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비지트> ⓒ 네이버 영화

나는 이 영화만큼 '늙음', '노인'에 대한 공포를 이렇게 서늘하게 그려낸 작품을 본 적이 없다. <더 비지트>라는 제목처럼 손주들이 외조부모 댁을 처음으로 방문하며 겪게 되는 이야기다.

두 손주의 방문 목적이 가족 다큐를 찍기 위해서인 만큼 이 영화의 장면들은 아이들이 찍는 카메라의 시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이들이 찍는 카메라의 시선으로 보이는 화면은 불안정하게 흔들리며 보다 현실적 공포를 자아낸다.

아이들은 가족 다큐를 통해 오래전 엄마의 가출로 끊어진 외조부모와의 화해와 용서를 담고 싶었다. 무작정 사랑을 좇아 부모를 떠난 엄마는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과도 이혼해 사는 지금 떠나온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을 느끼던 참에 두 아이의 외가 방문을 허락했다.

자, 그럼 말로만 듣던 외조부모 댁을 처음 찾아간 아이들의 눈앞엔 할머니, 할아버지의 따뜻한 사랑과 용서 가득한 풍경이 펼쳐질까?

예측하듯이, 공포영화 딱지 붙은 영화답게 처음에 인자해 보이던 할아버지, 할머니는 갈수록 아이들의 눈에 이해불가하며 공포스럽기 그지없다.

<식스센스>로 반전의 대명사가 된 나이트 샤말란이 이 영화에 담아낸 반전은, 결국 알고 보니 아이들이 만난 노인들은 그들의 외조부모가 아니라는 것 정도인데... 뭐, 영화를 보는 동안 그런 반전은 충분히 예상했기 때문에 나이트 샤말란 감독답지 않은 싱거운 반전이긴 하다. 그러나 그가 이 영화에서 그려내는

공포는...?

영화 <더 비지트> 중에서 ⓒ네이버 영화

영화에서 아이들이 느끼는 공포는 아이들의 눈에 비친 생날 것의 '노인'과 '늙음'에 대한 공포다.

밤만 되면 멍하니 넋을 빼놓고 온 집안을 헤매다니는 할머니, 헛간에서 총기를 다듬는 할아버지는 뭔가 기이한데 지독한 냄새와 파리로 들끓는 헛간은 몰래 훔쳐보니 배설물이 가득한 기저귀가 쌓여 있다.

이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은 혐오에 가깝다. 더럽다, 냄새난다, 우윀...

그런 아이들에게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가 그렇게 기저귀를 헛간에 몰래 쌓아두는 이유는 자존심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다 큰 어른인 남자가 용변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 기저귀를 차야 한다는 사실을 아내인 자기에게조차 숨기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할머니는 또 어떤가. 밤마다 아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한 행동은 물론, 낮에도 뭔가 오싹해지는 모습이다.

TV를 켜놓고 벽을 향해 돌아앉아 음산하게 끊어질 듯 웃어젖히는 할머니에게 무서움을 느낀 손녀는 다가가 왜 그러냐고 묻는데 그 질문에 할머니는 '노인들은 우울하기 때문에 그 우울함을 들키기 싫어 그렇게 웃는 거'라고 무표정하게 답한다.

이 두 노인을 바라보는 아이들도 정서적으로 무언가 불안정하긴 마찬가지.

사랑해서 가출까지 해가며 결혼했다던 엄마, 아빠는 결국 이혼을 했고 그 때문에 엄마 역시 우울증과 상실감에 시달리다 이제 막 새 남자친구가 생긴 참이다.

아이들의 눈엔 어른들의 지독한 사랑이란 것도 그저 허술해 보이고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믿고 의지했던 아빠를 잃은 상실감 때문에 동생 타일러는 결벽증까지 생겼다.

결벽증인 타일러에게 기저귀를 차는 할아버지는 더러움을 넘어 공포다. 낯선 환경이 아이들에겐 점점 공포스러워지고 그만큼 아이들의 카메라 시선은 흔들린다. 관객 역시 그 흔들리는 카메라 시선에서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엔딩이 기대보다 너무 허술해서 급실망한 영화였지만 일반적으로 '젊은' 우리가 노인에게 가지는 공포와 '늙음'에 대한 거부감을 이토록 신랄하게 그렸다는 점에서 영화의 '새롭게 보여주기' 임무는 성공한 셈이다.

우리 사회 현실에서 노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이 영화만큼이나 무서운 일이다.

신체적인 기능상실과 질병은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어떻게든 받아들인다 해도 늙음과 동시에 더 가난해지는 우리 사회 구조 속에서 노인이 되는 일은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공포영화 그 자체가 되는 일일지 모른다.

게다가 장애인으로서 노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가?

장애인이 노인이 됐을 때 그동안 받아 오던 활동보조서비스에서 노인장기요양 서비스로 전환되면서 발생하는 모순과 문제점이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더 가난해질 것이고 더 무력해질 것이고 장애는 더 심해질 것이다.

그런데 사회의 인식과 구조는 불안하고 신뢰할 만하지 않다. 아무리 밝은 미래를 그려 보려 해도 지독한 가난과 옴짝달싹할 수 없는 무력함만이 암울하게 그려질 뿐 노년에 펼쳐질 불안한 미래는 공포영화보다 무섭다.

장애인과 노인은 의료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서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장애인과 노인은 현실에서 얼마나 많이 공감하고 연대할까?

안타깝게도 연대는커녕 적대감으로 팽팽한 날들이 얼마나 많은지... 지하철 등 공공장소나 다양한 일상의 장소에서 심심찮게 노인들의 무례를 경험할 때마다, 자기주장에만 핏대 높여 악다구니를 써대는 노인들을 볼 때마다 종종 '혐오'를 넘어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촛불과 태극기가 서로 날을 세우고 광장에서 맞설 때 우린 그 혐오와 경멸의 극치를 경험하지 않았던가. 그럴 때 나는, 노인에 대해 알 수 없는 내 미래로서의 불안과 연민, 그리고 나를 위협하는 적대적 존재로서의 공포를 동시에 느낀다.

이해할 수 없는 존재에게서 느끼는 공포. 이 영화엔 그런 공포가 가득하지만 연민 또한 곳곳에서 느끼게 되는 것은 거기에 내가 있기 때문이다.

공포를 너머 끝내는 슬픔을 느끼게 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럼 나는 어떻게 늙어가야 할까? 고민하고 궁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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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미경 칼럼리스트 ㅅ.ㅅ.ㄱ. 한 광고는 이것을 쓱~ 이라 읽었다. 재밌는 말이다. 소유욕과 구매욕의 강렬함이 이 단어 하나로 선명하게 읽힌다. 나는 내 ‘들여다보기’ 욕구를 담는데 이 단어를 활용하겠다. 고개를 쓰윽 내밀고 뭔가 호기심어리게 들여다보긴 하지만, 깊이 파고들진 않는 아주 사소하고 가벼운 동작, 쓱... TV, 영화, 연극, 책 등 다양한 매체가 나의 ‘쓱’ 대상이 될 것이다. 그동안 쭈욱 방송원고를 써오며 가져 왔던 그 호기심과 경험들을 가지고... (ㅅ.ㅅ.ㄱ. 낱말 퍼즐은 읽는 분들의 몫으로 남겨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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