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작업장을 다니는 20대 초반의 3급 지적장애 여성이 어느 날 자기 주변의 남성들을 성폭력 가해자로 고발하였다.

가해자들은 그 여성이 중·고등학생이었던 시절부터 줄곧 그 여성을 성적으로 괴롭혀 온 사람들이었다. 그 여성에게 물었다. 왜 지금에 와서 그 남성들을 고발하는지를. 그 여성이 대답하였다.

“내가 어렸을 때는 남자들이 내 손을 잡고 강제로 끌고 가면 내가 힘이 없어서 어떻게 빠져나갈 수가 없었고 또 굉장히 무서웠어요. 그리고 그 때는 그 남자들이 내게 한 행동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알지도 못했구요. 그런데 성교육 받고 나서 그게 나쁜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정말 화가 났어요. 게다가 옛날에는 제가 지금처럼 말을 잘 한 게 아니어서....그땐 저한테 일어난 일을 아버지나 선생님한테 어떻게 잘 말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제가 말도 잘 하고 또 말할 힘도 생겼어요. 여기 선생님들이 계시니까요.”

성폭력을 당한지 거의 10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그 여성이 자신을 성적으로 학대하였던 남자들을 고발할 수 있게 된 것은 이제 자신이 고발할 수 있는 능력과 힘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많은 발달장애인들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옹호하거나 보호하지 못한다. 이는 발달장애인들이 주로 부모나 가족, 교사와 같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선택되고 결정되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이런 수동적인 삶은 발달장애인들이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힘과 능력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 그렇기 때문에 발달장애인들은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살아가는 힘을 기르기 힘들며 이로 인해 성폭력과 같이 다른 사람의 부정적인 영향 하에 더 쉽게 놓이게 되는 것이다.

발달장애인들은 위압적인 상황에서 두려움을 많이 느낀다. 물론 비장애인들도 그런 상황에서는 마찬가지로 두려움을 갖지만 발달장애인들이 경험하는 두려움은 비장애인들의 그것보다 훨씬 더 크다.

그래서 이런 두려움 때문에 어떤 장애인들은 자해를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입히기도 하며 또 물건을 부수거나 밖으로 뛰쳐나가기도 한다. 물론 모든 성폭력 상황이 위압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이 여성의 경우처럼 물리적 위력과 심리적 위압이 있는 상황에서 일어난 성폭력은 발달장애인에게 엄청나게 두려운 일이 된다. 그리고 이런 두려움으로 인해 발달장애인은 자신에게 일어난 성폭력을 가족이나 교사들에게조차 알리지 못한다.

발달장애인들 가운데 언어발달이 느리며 또 나이가 들어도 원활하게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의 인지적 장애는 언어적 측면에 한계를 갖게 만든다.

이런 언어적인 제한성은 자신들에게 일어난 성폭력을 가족이나 교사에게 충분히 설명해 내지 못하게 만든다. 언어구사에서의 한계는 발달장애인들이 자신들의 생각이나 느낌, 일어난 일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못하게 막는 장애요인이다. 이 여성 또한 바로 언어적 문제 때문에 자신에게 가해진 지속적인 성폭력 사건을 거의 10년이 다 되도록 사람들에게 알리지 못하였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폭로가 잘 안 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발달장애인들은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데 있다. 인지적 장애로 인해 그들은 무엇이 성폭력인지 잘 모른다.

‘폭력’이라는 단어 때문에 때리는 것과 같은 물리적 폭력을 성폭력으로 착각하는 발달장애인들도 꽤 된다.

이들은 상대가 자신을 성적으로 이용하는 것과 자신을 좋아하는 것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을 잘 대해주는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고 경계하지 못한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발달장애인들이 아는 사람들인데, 이 여성을 성적으로 이용한 사람들도 친척 오빠이거나 마을버스 기사를 포함하여 동네의 아는 남자들이었다.

이 여성도 성폭력이 무엇인지 모르는 순진무구한 상태에서는 그 남자들이 자신에게 한 성추행이나 성폭력을 단지 자신을 좋아해 주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일반적인 성폭력 피해자들처럼 발달장애인들도 성폭력을 당한 게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잘못해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여기며 자기 자신을 탓하는데 한편 그렇게 여기는 것은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의 생각을 조정하였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쉽게 이끌리는 발달장애인들은 가해자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정말로 자신이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그 사실을 가족이나 교사에게 말하게 되면 자신이 혼날 거라고 생각한다.

많은 발달장애인들은 스스로를 어떤 일을 잘하는 사람이기보다는 잘 못하는 사람이라고 인식하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당한 성폭력도 가해자의 잘못이기보다 자신의 잘못으로 일어났다고 여긴다.

우리 사회에서 아직 폭로되지 않은 많은 ‘미투’는 발달장애인들에 대한 성폭력일 것이다. 발달장애인들은 그들이 갖고 있는 이런 다양한 이유로 인해 비장애인들의 미투와 같은 방식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특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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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옥 칼럼리스트 현재 서울시중구장애인복지관의 관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20년 동안 조기교육실, 그룹홈, 생활시설, 요양시설, 직업재활시설 등에서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일하였다. 특수교육에서 발달장애인의 성에 대한 주제로 석·박사학위를 받았고 사회복지에서도 석·박사학위를 지니고 있다. 97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발달장애인들에게 성교육을 제공해 오고 있고, 부모교육과 종사자교육, 교사교육 등을 해 오고 있다. 현재 서울시중구장애인복지관에서 상·하반기에 걸쳐 발달장애인성교육전문가양성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숭실대학교, 단국대학교, 숭실사이버대학교 등의 외래교수로서 사회복지와 특수교육 관련 과목을 강의하면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이 칼럼을 통해서는 발달장애인의 성과 성교육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소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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