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가 발생하면 장애인은 죽음의 문턱에서 빠져나오기가 무척 어렵다. 장애인시설에서의 참사나 요양시설에서의 참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얼마 전 제천 노블휘트니스 앤 스파 스포츠센타(9층) 1층 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2층서부터 위층에 있는 사람 29명 사망, 37명 부상, 그리고 밀양 세종(요양)병원 1층 응급실 탈의실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위층에서(2018년 2월 23일 기준) 51명 사망, 141명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렇게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대형 화재사고가 특히 겨울철이면 해마다 발생하는 현실에서, 장애인은 건축물 화재 위험에 비장애인보다 심하게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래서 장애인단체들은 건축물 화재 및 피난설비에 대한 법적 제도적 대책을 촉구하여 왔다.

이로 인해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 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제9조 제1항이 개정되었다.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제2조 1항에 따른 장애인 등이 사용하는 소방시설(경보시설 및 피난설비를 말한다)은 대통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장애인 등에 적합하게 설치 또는 유지 관리하여야 한다고 개정된 것이다.

여기서 편의증진법 제2조 1항은 ‘장애인 등’에 대한 정의로 이동, 시설 이용, 정보접근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을 지칭하고 있다. 편의증진법의 경보 및 피난설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 등의 범위를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경보시설과 피난설비는 화재예방, 소방시설법의 시행령에서 구체적으로 정하겠으며 이를 설치하고 유지 관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관리의무자는 대상물 관계자이다.

장애인단체들은 조속히 하위법을 제정하고, 국가안전에 관한 재난대책에 장애인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포함하도록 촉구해 왔다.

그렇지만 아직도 장애인 경보 및 피난설비에 대한 시행령은 시행 기간이 지났음에도 개정되지 않고 있으며, 안전종합대책 발표 역시 차일피일 미루어지고 있다.

장애인단체들이 먼저 나서서 연구한 바에 의하면, 장애인도 이용 가능한 새로운 경보나 피난설비를 정하지 못하고 있으며, 피난을 위한 대피 공간을 확보하는 선에서 답을 찾고 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화마를 피해 구조원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 위한 대피공간을 베란다 형태로 만들자는 것이다. 그리고 종합계획에는 재난 알림 시스템 구축, 대피훈련 강화, 매뉴얼 작성 등 다양한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문제는 대피공간 확보만으로 장애인의 피난이 보장될 수 있는가이다. 소방 시설물은 탈출 시설물과 구조 대기 시설물로 나눌 수 있다. 사다리, 미끄럼틀, 대피 비상계단, 완강기 로프 등은 아무리 생각해도 장애인 스스로 탈출할 시설물로는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그나마 장애인이 이용 가능한 탈출 시설물로는 무동력 다수인 피난설비, 승강식 피난기 등인데, 이 역시 사용하기가 만만하지 않다. 그래서 대기 시설물을 대부분 대안으로 제시하는 듯하다.

다수인 피난설비는 안전하게 내려오기도 어렵고, 조작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조작버튼 없이 휠체어를 탄 채로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제품이 개발되고 있다.

가족 단위나 비장애인을 포함하여 여러 사람이 이용 가능하고, 무거운 하중을 견뎌야 하고, 특별한 사용 훈련이 필요 없어야 하며, 바람 등의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

휠체어 사용자가 혼자서 사용 가능하고 무게 500킬로그램을 견디기는 하지만 바람 등의 영향에 균형이 흔들리는 문제가 남아 있다.

대기 시설물로 단순히 대피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고층 건물에도 적용 가능하고, 별도의 탈출 시설물이 없이도 구조를 안전하게 기다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기존 건물의 설치비가 많이 들거나 개조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신축 건물에만 적용한다고 해도 통로 동선에 화재가 번져 있지 않아야 하고, 접근로에 단차가 없어야 하며 화염에 의한 연기를 피하도록 신선한 공기가 공급되어야 한다.

이런 문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있는 것이 공기 순환식 피난 설비이다. 이 피난 설비는 아직 법에는 나와 있지 않다. 열과 공기가 완전히 차단된 캡슐을 말한다.

문만 열고 들어가면 특별한 다른 조작이 필요 없고, 신선한 공기도 보급되며, 어느 층 어느 공간이나 설치가 가능하고, 견디는 무게도 무한정이며, 캡슐의 크기만 키우면 수용 인원도 얼마든지 늘릴 수 있다. 이 시설물은 피난 난간보다 더 안전하다.

난간에 설치해도 되고, 난간이 없는 건물에 설치해도 된다. 누군가 사용하면 휠체어 사용자가 이용할 수 없을 수 있으므로 공간을 늘려 다수인이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법이 개정돼 2017년 1월 17일 시행돼야 함에도 1년이 지나도 잠만 자고 있다. 효과도 없이 비용만 들이고 전시만 하고 있는 시설물을 과감히 수정하여 다수인 대기공간 특히 공기순환식 안전한 캡슐 설치를 시행령에서 수용하여 조속히 시행하여야 한다.

소방청의 발표에 의하면 국내 화재건수는 연간 평균 4만여 건에 이르고 있으며, 이에 따른 사상자의 수가 연간 2000여 명을 상회하는 현실상황에서 강력하고 특별한 대책이 없는 한 위의 상황은 크게 변함이 없을 것이며 재난 현장에 장애인이 있다면 현재로서는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

소를 무수히 잃고도 외양간을 고칠 생각만 하고 있는 당국의 각성을 촉구한다.

건물의 안전한 구역을 마련하되 장애인 등 약자를 위해서는 휠체어를 탄 상태에서 들어가 안전하게 기다릴 수 있는 캡슐 형태의 안전 박스, 공기순환식 대피설비를 장애인 피난설비로 시행령에서 대통령령으로 지정하고, 이의 설치 대상 시설물을 정하는 것에 더 이상 시간낭비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 과거 정부와는 달리 대통령이 몇 분 후에 보고를 받고 어떤 지시를 하고, 정치인이 사고 현장에 적극적으로 나타나 점검을 하는 뉴스로는 기대가 아니라 실망을 줄 뿐이다.

법으로 정한 것을 스스로 어기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원천적인 해결책으로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안전장치를 하고 어떻게 안전이 보장되는 세상에 살게 될 것인가가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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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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