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된 아이들, 영화 ‘원더’ 중에서 ⓒ네이버 영화

한 초등학교 4학년 통합반 인권교육을 한 적이 있다. 발달장애를 가진 남자아이가 비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있는 통합반이었는데 통합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특별히 의뢰된 교육이었다. 교육하는 동안 거침없이 속마음을 털어놓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내 착잡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이들은 장애를 가진 그 친구를 몹시 미워하고 있었다. 미우니 그 친구의 모든 게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더러워요, 옆에 오는 것도 싫어요, 답답해요... 이런 비호감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아이들은 거의 적대감까지 드러내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비롯된 적대감이었다. 선생님은 뭐든지 그 애 편만 들어요, 뭐든 우리한테만 양보하래요, 잘못한 거 있으면 걔는 안 혼내고 우리만 혼내요... 선생님에 대한 아이들의 원성은 끝이 없었다.

친구의 장애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도 전에 희생과 양보를 ‘강요당한’ 아이들은 마치 할 수 있는 한 힘껏 그 친구를 미워하는 것으로 선생님에 대한 저항을 대신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닫힌 마음에 이해나 배려가 생길 리 없었다.

<가방 들어주는 아이> ⓒ 네이버 책

동화 ‘가방 들어주는 아이’에서 장애아 영택이의 가방을 들어줘야 했던 석우에게서도 그 통합반 아이들의 모습을 본다. 그나마 동화는 동화답게 결국 석우가 영택이를 이해하고 친구가 되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어쩌면 현실은 문제의 그 통합반 아이들처럼 끝나 버릴지도 모른다.

석우가 가방 들어주는 아이가 된 이유는 영택이와 친한 친구여서도, 특별히 착한 아이여서도 아니다. 석우 역시 목발을 짚는 영택이를 ‘찔뚝이’라고 놀리는 다른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아이일 뿐이다. 그저 영택이와 가장 가까운 곳에 산다는 것, 그것이 영택의 가방을 들어주게 된 이유의 전부다.

순전히 담임인 조기준 선생님이 그렇게 명령했기 때문이다. 영택이에게 왜 가방을 들어줄 친구가 필요한지, 그 애가 가방을 들고 등하교를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에 대해서는 그 어떤 설명도 없거니와 그 어떤 민주적 절차도, 아이들의 동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석우에게 떠맡겨 버린다.

석우 입장에서 보면 그저 영택이네와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죄로 그야말로 재수 없게 걸린 일일 뿐이다. 그 일이 전적인 이해와 동의를 구하지 않고 강압적인 명령이 돼 버리는 순간 석우에게 영택이라는 친구는 지워지고 가방만 남게 되었다.

내 학창시절에도 가방 들어주는 아이가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나를 업어주는 아이. 가방을 들어 주었건, 업어주었건 친구의 도움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영택이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의 독자로서 가장 아쉬운 점은 선생님이 석우에게 영택의 가방을 들어 주라고 명령할 때 영택이의 표정과 감정을 지운 점이다. 할 수 없이 맡게 된 일이 불만스럽지만 석우는 ‘선생님의 엄한 눈빛을 떠올리며’ 영택이에게 다가갔다고 되어 있다.

석우가 가방을 달라고 했을 때 영택이는 석우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힘겹게 가방을 건넨다. 억지로, 마지못해 가방을 드는 석우와 눈도 못 마주치는 영택이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나를 업어주고 가방을 들어주기도 했던 그 친구는 온 학교 온 동네에 ‘착한 아이’로 통했다. 어딜 가든 그 애는 착한 아이로 주목받았고 칭찬세례가 쏟아졌다. 학년 말엔 매번 ‘모범 어린이상’을 받았고 선생님의 특별대우를 받았다.

그런데 나는...? 모든 선생님들과 어른들이 침이 튈 지경으로 칭찬하는 그 애 옆에서 나는 매번 투명인간처럼 지워졌다. 난 그저 그 애가 업어주는 대상, 도와주는 대상일 뿐 가방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사실은 공부를 못했던 그 친구를 모든 숙제부터 시험까지 어른들 모르게 내가 많이 도와주고 있었는데도 나는 늘 ‘도움받는’ 장애아로만 취급됐다. 선생님들은 내 의사를 물을 때조차도 그 애에게 물었고 내 편의가 아니라 그 애의 편의를 먼저 물었다. 나는 착한 친구 곁에서 도움을 받기만 하는 무기력한 대상에 불과했다.

어린 맘에도 억울하고 서글펐던 그 기억이 나로 하여금 영택이를 주목하게 하는데 아쉽게도 이 책에서 영택이는 독자에게 ‘장애’만 부각시킬 뿐 석우와의 관계에서 미안함 이 외의 그 어떤 상호감정도 드러나지 않는다. 도와주어야만 하는 장애아와 그를 도와주는 착한 아이, 그 옛날 어른들이 나와 내 친구 사이를 나누었던 불편한 대상화만 보여질 뿐이다.

“다른 애들은 생일이 기쁜 날이지만 난 싫어. 이렇게 힘들게 태어났는데 뭐가 기쁘다는 거야, 흐흑” 영택이 어머니가 영택이를 방으로 이끌자, 영택이는 힘없는 제 다리를 주먹으로 치며 말했습니다. “엄마, 나는 왜 장애인으로 태어난 거야? 왜, 왜!”

(중략)

영택이 어머니가 석우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장애인으로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우리 식구들은 잘 알고 있어. 그래도 너랑 서경이가 와서 우리 영택이랑 놀아주니까 참 고맙구나”

- ‘가방 들어주는 아이’ 중에서

영택이와 영택이 엄마가 보여주는 모습은 딱 이런 모습이다. 장애에 대해서는 한없이 비관적이며 석우나 도움을 준 사람들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고마워한다.

장애가 힘들고 비참해서 자신의 다리를 치며 우는 아이. 당사자로서 나는 이 장면이 심지어 불편하기까지 하다. 다분히 신파적이기까지 한 이 장면이 현실에서라면 사람들은 과연 장애를 어떻게 이해하게 될까.

장애아를 도와주라고 무조건 명령하는 담임 선생님, 영택의 가방을 들어 주기로 한 것에 대해 왜 하필 너냐고 불운한 제비를 뽑은 양 반응하다가 그럼 딱 일 년만 하라던 석우 아버지, 석우를 둘도 없는 모범 학생 취급하며 덤까지 안겨 주던 문방구 아저씨, 아들의 장애를 한없이 안쓰러워만 하고 도움받는 것에 대해서는 과잉할 만큼 고마움을 표현하는 영택의 엄마... 등장하는 이 인물들의 모습을 보고 독자가 과연 장애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될까.

아무리 비장애인 입장에서 보려고 해 봐도 영택은 한없이 불쌍하고 나약하게만 보이고 도움을 강요하는 선생님은 폭력적이며 석우에게서는 진정한 우정이 느껴지지 않는데 말이다.

장애가 왜 그리 비참하고 타인에게는 짐스럽고 미안한 것이 되어야 하나. 또 그 마음속에 ‘찔뚝이’라 여기는 무시와 경멸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을 ‘도와준다’는 그 행위만으로도 왜 필요 이상으로 착한 것이 되는가. 장애인과 친구가 되는 일이 왜 우정이 아니라 ‘희생과 봉사’로 여겨지는가. 이 책을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장애인은 힘들어! 그러니까 도와줘야 하고

그래야 착한 사람이고 좋은 세상이지!

이 동화가 아이들에게 말해 주고 싶은 핵심은 이것일 텐데 결코 완벽히 맞는 말은 아니다. 장애가 힘든 건 맞다. 그러나 왜 힘든가. 사회적으로 다양한 차별과 장벽이 존재하고 제대로 된 편의가 제공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장애인은 무조건 일방적으로 희생하고 도와줘야 하는 존재도 아니다. 착한 사람이란 속으로는 무시하면서도 겉으로만 ‘도와주는’ 사람이 아니라 동등한 관계에서 ‘필요한 것을’ 딱 그만큼만 해 주는 사람이다.(너무 지나친 도움을 장애인이 얼마나 불편해하는지...)

이렇게 서로 필요한 걸 ‘주고 받으며’ 장애와 비장애를 굳이 구분 짓지 않는 사회가 착한 사회이고 좋은 세상이다. 동화가 아이들에게 보여 줬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점이 아니었을까.

장애인은 가방을 들어주는 도움이 필요할 순 있어도 결코 가방이 되고 싶진 않다. ‘장애인은 도와줘야 한다!’는 사람들의 이 강박적인 무의식이 더는 강화되지 않기를, 또 그 강박이 더는 장애인을 무거운 가방으로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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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미경 칼럼리스트 ㅅ.ㅅ.ㄱ. 한 광고는 이것을 쓱~ 이라 읽었다. 재밌는 말이다. 소유욕과 구매욕의 강렬함이 이 단어 하나로 선명하게 읽힌다. 나는 내 ‘들여다보기’ 욕구를 담는데 이 단어를 활용하겠다. 고개를 쓰윽 내밀고 뭔가 호기심어리게 들여다보긴 하지만, 깊이 파고들진 않는 아주 사소하고 가벼운 동작, 쓱... TV, 영화, 연극, 책 등 다양한 매체가 나의 ‘쓱’ 대상이 될 것이다. 그동안 쭈욱 방송원고를 써오며 가져 왔던 그 호기심과 경험들을 가지고... (ㅅ.ㅅ.ㄱ. 낱말 퍼즐은 읽는 분들의 몫으로 남겨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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