다 안다는 듯이… 물론 그럴리야 없겠지만 말이다.

이응이는 아들 치고는 이런 스킨쉽이 굉장히 자연스럽고 적극적인 아이인데, 일상 속에서 아이를 잘 찾고 눈을 맞추며 비언어적 제스쳐 같은 것으로 감정을 표현 하기 어려운 시각장애엄마 입장에서는 참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보통, 참관수업이 끝나면, 엄마들끼리 서로를 좀 더 알아가고 노련한 엄마들로부터 학교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또한 서로의 아이들에 대해 파악하고자 일종의 티타임을 갖는다고 한다.

우리 반 역시, 학부모총회 때 반 대표가 선출되고 단체 카카오톡방이 생겼고, 참관수업 일주일 전쯤 카페 예약을 위해 티타임 참석 여부를 조사했었다. 이 날, 모든 반 학부모들이 티타임을 가질테니 근처 커피숍들의 예약 경쟁이 엄청나기 때문이라는 걸, 초1 엄마 노릇이 처음인 엄마는 미처 몰랐었다.

갈까?

말까?

엄청 고민했다.

장애와는 상관 없이, 나 자체가 워낙 대인지향적이지 않은 사람이기도 하려니와, 3년간의 유치원 생활을 통해, 엄마들 사이의 모임이 필수불가결한 것도, 건설적인 것만도 아니라는 것을 이미 체득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워킹맘이라 해도 불가피한 사정이 없는 한 모두 참석하는 참관 수업, 그 후에 가지는 티타임에 참석하지 않는 건, 어쩐지, ‘나는 당신들과 별로 어울리고 싶지 않아요.’라고 대놓고 말하는 듯한 인상을 줄 것 같아(사실, 그런 맘도 없진 않았지만…) 마음에 걸렸다.

결국, 나는 고민 끝에 티타임에 참석하겠다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남겼다.

이 때는, 나의 이 결정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는 결정일 줄은 전혀 모른 채…

반대표 어머니께서 예약해 놓은 커피숍으로 이동하는 길, 나는 아까 인사를 나누며 이응이 찾는 도움을 받았던 필리핀계 한국인 엄마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게 되었다.

우리 둘 다, 엄마들 사이에서는 나름 마이너리티이기에, 여기 오는게 편치만은 않았다는 것에서부터 쉽게 이야기가 진전되었다. 그녀가 말하기를, 대화방에서 내가 티타임에 참석한다는 걸 남편이 보고는 참석을 고민하던 그녀에게 가보기를 권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많이 기뻤다. 나 역시, 그다지 관계지향적인 사람은 못되지만, 입학식 때 포토존에서 그녀를 처음 보고는, 그녀나 나나 마이너리티로서 앞으로 학부모 생활이 만만치는 않겠구나 싶었기에, 나는 그저 영어로 말하는 걸 불편해 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인사를 나눈 것 뿐인데, 이것이 그녀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다는 말을 들으니, 어렵게 용기 내 보길 잘 했구나 싶었기 때문이었다.

영어가 잘 통하는 사람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그녀는 맘이 편한 것 같았고, 나 역시 장애를 가진 엄마로 학부모들과 관계맺기가 그리 쉬운 것이 아님을 공감하며 영어로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어서 나쁘지 않았다.

덕분에, 본의 아니게, 나는 좀 복잡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통역 아닌 통역사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이 상황이 그리 편하지만은 않았다.

한국어가 서툴러 영어로 이야기를 나눈 것이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영어로 열심히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좀 나대며 잘난 척 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다 싶어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내 인사에 용기 내어 여기까지 왔다는데, 나도 그냥 같은 마이너리티 입장에서 좀 불편하기도 했지만, 나름 열심히 영어로 이야기하며 통역도 했다.

보기보다 의외로 소심한 나!

사실, 집에 돌아와서도 이 부분이 영 맘에 걸려, 여동생에게 하소연을 하니까, 여동생이 하는 말이 더 걸작이었다.

너무 그렇게 조심하며 남의 눈치 볼 것도 없다며, 솔직히, 나도 비장애 엄마지만, 엄마들이 대부분 사람 판단하는 기준이 겉모습이나 자기가 가진 편견이 주재료이기 때문에, 아직도 장애인이라면 은근 얕잡아보고 못 배우고 가난한 사람일 거라 생각할 수도 있을텐데, 언니 수준으로 영어로 대화를 했으면, 그런 편견은 확실하게 깨고 왔을 테니, 신경 쓰지 말란다.

듣고 보니 은근 설득력 있다.

그러니,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냥 툭 털고 잊기로 한다.

한편, 조금은 재미있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한 일도 있었다.

엄마들이 커피숍 테이블에 쭉 둘러 앉아 열심히 자기 소개를 했고, 나는 거의 마지막에 가까운 순서였다. 오늘 모임에 참석한 나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던 바로 그 일.

내 소개와 아이 소개를 하면서, 늘 그렇듯이 무심한 듯 하나 딱 이해가 가게끔 화끈하게 내 장애를 오픈했다. 이 의식은, 이응이 6개월 경 문화센터에서부터 시작하여 제법 경력이 오래 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할 때마다 어렵고 편치만은 않다.

이렇게 내 소개가 끝나고 몇 명의 엄마가 더 소개를 마친 후…

갑자기 불쑥 한 엄마가, 사실, 자기 아이가 보청기를 꼈다며,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툭 던지는 것이었다.

그 엄마 왈, 아주 심각한 건 아니라 보청기 없이도 일상생활은 가능하지만, 언어를 제대로 못 배울까봐 착용하는 것이니, 아이들이 묻거든, 눈 나쁘면 안경 쓰는 것과 똑 같은 거라고 말해 달라는 당부를 했다.

그런데, 그 엄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또 다른 엄마 하나가 불쑥 자기 아이도 난청이란다. 태어나서부터 난청 진단을 받았고, 한쪽 귀의 청력은 없고 다른 한쪽 귀만으로 생활하는데, 생활에는 큰 지장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이건 뭐지?

아! 내 존재 자체가 이런 다이나믹을 만들어 낸 것이다.

사실, 애초에 이 엄마들은 말할 생각이 없었다. 있었다면, 당연히 처음에 자신들을 소개하고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오픈했을 테니까.

그런데, 갑자기 생각지도 못했던 장애인 한 사람이 혜성처럼 나타나, 그들에게 기회와 용기를 준 것이다?

뭐, 나름 안 가고 싶었던 모임에 가서 사회공헌하고 온 셈인가?

아이들이 1학년인 만큼, 데리러 갈 시간까지 활용이 애매하여, 커피숍에서 엄마들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하교시간까지 시간을 보냈다.

하교시간이 되어 모두들 학교 정문으로 향했다.

그야말로 1학년에서 고학년까지, 참관수업을 했던 학부모들이 모두 티타임을 마치고 학교로 모여 드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역시 이 아수라장 속에서 내 아이를 찾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았다.

신기한 건, 내가 그렇게 화끈하게 내 장애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이를 찾는 데에 어려움을 겪을 거라고 예상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아니, 이런 때는 대부분 오로지 자기 아이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다른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미처 내가 아이를 같이 찾자고 부탁할 새도 없이 사람들은 흩어졌고, 나는 아이가 최대한 나를 잘 발견할 수 있도록 정문 앞 가장 가까운 곳에 서 있으려 노력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냥 이 참에 이응이에게 확 키즈폰을 채워 버려?’ 라고 또 한 번 자괴감에 가득 찬 혼잣말을 뇌까리면서...

그 막연하고 답답한 와중에 유치원을 같이 다녔던 아이 엄마를 만나, 이응이 반이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 물어보았지만, 그렇게 내 사정을 잘 아는 그녀 역시 아직 안 나왔다는 말만 남기고 자기 아이를 찾으러 다른 엄마와 사라져 버렸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엄마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서운함이 밀려 왔지만, 그저 그녀가 좀 둔감한 것이라고 애써 좋은 쪽으로 생각하며 한 번 더 마음을 접으며 너그러워져 본다.

티타임 때도, 누군가 나에게, 시각장애1급이라는데 이렇게 장애인 같지 않은 사람은 처음본다고 했는데… 좀 더 장애인 다워져야 하려나?

그런데, 장애인 다운 건 뭐지?

어쨌든, 이번에는 이응이가 내가 자신을 데리러 올 것이라는 걸 모르고 있기에 좀 더 불안하고 걱정도 되었지만…

역시나, 우리 이응이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친구들과 정신 없이 이야기 하며 놀면서 교문을 나서다 보면, 보통 자기 엄마를 못 보고 그냥 가버리는 아이들도 종종 있을 정도인데…

이응이는 역시 나를 단번에 찾아 주었으니까.

이렇게 하여, 나의 성향상, 고단하고 편치만은 않았던 학부모 참관수업이 어찌어찌 끝이 났다.

이 날 나에게 숙제로 남은 문제는, 역시나, ‘과연 이응이에게 키즈폰을 채워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였다.

형태만 조금 다를 뿐, 결국, 키즈폰에도 스마트폰의 유해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그럼에도, 엄마가 늘 군중 속에서 아이를 못찾아 노심초사니, 이걸 그냥 채워야 하나?

따지고 보면, 내가 따라 다니는 워킹맘이 아니라 아이 안전이 걱정이니, 이걸 채워야 하나 하는 고민과 본질적으로는 크게 다를 것도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채울까? 말까?

문득, 독자들이 내 입장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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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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